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산 김용택, 아이에게 배창화,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박용재, 아름다운 세상 이동순 (2019.07.05)

푸레택 2019. 7. 5. 14:41

 

 

 

 

 

 

 

 

 

 

 

 

 

 

 

 

 

 

 

 

● 산 / 김용택

 

강물을 따라 걸을 때 강물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흐르는 거야

너도 나처럼 흘러봐

 

하얗게 피어 있는 억새 곁을 지날 때 억새는 이렇게 말했네

너도 나처럼 이렇게 흔들려봐

인생은 이렇게 흔들리는 거야

 

연보라 색 구절초 꽃 곁을 지날 때

구절초 꽃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한번 피었다 지는 꽃이야

너도 이렇게 꽃 피어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를 지날 때

느티나무는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그 자리에서 사는 거야

너도 뿌리를 내려봐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밑을 지날 때

구름은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허공을 떠도는 거야

너도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아봐

 

내 평생 산 곁을 지나다녔네

산은 말이 없었네

산은,

지금까지 한마디 말이 없었네

 

● 아이에게 / 배창환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라

사람의 한 생 잠깐이다

돈 많이 벌지 마라

썩는 내음 견디지 못하리라

 

물가에 모래성 쌓다 말고 해거름 되어

집으로 불려가는 아이와 같이

너 또한 일어설 날이 오리니

 

참 의로운 이름 말고는

참 따뜻한 사랑 말고는 아이야,

아무것도 지상에 남기지 말고

너 여기 올 때처럼

훌훌 벗은 몸으로 내게 와라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 박용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 아름다운 세상 / 이동순

 

이름도

생김새도 다른

참새 비둘기 갈매기들이 한데 어울려

모이 쪼는 광경을 봅니다

서로 싸우지 않고

양식 나누는 그 모습이

너무도 어여쁩니다

오갈 데 없이 남루한 흑인 하나가

느긋한 표정으로

먹이 봉지 안고 서서

한 줌씩 천천히 뿌려줍니다

아, 우리가 진정 원하는 세상이란

바로 저런

조화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