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추억산책] 보성옛터 표지석, 혜화명륜성곽마을 (2019.08.03)

푸레택 2019. 8. 3. 16:59





































































 

 

 

 

 

 

 

 

 

 

 

 

 

 

 

 

 

 

 

 
● '보성옛터' 표지석 글
 
3.1운동의 선봉에 서서 역사의 거친 풍랑을 헤쳐가며 도도한 학풍을 이어 온 보성(普成)의 높은 기상을 기려 여기 작은 돌 하나 놓다 2013.9.5 보성교우회
 
● 혜화동 로터리 / 김영진
 
아침이 오면
혜화동 로터리는 꽃처럼 피어난다
집집마다 창을 두드리는 노랫소리
만나는 얼굴마다 해맑은 웃음
사랑의 배달부가 손을 흔들고
추억을 줍는 발길이 바쁘다
혜화동 로터리는 사시사철
꿈을 싣고 돌아가는 회전목마
저녁이면 별들도 모여들어
가슴에 담아온 이야기를 쏟아내고
정다운 이웃과 그리운 사람들
기쁨과 슬픔을 서로 나누며
오늘도 빙그르르 손잡고 돌아간다
 
● 보성고등학교 (普成高等學校)
 
교명인 ‘보성(普成)’은 고종이 내린 이름으로, 널리 사람다움을 열어 이루게 한다는 뜻이다. 교훈은 ‘스스로 배우고 몸소 행하며 힘차게 앞서자’이다. 100년의 역사를 계승하고 사회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하여 새 역사 창조를 주도할 수 있는 인재의 양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고, 민족문화 교육의 지속적 추진, 전통의식 양양과 애국심 함양, 미래지향적 교육 등에 역점을 두고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개교 당시인 1907년에 중등학교 최초의 친목회인 토론회(討論會)를 결성하여 국채보상운동 등을 전개하였으며, 3·1운동 당시 교장과 졸업생을 비롯하여 많은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주동하고, 학교 구내에 있는 보성사(普成社)에서 「독립선언서」 3만 5,000부와 『조선독립신문』 1만 부를 인쇄하여 배포하는 등 3·1운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광주학생운동 당시에도 대대적인 시위와 동맹휴학을 결행하였고, 1931년 식민지교육 반대 동맹휴학 등 지속적인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86년에는 이러한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보성의 종(鐘)’을 주조하여 사각정의 종각에 다는 행사를 가졌다.
 
체육활동으로는 1940년 전일본중등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비롯하여 광복 전까지 축구·정구·유도·씨름 등에서 여러 차례 전국을 제패한 바 있다. 매년 체육대회를 개최하여 차전놀이·북청사자놀이 등 민족문화 놀이를 전승시켜 가고 있으며, 전통문화연구반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1908년 6월 친목회인 토론회(討論會)에서 『보성친목회보』를 창간한 바 있고, 현재는 1946년에 창간된 학교신문 『인경』과 교지 『보성』을 정기적으로 간행하고 있다. 1996년『보성 90년사』, 2006년에 『보성 100년사』를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