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관계 / 박남준
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흐르고 흘렀던가
바람에 홀씨하나 날아와 안겼지
이끼들과 마른풀들의 틈으로
그 작은 것이 뿌리를 내리다니
비가 오면 바위는 조금이라도 더 빗물을 받으려
굳은 몸을 안타깝게 이리저리 틀었지
사랑이었지 가득 찬 마음으로 일어나는 사랑
그리하여 소나무는 자라나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바람을 타고 굽이치는 강물소리 흐르게 하고
새들을 불러모아 노랫소리 들려주고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 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 피워 본 적 있었던가
● 들판이 아름다운 이유 / 기진호
들판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은
아무 데서나 살지만
아무렇게나 살지 않는
들풀이 있기 때문이다.
쑥은 정하신 때에 쑥잎을 내고
씀바귀는 뜻에 따라
쓰디쓴 씀바귀 잎을 내고
냉이는 명령대로 냉이꽃을 피워 낸다.
작은 꽃일 망정 정성껏 피우고서
있는 힘을 다하여 향기를 발하며 산다.
우리는 이름 모를 들풀을 싸잡아
잡초라고 부르지만
자기의 이름을 불러 주지 않고
벌과 나비들이 외면할지라도
서러워하지 않고
그냥 더불어 있음으로 감사하며
장미나 백합의 자리를 시기하지 않고
들풀은 들풀대로
아무 데서나 들풀로 살아간다.
● 비비추에 관한 연상 / 문무학
만약에 네가 풀이 아니고 새라면
네 가는 울음소리는 분명 비비추 비비추
그렇게 울고 말거다 비비추 비비추
그러나 너는 울 수 없어서 울 수가 없어서
꽃대궁 길게 뽑아 연보랏빛 종을 달고
비비추 그 소리로 한번 떨고 싶은 게다 비비추
그래 네가 비비추 비비추 그렇게 떨면서
눈물나게 연한 보랏빛 그 종을 흔들면
잊었던 얼굴 하나가 눈 비비며 다가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