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산꽃 이야기 김재진, 세계의 포탄이 모두 별이 된다면 이세룡, 맑은 웃음 공광규, 비비추에 관한 연상 문무학 (2019.07.10)

푸레택 2019. 7. 10. 16:38

 

 

 

 

 

 

 

 

 

 

 

 

 

● 산꽃 이야기 / 김재진

 

식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가령 산딸기가 하는 말이나

노각나무가 꽃 피우며 속삭이는 하얀 말들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톱 한 자루 손에 들고 숲길 가는 동안

떨고 있는 나무들 마음 헤아릴 수 있다면

꿈틀거리며 흙 속을 사는 지렁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이제는 사라져 찾을 길 없는

늑대의 눈 속으로 벅차오른 산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너로부터 닫혀 있는 나와

나로부터 닫혀 있는 너의

그 많은 창문들 하나하나 열어 볼 수 있다면

휘영청 달뜨는 밤

산꽃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만 있다면

 

● 세계의 포탄이 모두 별이 된다면 / 이세룡

 

세계의 포탄이 모두 별이 된다면

그러면 몰래 감추어둔 대포와

대포 곁에서 잠드는 병사들의 숫자만 믿고

함부로 날뛰던 나라들이 우습겠지요

또한 몰래 감춘 대포를 위해

눈 부릅뜨던 병사와

눈 부릅뜨고 오래 견딘 병사에게 달아주던 훈장과

훈장을 만들어 팔던 가게가 똑같이 우습겠지요

 

세계의 각종 포탄이 모두 별이 된다면

그러면 전 세계의 시민들이

각자의 생일날 밤에

멋대로 축포를 쏜다 한들

나서서 말릴 사람이 없겠지요

 

총구가 꽃의 중심을 겨누거나

술잔의 손잡이를 향하거나

나서서 말릴 사람이 없겠지요

 

별을 포탄 삼아 쏘아 댄다면

세계는 밤에도 빛날테고

사람들은 모두 포탄이 되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지 모릅니다

세계의 각종 포탄이

모두 별이 된다면

 

● 맑은 웃음 / 공광규

 

캄캄한 밤 시골집 마당 수돗가에 나와

옷을 홀딱 벗고 멱을 감는데

수만 개 눈동자들이 말똥말똥 내려다보고 있다

 

날이 저물어 우리로 간 송아지와 염소와 노루와

풀잎과 나무에 깃들인 곤충과 새들이

물 끼얹는 소리에 깨어 내려다보는 것이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나를

들판과 나무 위를 깝죽깝죽 옮겨 다니면서

웬 낯선 짐승인가? 궁금해했던 것들이다

 

나는 저들의 잠을 깨운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삼겹살로 접히는 뱃살이 창피하여

몸에 수건을 감고 얼른 방으로 뛰어가는데

 

깔깔깔 웃음소리가 방 안까지 따라온다

"얘들아, 꼬리가 앞에 달린 털 뽑힌 돼지 봤지?"

 

● 비비추에 관한 연상 / 문무학

 

만약에 네가 풀이 아니고 새라면

네 가는 울음소리는 비비추 비비추

그렇게 울고 말거다 비비추 비비추

 

그러나 너는 울 수 없어서 울 수가 없어서

꽃대궁 길게 뽑아 연보라빛 종을 달고

비비추 그 소리로 한번 떨고 싶은 게다 비비추

 

그래 네가 비비추 비비추 그렇게 떨면서

눈물 나게 연한 보랏빛 그 종을 흔들면

잊었던 얼굴 하나가 눈 비비며 다가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