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그늘 학습 함민복, 가벼워지기 이무원, 담쟁이덩굴 공재동, 생각의 나무 박영신, 그냥 둔다 이성선 (2019.07.05)

푸레택 2019. 7. 5. 22:34

 

 

 

 

 

 

 

 

 

 

 

 

 

 

 

 

● 그늘 학습 / 함민복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옆산에서 꾀꼬리가 운다

새소리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마음은 내 마음끼리도 이리 부딪히니

나무 그늘에 좀 더 앉아 있어야겠다

 

● 가벼워지기 / 이무원

 

채우려 하지 말기

있는 것 중 덜어내기

 

다 비운다는 것은 거짓말

애써 덜어내 가벼워지기

 

쌓을 때마다 무거워지는 높이

높이만큼 쌓이는 고통

 

기쁜 눈물로 덜어내기

감사 기도로 줄여가기

 

날개가 생기도록 가벼워지기

민들레 꽃씨만큼 가벼워지기

 

● 담쟁이덩굴 / 공재동

 

비좁은 담벼락을

촘촘히 메우고도

줄기끼리 겹치는 법이 없다.

 

몸싸움 한 번 없이

오순도순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진초록 잎사귀로

눈물을 닦아주고

서로에게 믿음이 되어주는

저 초록의 평화를

 

무서운 태풍도

세찬 바람도

어쩌지 못한다.

 

● 생각의 나무 / 박영신

 

생각에 잠겨서

가로수 그늘을 지나갔습니다

내가 머리로 생각하고 있을 때

나무는

이파리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 생각의 가득함으로

햇빛이 스며들지 못하고 있을 때

나무는 벌거벗은 채 서 있었습니다

 

해마다 나는 생각의 나이를 먹어가고

그 무게를 알지도 못하고 걸었습니다

문득 다시 보니 나무는

생각 없이 그대로 생각이었습니다

 

깔깔한 내 그림자 밟고

온 몸에 주름지고 지나갈 때

곧게 뻗어 올라간 중심을 따라 유연하게 흐르는 줄기

낭창낭창하게 기쁜 몸이었습니다

 

나는 오늘도 내 생각 들키지 않게

가로수 옆을 지나갑니다.

 

● 그냥 둔다 / 이성선

 

마당의 잡초도

그냥 둔다

 

잡초 위에 누운 벌레도

그냥 둔다

 

벌레 위에 누운

산 능선도 그냥 둔다

 

거기 잠시 머물러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내 눈길도 그냥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