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그랬다지요 김용택, 나의 치유는 너다 김재진,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 오인태, 한평생 반칠환 (2019.07.03)

푸레택 2019. 7. 3. 16:57

 

 

 

 

 

 

 

 

 

 

 

 

 

 

 

 

 

 

 

 

● 그랬다지요 / 김용택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 김재진 / '나의 치유는 너다' 중에서

 

‘꽃은 피어날 때 향기를 토하고,

물은 연못이 될 때 소리가 없다’고 했다.

 

언제 피었는지 정원에 핀 꽃은

향기를 날려 자기를 알린다.

마음을 잘 다스려 평화로운 사람은

한 송이 꽃이 피듯

침묵하고 있어도 저절로 향기가 난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 많은 사람과 만나고

참 많은 사람과 헤어진다.

그러나 꽃처럼 그렇게 마음 깊이

향기를 남기고 가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꽃이 져도 향기가 남아

다음 해를 기다리게 하듯

향기 있는 사람은 계절이 지나가도

늘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 사람을 그리워 하는 일 / 오인태

 

하필 이 저물녘

긴 그림자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한 그루 나무처럼

우두커니 서서

사람을 그리워하다

 

사람을 그리워 하는 일

홀로 선 나무처럼

고독한 일이다

제 그림자만 마냥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는

나무처럼 참 쓸쓸한 일이다

 

● 한평생 / 반칠환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 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꼬박 이레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가쁜 숨만 남았구나

 

그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