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7월 안재동, 7월 반기룡, 7월 이오덕, 7월 홍윤숙, 개망초 박준영, 개망초 꽃 안도현 (2019.06.29)

푸레택 2019. 6. 29. 15:12

 

 

 

 

 

 

 

 

 

 

 

 

 

 

 

 

 

 

 

 

● 7월 / 안재동

 

넓은 들판에

태양열보다 더 세차고 뜨거운

농부들의 숨결이 끓는다

 

농부들의 땀을 먹는 곡식

알알이 야물게 자라

가을걷이 때면

황금빛으로 찰랑거리며

세상의 배를 채울 것이다

그런 기쁨 잉태되는 칠월

 

우리네 가슴속 응어리진

미움, 슬픔, 갈등 같은 것일랑

느티나무 가지에

빨래처럼 몽땅 내걸고

얄밉도록 화사하고 싱싱한

배롱나무 꽃향기 연정을

그대에게 바치고 싶다

 

● 7월 / 반기룡

푸른색 산하를 물들이고

녹음이 폭격기처럼 뚝뚝 떨어진다

 

길가 개똥참외 쫑긋 귀기울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토란 잎사귀에 있던 물방울

또르르르 몸을 굴리더니

타원형으로 자유낙하한다

 

텃밭 이랑마다

속알 탱탱해지는 연습을 하고

나뭇가지 끝에는

더 이상 뻗을 여백 없이

오동통한 햇살로 푸르름을 노래한다

 

옥수숫대는 제철을 만난 듯

긴 수염 늘어뜨린 채

방방곡곡 알통을 자랑하고

계절의 절반을 넘어서는 문지방은

말매미 울음소리 들을 채비에 분주하다

 

● 7월 / 이오덕

 

앵두나무 밑에 모이던 아이들이

살구나무 그늘로 옮겨가면

누우렇던 보리들이 다 거둬지고

모내기도 끝나 다시 젊어지는 산과 들

진초록 땅 위에 태양은 타오르고

물씬물씬 숨을 쉬며 푸나무는 자란다

 

뻐꾸기야, 네 소리에도 싫증이 났다

수다스런 꾀꼬리야, 너도 멀리 가거라

봇도랑 물소리 따라 우리들 김매기 노래

구슬프게 또 우렁차게 울려라

길솟는 담배밭 옥수수밭에 땀을 뿌려라

 

아, 칠월은 버드나무 그늘에서 찐 감자를 먹는,

복숭아를 따며 하늘을 쳐다보는

칠월은 다시 목이 타는 가뭄과 싸우고

지루한 장마를 견디고 태풍과 홍수를 이겨내어야 하는

칠월은 우리들 땀과 노래 속에 흘러가라

칠월은 싱싱한 열매와 푸르름 속에 살아가라

 

● 7월 / 홍윤숙

보리 이삭 누렇게 탄 밭둑을

콩밭에 김매고 돌아오는 저녁

청포묵 쑤는 함실 아궁이에선

청솔가지 튀는 소리 청청했다

후득후득 수수알 흩뿌리듯

지나가는 저녁비, 서둘러

호박잎 따서 머리에 쓰고

뜀박질로 달려가던 텃밭의 빗방울은

베적삼 등골까지 서늘했다

뒷산 마가목나무숲은 제철 만나

푸르게 무성한데

울타리 상사초 지친 잎들은

누렇게 병들어 시들었고

상추밭은 하마 쇠어서 장다리가 섰다

아래 윗방 낮은 보꾹에

파아란 모기장이

고깃배 그물처럼 내걸릴 무렵

여름은 성큼 등성을 넘었다

 

● 개망초 / 박준영

 

6,7월 망초꽃

지천으로 피어있다

 

그냥

잡풀이었지

내 눈에 들기 전에

이름도 몰랐으니

 

복판은 한사코 마다하고

길섶에만 피어 있어

눈부시지도 않고

향기롭지도 않고

무엇 하나 내노라 할 게 없이

그냥 서 있는 거다

 

희멀겋게 뽑아 올린 줄기에

너더댓 가지 뻗고

다시 잔가지 서너 개 나뉘더니

가지마다 대여섯 작은 흰 꽃 피운다

 

외로운 건 참을 수 없어

무리로 무리로

종소리 듣고 타고 내린 달빛처럼

허옇게 또 허옇게

내려앉고 내려앉아

잡초마냥 민초마냥

이 강산 여기저기

이렇게도 뒤덮는다

 

이제

그 이름 물어 물어

개망초로 알았지만

마음에 있어야 보인다고

50 평생 살아 처음 보는 꽃의

눈부시지 않은 그 찬란이

알아주지 않는 그 영광이

날 이다지도 뒤흔들어 놓는다

 

6, 7월 개망초꽃

지천으로 피어 있다.

 

● 개망초 꽃 / 안도현

 

눈치코치 없이 아무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잘것 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