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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산책] (1) 고봉누리길: 안곡습지공원과 고봉산에서 만난 풀꽃 나무꽃, 산딸나무, 팽나무, 산벚나무 (2019.06.03)

푸레택 2019. 6. 3. 17:09

 

 

 

 

 

 

 

 

 

 

 

 

 

 

 

 

 

 

● 고봉누리길 걷기: 안곡습지공원, 영천사

 

식사동위시티- 동국대병원- 사단앞- 안곡초등학교- 안곡습지공원- 고봉산갈림길- 영천사- 중산마을 5단지- 일산시장- 일산역

 

● 고봉누리길에서 만난 풀꽃 나무꽃

 

작약, 개양귀비, 초롱꽃, 원추리, 산딸나무, 조뱅이, 아기나리, 둥굴레, 바위취, 담쟁이덩굴, 산벚나무, 팽나무

 

● 산딸나무 / 박상진 (우리 나무의 세계1)

 

6월에 들어서면 초여름의 숲은 하루가 다르게 짙어진다. 세상이 온통 초록으로 뒤덮일 때 깊은 산 계곡의 나무들 대부분은 서로 비슷비슷하여 누가 누군지 찾아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수많은 나무들이 펼치는 녹색의 정원에서 산딸나무는 새하얀 꽃으로 우리 눈에 금방 환하게 들어온다.

 

산딸나무 꽃은 네 장의 꽃잎이 마주보기로 붙어 있는 커다란 꽃이 수백 개씩 층층으로 피어 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색이 섞이지 않아 청순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을 주는 꽃이다. 사실은 꽃잎이 아니고 잎이 변형된 포엽(苞葉)이란 것인데,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꽃잎으로 착각할 정도로 변장술이 놀랍다.

 

밤에는 하얀 꽃이 더욱 환하게 비춘다. 중국의 기서(奇書) 《산해경》 〈남산경〉 편에는 “남쪽의 소요산이라는 곳에 닥나무같이 생기고 나뭇결이 검으며 그 빛이 사방을 비추는 미곡(迷穀)이라는 나무가 있는데, 이것을 몸에 걸치면 길을 잃지 않았다”라고 나와 있다. 미곡이란 나무가 내용상으로 무슨 나무인지는 알기 어려우나, 옛사람들은 산딸나무의 한자인 사조화(四照花)로 번역했다. 산딸나무의 꽃 핀 모습을 보고 ‘사방을 비추는 나무’로 인식한 것 같다.

 

변형된 산딸나무 꽃잎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두 장씩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 십자가를 연상케 한다. 유럽의 여러 기독교 국가와 미국에서는 십자가 모양의 꽃과 아름다움 때문에 산딸나무를 정원수로 널리 심는다. 미국산딸나무, 꽃산딸나무, 서양산딸나무 등 여러 종류가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다.

 

기독교인들의 전설에 의하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쓰인 나무가 통칭 ‘독우드(Dogwood)’라 불리는 산딸나무라고 한다.주 이스라엘의 산딸나무는 지금보다 재질이 단단하고 컸으며, 당시에는 예루살렘 지역에서 가장 큰 나무였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이후 다시는 십자가를 만들 수 없도록 하느님이 키를 작게 하고 가지도 비꼬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힐 때의 모습을 상징하는 十자 꽃잎을 만들었다고 한다. 꽃잎의 끝은 예수의 손바닥에 박힌 못처럼 색이 약간 바래고 흰 모양을 나타낸다. 붉은 수술은 예수의 머리에 씌워진 가시관을 나타내며, 붉은 열매가 몇 개씩 붙어 있는 모습은 예수의 피를 나타낸다.

 

이상의 내용으로 보아 우리나라 산딸나무와는 다른 유럽이나 미국의 산딸나무를 말하는 것 같다. 십자가를 만들지 못하게 다른 나무로 만들어버렸다는 나무는 ‘European Cornel(학명 Cornus mas)’이란 산딸나무이며 오늘날 중동지방에서도 자란다.

 

독우드(Dogwood)를 우리식으로 이해하면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 나무로서 몹쓸 ‘개나무’가 된다. 서양 사람들이야 개가 우리처럼 천대받은 동물이 아니라고는 하나 아무러면 십자가 나무의 이름이 될 수 있겠는가? 어원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첫째는 옛날 산딸나무의 껍질을 쪄서 나온 즙으로 개의 피부병을 치료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로는 산딸나무는 목질이 매우 단단하여 나무꼬챙이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것에서 비롯된 영어 고어가 dag, 혹은 dog이었다는 것이다.

 

산딸나무는 중부 이남에서 자라며 키가 7~10미터 정도 자란다. 잎은 마주보기로 달리고 굵은 주름이 생기기도 한다. 가을에 손가락 마디만 한 동그란 열매가 긴 자루 끝에 열리며 빨갛게 익는다. 표면에는 거북이 등 같은 무늬가 있는데, 여러 개의 암술이 붙어서 만들어진 집합과(集合果)다. 속에는 쌀알 굵기만 한 작은 씨앗이 열매 크기에 따라 1~4개씩 들어 있고 나머지는 육질이다. 과육이 부드럽고 달아 먹을 만하며 과일주를 담그기도 한다. 열매는 흔히 먹는 딸기와 비슷하게 생겨서 산딸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딸기나무라는 별개의 작은 나무가 있으므로 헷갈리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Daum 백과 발췌)

 

● 팽나무 / 박상진 (우리 나무의 세계1)

 

팽나무는 키 20미터, 줄기둘레가 두세 아름이 넘는 큰 나무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잘 자라지만, 항상 소금바람이 부는 바닷가에서도 끄떡없다. 그것도 두툼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수백 년이 되어도 울퉁불퉁하게 갈라지지 않는 얇고 매끄러운 껍질을 갖고 그대로 버틴다.

 

남부지방에서 부르는 팽나무의 다른 이름은 포구나무다. 배가 들락거리는 갯마을, 포구(浦口)에는 어김없이 팽나무 한두 그루가 서 있는 탓이다. 나무의 특성은 물론 자라는 곳을 그림처럼 떠올릴 수 있는 포구나무가 팽나무란 정식 이름보다 훨씬 더 정겹다.

 

팽나무는 곰솔과 함께 짠물과 갯바람을 버틸 수 있는 나무로 유명하다. 내륙지방에서도 자라기는 하지만 바닷가에서 심고 가꾸는데 가장 적합하다. 우리나라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산림청의 관리를 받고 있는 고목나무 1만 3천여 그루 중 팽나무는 약 10퍼센트인 1,200본으로서 느티나무 7,100본 다음으로 많다. 이 중 대부분은 전남, 경남, 제주에서 자란다.

 

늦봄에 자그마한 팽나무 꽃이 지고 나면 금세 초록색 열매가 열리기 시작한다. 가난하던 시절의 시골 아이들은 주위의 모든 곳이 놀이터였고 장난감 재료였다. 그중에서도 팽나무는 아이들과 가장 친근한 나무였다. 초여름 날, 콩알만 한 굵기의 열매를 따다가 작은 대나무 대롱의 아래위로 한 알씩 밀어넣은 다음, 위에다 대나무 꼬챙이를 꽂아 오른손으로 탁 치면 공기 압축으로 아래쪽의 팽나무 열매는 팽하고 멀리 날아가게 된다. 이것을 ‘팽총’이라고 하는데, 팽총의 총알인 ‘팽’이 열리는 나무란 뜻으로 팽나무란 이름이 생겼다. 팽총놀이가 끝난 팽나무 열매는 가을에 들어서면서 붉은 기가 도는 황색으로 익는다. 열매 가운데에는 단단한 씨앗이 있고, 주위는 약간 달콤한 육질로 싸여 있다. 이렇게 잘 익은 열매 역시 배고픈 아이들의 좋은 간식거리로 인기가 높았다.

 

팽나무는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만큼이나 오래 산다. 천 년을 넘긴 나무도 있으며, 남부지방의 당산나무는 흔히 팽나무인 경우가 많다. 옛날에 배를 매어두던 나무로 천연기념물 494호로 지정된 고창군 부안면 수동리의 팽나무는 키 12미터, 줄기둘레 6.6미터, 나이 400년에 이르며, 우리나라 팽나무 중 가장 굵다. 커다란 버섯 갓을 닮은 모양새는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같이 아름답다.

 

너무 흔하고 친근한 서민의 이미지 탓인지 우리 옛 문헌에서 팽나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산림경제》에 실린 “소나무, 팽나무(彭木), 참나무에서 나는 버섯은 독이 없다”라는 내용이 전부다. 그러나 백성들과 함께 자연 속에 묻혀 조용히 살아가는 팽나무는 농사에 얽힌 여러 가지 전설을 간직한 채 살아왔다. 봄에 일제히 잎이 피거나 윗부분부터 싹이 트면 풍년이며, 그 반대일 때는 흉년이라는 등 기상목(氣象木)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5리마다 오리나무, 10리마다 시무나무를 심었듯이 일본에서는 이정표 나무로 팽나무를 심었다. 1604년 장군 도쿠가와주는 동경의 니혼바시(日本橋)를 기점으로 1리(4킬로미터)마다 일리총(一里塚)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지름 9미터, 높이 1.7미터 정도의 흙더미를 쌓고 가운데에다 나무를 심었다. 이 나무는 길손이 거리를 알 수 있게 하고, 잠시 쉬어 가는 휴게시설이었다. 담당 실무자가 어떤 나무를 심는 것이 좋을지 묻자 도쿠가와는 좋은 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그러나 관서지방 사투리를 쓰는 도쿠가와는 좋은 나무란 뜻의 일본 표준말인 ‘이이키’라 하지 않고 ‘에에키’라 했다. 이를 ‘에노키(팽나무)’로 잘못 알아들은 실무자는 일리총에다 팽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일리총은 여러 군데 남아 일본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팽나무 이외에도 느티나무, 삼나무, 소나무 등이 심어져 있으나 팽나무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팽나무 무리는 풍게나무, 검팽나무, 폭나무, 산팽나무, 왕팽나무 등 한참을 헤아려 보아야 할 만큼 종류가 많다. 또 남서해안의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푸조나무도 팽나무의 사촌쯤 되는 나무로서 흔히 아름드리 당산나무가 된다. (Daum 백과 발췌)

 

● 산벚나무 / 박상진 (우리 나무의 세계2)

 

산에서 자라지 않는 나무가 어디 있으랴마는, 산벚나무는 ‘산에서 자라는 벚나무’란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4월 말이나 5월 초에 걸쳐 우리나라 온 산은 산벚나무의 꽃 잔치로 봄을 더욱 따뜻하고 화사하게 만든다. 이때쯤 보이는 숲속의 벚꽃은 대부분 산벚나무 꽃이다.

 

산벚나무는 장미과 소속이다. 세계적으로는 115속, 3,200종, 우리나라만 해도 35속, 207종이나 되는 식물들을 품고 있는 큰 집안이다. 사과, 배, 복숭아, 자두, 살구, 앵두, 산딸기 등의 과일나무를 비롯하여 벚나무, 매화, 장미, 조팝나무 등의 꽃나무까지 우리와 친숙한 나무들의 상당수가 장미과다.

 

산벚나무를 포함한 벚나무, 왕벚나무, 올벚나무, 개벚나무. 섬벚나무, 꽃벚나무 등의 벚나무 종류들은 큰 나무이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산벚나무는 잎과 꽃이 거의 같이 핀다. 반면 다른 벚나무 종류는 잎이 돋아나오기도 전에 꽃이 먼저 피는 차이점이 있다. 또 올벚나무는 꽃이 다른 벚나무보다 조금 더 일찍 피며, 꽃받침 아래의 씨방이 항아리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 외의 벚나무 종류들은 생김새가 너무 비슷하여 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은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좀처럼 종류를 구분해내기도 어렵다.

 

팔만대장경판을 만든 나무가 지금까지는 자작나무로 알려져 왔으나, 내가 현미경으로 재질을 분석해본 결과 약 64퍼센트가 산벚나무였다.주 그 외에 돌배나무 14퍼센트, 거제수나무 9퍼센트, 층층나무 6퍼센트, 고로쇠나무 3퍼센트, 후박나무 2퍼센트, 사시나무 1퍼센트 순이었다.

 

경판의 대부분을 산벚나무로 새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재질이 균일하고 비중이 0.6 전후로서 너무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자 새김에 최적격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생활용구, 조각재, 칠기의 골심재 등으로 두루 쓰였다. 둘째는 아무리 경판 새김에 좋은 나무라고 해도 깊고 높은 산 깊숙이 꼭꼭 숨어 있으면 그야말로 꿰지 않은 구슬인데, 산벚나무는 흔하고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나무껍질의 독특함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무와는 달리 산벚나무는 숨구멍이 가로로 배열되어 있어서 멀리서도 다른 나무와 쉽게 구별하여 찾아낼 수 있다. 팔만대장경을 새길 당시에는 나라의 땅덩어리가 온통 몽고군에게 유린당하고 있던 때였다. 대놓고 나무를 베어 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산벚나무는 몰래몰래 한 나무씩 베어 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산벚나무는 전국 어디에서나 자라며 키 20미터, 굵은 것은 지름이 두 아름에 이르기도 하는 큰 나무다. 잎은 달걀모양으로 어긋나기로 달리며, 가장자리의 톱니는 날카롭다. 꽃은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로 2~3개가 모여 나무 전체를 뒤덮을 만큼의 많은 꽃이 잎과 거의 동시에 핀다. 열매는 둥글고 가운데에 굵은 씨앗이 하나씩 들어 있는 핵과(核果)이며, 5~6월에 흑자색으로 익는다. 다른 이름은 버찌다.

 

옛 문헌에서 산벚나무를 비롯한 벚나무 종류를 찾아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벚나무 종류는 껍질의 쓰임이 자작나무와 같았기 때문에 두 나무는 다같이 ‘화(樺)’라고 했다. 《해동농서》에 보면 버찌를 ‘화실(樺實)’이라 했다. 그러나 산벚나무로 짐작되는 나무들은 산앵(山櫻), 혹은 앵(櫻)으로 표기했다. 《다산시문집》에 수록된 〈농가의 여름〉이란 시를 보면, “잘 익은 산벚나무 버찌는 검붉은 빛깔이고/곱디고운 들 딸기는 빨갛게 익었네/집 안에는 새들만 남아 있고/숲속에는 아이들만 놀고 있구나”라고 했다. 또 《삼국유사》 〈기이〉 ‘경덕왕 조’를 보면, “경덕왕 24년(765)에 중 한 사람이 깨끗한 승복을 차려입고 앵통(櫻筒)을 지고 남쪽에서 오고 있었는데, 왕은 이를 보고 기뻐하며 누각 위로 안내하고는 그가 가지고 온 통 속을 보니 차 끓이는 도구가 들어 있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앵통은 앵두나무로 만든 통이 아니라 벚나무로 만든 통이다. 전후 문맥으로 보아 적어도 지름이 20~30센티미터가 넘는 큰 통인데, 아무리 크게 자라도 지름이 10센티미터를 넘지 않는 앵두나무로 이런 통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Daum 백과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