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꼭 / 이채강
그대가 날마다 내게로 오고 있다 하여
나는 날마다 그대를 기다렸다
그대는 날마다 나를 만나고 갔지만
나는 한번도 그대를 만나지 못했다
그대는 날마다 나와 헤어졌지만
나는 한번도 그대와 헤어지지 못했다
내가 그대와 그렇게 한번도 만난 적 없고
한번도 헤어진 적 없다는 건
그대가 나와 그렇게 매일 만나고
매일 헤어졌다는 건 참 얼마나 고단한 일이냐
그렇게 만나지 못하고
헤어지지 못한 우리의 나날들은
또 얼마나 가슴 여위던 시간인가
우리 한번은 꼭 만나기로 하자
만나서 꼭 헤어지기로 하자
☆ 본명은 이명자. 1947년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학교 국문과와 동대학원 석사과정, 대전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1971년 「원광」「신반야경」등의 시를 《현대시학》에 발표하면서 등단, 시집으로 『신반야경』『별제』 『등불소리』 등이 있다. 《문학사상》 편집부장을 역임했고 고려대, 배재대, 대전대 등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항상 《호서문학》에 열정을 나눠주시던 선생님께서 허무하게도 하늘로 올랐다. 한동안 소식이 없어 선생님 댁을 찾았던 친구분들이 돌아가신지 시간이 꽤 흐른 그림자를 만나셨다고 한다. 빈 공간에서 아무도 없이 홀로 싸우신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이 부디 슬프지 않게 기억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 그 숲에 자전거 타고 가는 / 이채강
가만히 봄비 걸어오는 냇물에
주르르 들어선 쪽방촌 빗방울 방들
방마다 풀잎 그림책 펴고 있네
붉은가슴논종다리할미새 논물에 눈물
아스라이 날아오르고
목놓아 날리던 울새 울음 묽어지네.
백설조(百舌鳥) 붉은지빠귀 날리고간
백개의 혀를 찾는데
오늘도 그 숲에 자전거 타고 가는
그대 머리카락 보이네
'그 숲에 자전거 타고 가는' 중
- 문학평론가 정현기는 해설에서 "이채강의 시들은 뭔가 폐부에 스며드는 날카롭고 놀라운 물상들이 촘촘한 줄에 맞춰 도열한 채 짜여있다"고 말했다.
- 시인 이채강(이명자) 선생님은 나의 보성고 1학년 재학 시절(1968년) 우리 학교에 교생 선생님으로 오셔서 우리 학급(1학년 5반)을 지도해 주셨다. 그 때 우리 학급 담임은 사진 작가로 유명하신 홍순태 선생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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