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늘 학습 / 함민복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옆산에서 꾀꼬리가 운다
새소리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마음은 내 마음끼리도 이리 부딪히니
나무 그늘에 좀 더 앉아 있어야겠다
● 가벼워지기 / 이무원
채우려 하지 말기
있는 것 중 덜어내기
다 비운다는 것은 거짓말
애써 덜어내 가벼워지기
쌓을 때마다 무거워지는 높이
높이만큼 쌓이는 고통
기쁜 눈물로 덜어내기
감사 기도로 줄여가기
날개가 생기도록 가벼워지기
민들레 꽃씨만큼 가벼워지기
● 담쟁이덩굴 / 공재동
비좁은 담벼락을
촘촘히 메우고도
줄기끼리 겹치는 법이 없다.
몸싸움 한 번 없이
오순도순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진초록 잎사귀로
눈물을 닦아주고
서로에게 믿음이 되어주는
저 초록의 평화를
무서운 태풍도
세찬 바람도
어쩌지 못한다.
● 생각의 나무 / 박영신
생각에 잠겨서
가로수 그늘을 지나갔습니다
내가 머리로 생각하고 있을 때
나무는
이파리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 생각의 가득함으로
햇빛이 스며들지 못하고 있을 때
나무는 벌거벗은 채 서 있었습니다
해마다 나는 생각의 나이를 먹어가고
그 무게를 알지도 못하고 걸었습니다
문득 다시 보니 나무는
생각 없이 그대로 생각이었습니다
깔깔한 내 그림자 밟고
온 몸에 주름지고 지나갈 때
곧게 뻗어 올라간 중심을 따라 유연하게 흐르는 줄기
낭창낭창하게 기쁜 몸이었습니다
나는 오늘도 내 생각 들키지 않게
가로수 옆을 지나갑니다.
● 그냥 둔다 / 이성선
마당의 잡초도
그냥 둔다
잡초 위에 누운 벌레도
그냥 둔다
벌레 위에 누운
산 능선도 그냥 둔다
거기 잠시 머물러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내 눈길도 그냥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