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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수필] 창우야 다희야, 내일도 학교에 오너라 김용택 (2019.07.10)

푸레택 2019. 7. 10. 10:45

 

 

 

 

 

 

 

 

 

 

 

 

 

 

 

 

 

 

 

 

■ 창우야 다희야, 내일도 학교에 오너라 / 김용택(섬진강 시인)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파란 날, 그 티없이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작고 동그란 운동장에서 창우와 다희가 이마를 마주 대고 앉아 놀고 있다. 운동장 가에 있는 벚나무에 단풍이 곱게 물들고, 바람은 산들거린다. 벚나무 사이에 있는 키가 큰 미루나무 잎이 다 져서 까치집이 덩그렇게 높이 드러났다. 까치가 창우와 다희 가까이서 통통 뛰어놀더니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고, 다람쥐들이 재빠르게 아이들 옆을 지나간다. 창우와 다희는 다람쥐를 못 본 모양이다

 

 

 

운동장이 끝나는 곳에 펼쳐진, 강물의 색깔은 볼 때마다 다르다. 지금은 녹색 비단을 잘 다려 펼쳐 놓은 것 같다. 바람이 이는지 물빛이 찬란하게 반짝인다. 저렇게 작은 물빛들이 모여서 저렇게 크고 아름다운 강이 된다. 그 강물 위로 하얀 학들이 천천히 날아간다. 너무 천천히 날아가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가만히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날은 학들이 서른 마리도 더 넘게 떼를 지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아이들과 고함을 지른 적도 있고, 어느 날은 학이 열 마리쯤 공중에서 춤을 추는 것을 오래오래 본 적도 있다.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는 허공에서 하얀 학들이 그렇게 부드럽게 날며 춤을 추는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로운 춤이었다. 좋다. 나는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산이며 물이며 나무와 새와 다람쥐를, 창우와 다희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창우와 다희를 우리 학교 아이들은 ‘가짜’라고 부른다. 창우와 다희는 우리 학교 정식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가짜라고 해도 아무 할 말이 없다. 창우는 2학년인 동수 형을 따라 학교에 오고, 다희는 4학년인 세희 언니를 따라 학교에 온다. 다희는 가끔 동생 주환이를 데리고 올 때도 있다.

 

 

 

다희를 보면 나는 가슴이 아프다. 다희는 올 봄에 서울에서 시골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귀농을 했다지만 도시에서 살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뽀얗던 다희가 까맣게 타서 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다희네 가족의 어려움이 내 가슴에까지 잔잔하게 밀려오기도 한다.

 

 

 

창우와 다희가 우리 학교에 가짜 학생으로 들어왔을 때, 우리 학교 아이들은 모두 열아홉 명이었다. 어느 날, 서울에서 갑자기 두 명이 전학을 와서 우리 학교 아이들은 몇 년 만에 창우와 다희를 합해 스무 명이 넘어 우리들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도시로 돌아가 버렸다.

 

 

 

아무튼 창우와 다희는 1학년과 6학년이 함께 공부하는 6학년 교실에 임시로 헌 책상과 걸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유치원도 없는 학교에 유치원생도 초등 학생도 아닌 창우와 다희는 교실에 있고 싶으면 교실에 있고, 나가 놀고 싶으면 나가 놀았다. 둘은 어디를 가나 꼭 손을 잡고 다녔다. 지금 저 모양 저대로 이마를 마주 대고 무슨 놀이를 하며 그림처럼 다정하게 놀았다. 형들과 언니들이 야구를 하든, 축구를 하든, 발야구를 하든, 둘은 전혀 상관없이 놀았다. 어떨 때는 1학년 두나 언니랑 같이 놀기도 하고, 언니들이 공부하는 이 교실 저 교실을 돌아다니며 놀기도 했다. 아침때 한나절을 잘 놀고 점심때가 되어 본교에서 밥이 오면 가장 먼저 줄을 서서 밥을 타 먹었다.

 

 

 

창우와 다희가 학교에 왔을 때는, 그냥 밖에서 놀든 교실에서 놀든 선생님은 별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이 둘이 이렇게 저렇게 글자를 깨우쳐 가자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선생님이 6학년 언니들이나 1학년 오빠들을 가르칠 때, 창우 다희는 시도 때도 없이 선생님을 불러 자기들의 궁금증을 풀려고 하니, 수업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6학년 선생님은 어느 날 우리들에게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으시며 맘이 아프지만 이 녀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을 고민한 끝에 선생님은 편지를 써서 창우, 다희에게 들려 보냈다. 이러저러해서 아이들을 더 이상 학교에서 돌볼 수가 없다는 간절한 내용의 편지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우리들은 모두 창우와 다희가 슬그머니 보고 싶었고, 창우와 다희가 손잡고 다니던 운동장이 쓸쓸해 보이기 시작했다. 창우가 다희가 손을 잡고 다니면 우리들은 그 둘의 이름을 부르며 “얼레리꼴레리, 창우와 다희는 얼레리꼴레리.” 놀리며 즐거워했었는데, 창우와 다희가 없는 운동장은 쓸쓸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창우가 학교에 볼일이 있는 엄마를 따라왔다. 우리들은 너무나 반가웠다. 아이들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창우를 불렀고, 나도 너무나 반가워 “창우야, 이리 와. 창우야, 나는 니가 보고 싶었는디 너는 내가 보고 싶지 않대?” 그랬더니 창우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퉁명스럽게 “나도 선생님이 보고 싶었어요.” 하기에, 나는 창우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학교 바로 뒤에 있는 다희네 집으로 전화를 걸어 다희를 불렀다. 다희는 금방 헐레벌떡 달려왔다. 둘은 금세 옛날처럼 다정하게 손을 잡고 그 날 하루를 학교에서 지냈다. 언니, 오빠들이 그 둘을 볼 때마다 “얼레리꼴레리.” 놀려 댔지만 그 둘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혼자 즐거웠다.

 

 

 

그 후 선생님들은 모두 보고 싶어 도저히 안 되겠다며 창우와 다희를 수요일에만 학교에 나오도록 했다. 그러다가는 토요일에도 나오라고 했고, 나중에는 나오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나오라고 하고 했더니, 요즘은 날마다 학교에 나와서 저렇게 논다. 나는 이따금 창우와 다희가 이마를 마주 대고 흙장난을 하는 곳으로 가서 그 둘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다희야, 창우가 그렇게도 좋아?” 하고 물으면 다희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네.” 한다. 창우에게도 그렇게 물어 보면 창우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나도 다희가 좋아요.” 한다.

 

 

 

창우도 다희도 집에 가고 아이들도 다 집에 갔다. 나 혼자 남아 강물로 내려가는 산그늘을 보며 이 글을 쓴다. “창우야, 다희야, 내일도 학교에 꼭 와. 새와 나무와 다람쥐와 떨어진 단풍잎이 까치랑 운동장에서 기다리니까, 꼭 와.”

 

 

 

/ 중학교 2-2 국어 교과서 수록 작품,

 

사진 출처 2006.09.27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