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랬다지요 / 김용택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 김재진 / '나의 치유는 너다' 중에서
‘꽃은 피어날 때 향기를 토하고,
물은 연못이 될 때 소리가 없다’고 했다.
언제 피었는지 정원에 핀 꽃은
향기를 날려 자기를 알린다.
마음을 잘 다스려 평화로운 사람은
한 송이 꽃이 피듯
침묵하고 있어도 저절로 향기가 난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 많은 사람과 만나고
참 많은 사람과 헤어진다.
그러나 꽃처럼 그렇게 마음 깊이
향기를 남기고 가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꽃이 져도 향기가 남아
다음 해를 기다리게 하듯
향기 있는 사람은 계절이 지나가도
늘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 사람을 그리워 하는 일 / 오인태
하필 이 저물녘
긴 그림자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한 그루 나무처럼
우두커니 서서
사람을 그리워하다
사람을 그리워 하는 일
홀로 선 나무처럼
고독한 일이다
제 그림자만 마냥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는
나무처럼 참 쓸쓸한 일이다
● 한평생 / 반칠환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 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도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꼬박 이레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두고,
모든 좋은 일이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가쁜 숨만 남았구나
그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