[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그날이 오면 오오 조선의 남아여 심훈, 나 하나 꽃 피어 조동화, 일본 여행 안 가기, 일본 제품 안 사기 (2019.08.14)

푸레택 2019. 8. 14. 23:01

 

 

 

 

 

 

 

 

 

 

 

 

 

 

● 그날이 오면 / 심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오오, 조선의 남아여! / 심훈

-伯林마라톤에 우승한 孫, 南 양군에게

 

그대들의 첩보(捷報)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 속에 용솟음치던 피가

2천 3백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 듯 찢어질 듯.

침울한 어둠 속에 짓눌렸던 고토(故土)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炬火)를 켜든 것처럼 화닥닥 밝으려 하는구나!

 

오늘 밤 그대들은 꿈속에서 조국의 전승을 전하고자

마라톤 험한 길을 달리다가 절명한 아테네의 병사를 만나 보리라.

그보다도 더 용감하였던 선조들의 정령(精靈)이 가호하였음에

두 용사 서로 껴안고 느껴 느껴 울었으리라.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 [詩로 여는 아침] 손택수 시인

 

격정적이고 직정적인 언어가 땅을 뚫고 나온 뿌리처럼 종이를 단숨에 박차고 튀어나올 듯하다. 결승점을 통과한 뒤 두 손을 번쩍 치켜올린 마라토너의 심장 박동 소리를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듯 내달리는 붓 역시 벅찬 감동 속에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1936년 8월 10일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 낭보가 실린 신문 호외의 뒷면에 즉석에서 일필휘지 한 것으로 전하는 이 시는 식민지 청년의 한(恨)과 환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심훈은 마치 자신이 아테네의 병사라도 된 듯 승전보를 알리는 이 시를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고 만다.

 

베이징 올림픽 기간 내내 우리 선수들이 전해오는 숭고한 결실에 가슴 벅차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착잡할 것 같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표어로 내건 우리 시대의 올림픽에도 심훈과 같은 식민지 청년은 없는지, 억압과 감시 아래 신음하는 사람들은 없는지…

 

한국일보 [詩로 여는 아침] 오오, 조선의 남아여!

2008.08.13

 

● 나 하나 꽃 피어 / 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 나 한 사람 일본 여행 안 간다고 / 작자 미상 (패러디)

 

나 한 사람 일본 여행 안 간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너도 안 가고 나도 안 가면

일본 여행 안 가기 활활 타올라

결국 일본의 야비한 경제침략

막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나 한 사람 일본 제품 안 산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나도 안 사고 너도 안 사면

일본 제품 안 사기 활활 타올라

결국 일본의 음흉한 기해왜란

막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어려움을 당할 때

옥석이 가려진다고 했다

나라 사랑 애국자 누구인지

독립운동가의 후예 누구인지

일본 정부 앞잡이 친일파 누구인지

우리 정부 흔들어대는 사대주의자 누구인지

우리 자긍심 흠집내는 식민지근대화론자 누구인지

나라 팔아 먹은 매국노의 후손 누구인지

토착왜구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겠는가

 

☆ 매국노(賣國奴)

사리사욕을 위하여 남의 나라의 앞잡이가 되어

자기 나라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는 사람

(예) 그의 아버지는 일본인의 앞잡이 노릇을 한 매국노였다.

그는 해방 전에는 떵떵거리던 세도가였지만

해방 후에는 매국노라고 욕먹는 처지로 전락했다.

/ Daum 어학사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