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봄꽃여행] (3) 홍릉수목원 홍릉숲 4월 풍경: 동의나물, 피나물, 자목련, 자주목련 (2019.04.21)

푸레택 2019. 4. 21. 19:55

 

 

 

 

 

 

 

 

 

 

 

 

 

 

 

 

 

 

 

● 국립산림과학원 홍릉수목원 홍릉숲 4월 풍경: 동의나물, 피나물, 자목련, 자주목련 (2019.04.21)

 

● 목련 / 박상진 경북대 교수 (우리나무의 세계1)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시인 박목월이 가사를 쓰고 김순애 씨가 작곡한 〈4월의 노래〉다. 1960년대 이후 한때 학생들에게 널리 불리던 가곡이다. 활짝 핀 목련꽃 아래서 연애소설의 백미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던 그 순수함이 정겹다.

 

목련(木蓮)은 ‘연꽃처럼 생긴 아름다운 꽃이 나무에 달린다’라는 뜻이다. 목련은 봄기운이 살짝 대지에 퍼져나갈 즈음인 3월 중하순경, 잎이 나오기 전의 메말라 보이는 가지에 눈부시게 새하얗고 커다란 꽃을 피운다. 좁고 기다란 여섯 장의 꽃잎이 뒤로 젖혀질 만큼 활짝 핀다. 꽃의 가운데에는 많은 수술과 각각 따로 떨어져 있는 여러 개의 암술이 있다. 이런 모습을 두고 식물학자들은 원시적인 꽃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원시식물이라고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1억 4천만 년 전, 넓은잎나무들이 지구상에 첫 모습을 보이기 시작할 때 나타났으니 원시란 접두어가 붙을 만하다. 가지 꼭대기에 한 개씩 커다란 꽃을 피우는 고고함으로나 순백의 색깔로나 높은 품격이 돋보이는 꽃이다.

 

꽃을 피우기 위한 목련의 겨울 준비는 남다르다. 마치 붓 모양 같은 꽃눈은 목련만의 특별한 모습이다. 꽃눈은 두 개의 턱잎과 잎자루가 서로 합쳐져 변형된 것이고, 겉에는 갈색의 긴 털이 촘촘히 덮여 있어서 겨울의 추위를 견뎌내도록 설계를 해두었다. 《사가시집(四家時集)》주에 실린 〈목필화(木筆花)〉라는 시에는 “이른 봄 목련꽃이 활짝 피는데/꽃봉오리 모습은 흡사 붓과 꼭 같구나/먹을 적시려 해도 끝내 할 수가 없고/글씨를 쓰기에도 적합하지 않네”라고 했다. 목련을 두고 목필화라는 다른 이름을 붙인 이유를 설명한 셈이다.

 

겨울날 붓 모양의 꽃눈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끝이 거의 북쪽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옛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을 비롯한 몇몇 문헌에 나오는 ‘북향화(北向花)’란 목련의 이런 특징을 잘 나타낸 말이다.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북쪽을 향하는 꽃봉오리가 더 많은 것 같다. 꽃봉오리의 아랫부분에 남쪽의 따뜻한 햇볕이 먼저 닿으면서 세포분열이 반대편보다 더 빨리 이루어져 자연스럽게 끝이 북쪽을 향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동의보감》에는 목련을 신이(辛夷), 우리말로 붇곳(붓꽃)이라 하여 꽃이 피기 전의 꽃봉오리를 따서 약재로 사용했다. 목련은 “풍으로 속골이 아픈 것을 낫게 하며, 얼굴의 주근깨를 없애고 코가 메는 것, 콧물이 흐르는 것 등을 낫게 한다. 얼굴이 부은 것을 내리게 하며 치통을 멎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수염과 머리털을 나게 한다. 얼굴에 바르는 기름을 만들면 광택이 난다”라고 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목련에 관한 기록이 처음 나온다. 김수로왕 7년(서기48)에 신하들이 장가들 것을 권했지만, 하늘의 뜻이 곧 있을 것이라면서 점잖게 거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바다 서쪽에서 붉은 돛을 단 배가 북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왕은 기뻐하며 사람을 보내 목련으로 만든 키를 바로잡고[整蘭橈],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 그들을 맞아들였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아리따운 공주는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으로 훗날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다. 이처럼 목련은 꽃뿐만 아니라 나무로서의 쓰임새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련은 한라산이 고향이며 오늘날 자생지는 거의 파괴되었으나, 이창복 교수가 쓴 1970년대 논문에는 성판악에서 백록담 쪽으로 30분쯤 올라가면 자연산 목련이 군데군데 보인다고 했다. 전남 진도에 있는 석교초등학교에는 키 12미터, 줄기 밑 둘레 280센티미터의 약 100년생 목련이 자라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만나는 목련은 실제 백목련인 경우가 많다. 토종 제주도 목련은 잘 심지 않고, 중국 원산인 백목련이 오히려 더 널리 보급된 탓이다. 재래종 목련은 꽃잎이 좁고, 완전히 젖혀져서 활짝 피는 반면 백목련은 꽃잎이 넓고 완전히 피어도 반쯤 벌어진 상태로 있다.

 

이외에도 보라색 꽃의 자목련이 있다. 또 백목련과 자목련을 교배하여 만든 자주목련은 꽃잎의 안쪽이 하얗고 바깥쪽은 보라색이다. 또 꽃잎이 10개가 넘는 중국 원산의 별목련도 있으며, 5월 말쯤 숲속에서 잎이 난 다음에 꽃이 피는 함박꽃나무(산목련) 역시 목련과 가까운 형제나무다. 북한에서는 함박꽃나무를 목란(木蘭)이라 하며 북한 국화로 알려져 있다.

 

● 일본목련 / 박상진 경북대 교수 (우리나무의 세계1)

 

이 시대의 선승 법정 스님은 입적을 하면서 ‘무소유’라는 철학을 그대로 실천하여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스님이 오랫동안 머물던 송광사 불일암 뜰에는 30여 년 전부터 손수 심고 가꾼 굵은 ‘후박나무’ 한 그루가 오랫동안 스님과 맑은 대화를 나누며 살았다. 스님은 수필 〈버리고 떠나기〉에서 “뜰가에 서 있는 후박나무가 마지막 한 잎마저 떨쳐버리고 빈 가지만 남았다. 바라보기에도 얼마나 홀가분하고 시원한지 모르겠다. 이따금 그 빈 가지에 박새와 산까치가 날아와 쉬어간다”라고 했다. 그 ‘후박나무’ 밑에 스님은 한 줌의 재가 되어 묻히셨다. 스님이 평생 ‘후박나무’라고 알고 있었던 그 나무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늘푸른 잎을 가진 진짜 후박나무가 아니라 일본목련이다. 하찮은 나무 이름 하나 잘못 안 것이 스님의 명성에 무슨 누가 될까마는 나무를 업으로 살아온 사바세계의 중생에게는 자꾸 생각이 지워지지 않아 적어 본다.

 

일본목련은 이름 그대로 일본에서만 자라는 목련 집안의 나무다. 일제 초기에 우리나라에 들여와서 지금은 조경용으로 널리 심고 있다. 일본에서는 ‘호오노키(朴木)’라고 하는데, 껍질을 약으로 쓸 때는 생약명이 후박(厚朴)이다. 처음 수입한 사람들이 일본 생약명을 우리 이름으로 붙이면서 원래 우리나라에서 자라던 진짜 후박나무와 중복되어 혼란이 생긴 것이다. 일본목련은 일본 전역에 걸쳐 분포하며, 우리나라를 건너 뛰어 중국 남부에도 비슷한 수종이 있다.

 

일본목련은 키 30미터, 줄기둘레가 몇 아름까지 자랄 수 있는 큰 갈잎나무다. 계곡부의 비옥한 곳에 터를 잡으며, 줄기가 곧고 가지가 좀 성기나 자람은 굉장히 빠르다. 일본목련의 눈에 띄는 특징은 긴 타원형의 커다란 잎이다. 보통은 잎 길이가 30센티미터 전후이나 때로는 40센티미터를 훌쩍 넘기며, 너비도 15~20센티미터나 되어 잎 한 장으로 사람 얼굴 전체를 가릴 수 있을 만큼 넓다. 잎에는 향기가 있고 살균작용을 하며 표면이 매끄러워 떡이나 주먹밥을 싸는 재료로 이용되었다. 잎 뒷면은 털이 덮여 있어서 하얗게 보이는데, 녹색 표면과의 대비가 볼 만하다. 잎은 가지 끝에 거의 돌려나기 모양으로 달리며, 그 가운데에 잎 크기에 버금가는 커다란 꽃이 얼굴을 내민다. 여러 장의 꽃잎이 나선상으로 나고 수술과 암술이 다른 색으로 솟아 있다. 꽃은 처음에는 거의 흰색이었다가 차츰 연노랑으로 변한다. 목재는 치밀하면서도 부드러워 각종 기구를 만들기 쉽다. 가구, 조각, 칠기, 나막신을 만드는 데 좋은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일본목련은 살아가는 방식이 지극히 이기적이다. 나무뿌리에서는 다른 식물의 씨가 싹트는 것을 훼방 놓고, 혹시 싹이 터도 잘 자랄 수 없는 물질을 분비한다. 그도 모자라 낙엽에 이런 물질을 섞어 놓기까지 했다. ‘너 죽고 나만 살자’라는 얌체 심보다. 일본목련 이외에 편백 등도 이런 작용을 하는데, 이를 전문용어로 타감작용이라고 한다.

 

일본목련의 껍질을 일본에서는 ‘후박(厚朴)’이라 하여 한방에서는 약재로 쓰였다고 한다. 한편 중국에는 일본목련과 아주 비슷한 ‘중국목련(학명 Magnolia officinalis)’이 자라는데, 중국 이름 역시 ‘후박(厚朴)’이다. 후박은 껍질을 벗겨 위장을 다스리는 데 사용하기도 하며, 기관지염 및 천식 등의 치료에 예부터 널리 이용되었다. 일본의 후박도 중국의 후박과 쓰임이 거의 같았고, 둘을 구분하기 위하여 자기네 것은 화후박(和厚朴), 중국 후박은 당후박(唐厚朴)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 중국 후박은 집합과로 열매가 둥글고 일본목련은 긴 것이 거의 유일한 차이점이다. 그러나 껍질의 약효는 당후박이 더 좋으며 생산량이 적어서 값이 훨씬 비싸다. 당연히 당후박의 대용으로 화후박이 쓰이면서 약재로 널리 알려졌다. 한마디로 화후박은 당후박의 핀치히터인 셈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일본목련의 껍질은 화후박에서 일본을 뜻하는 ‘화(和)’가 생략되고 그냥 ‘후박’이란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일본목련은 일본이나 중국에서 후박이라는 별칭이 있기는 하지만, 공식 이름은 아니며 같은 이름의 다른 나무가 우리나라에 원래부터 자라고 있으므로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일본목련을 후박으로 불러서는 안 될 것 같다.

 

● 동의나물 (Caltha palustris L. var. palustris)

 

동의나물은 각처의 산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그늘이 지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4~5월에 꽃이 피는데, 다른 꽃보다는 비교적 일찍 피어 봄을 알리는 편이다. 물가에서도 잘 사는 품종인데, 수분기가 없으면 말라 죽기 때문에 주로 수생식물과 같이 사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습한 곳을 좋아하는 노루오줌이나 박새와 같이 섞여서 자란다.

 

키는 약 50㎝ 정도이며, 잎은 둥근 심장형으로 길이는 5~10㎝이다. 잎의 가장자리에는 둔한 톱니가 나 있다. 봄풀이라 꽃이 먼저 피는데, 동의나물은 꽃이 시들고 종자가 익을 무렵에야 잎이 비로소 넓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줄기 끝에 대개 2개의 노란색 꽃이 달리는데, 특이하게도 꽃잎은 없고 꽃잎처럼 보이는 노란색 꽃받침잎이 5~7장이 나온다. 열매는 6~7월경에 달리고 갈색으로 된 씨방에는 많은 종자가 들어 있다.

 

잎 모양이 곰취와 비슷하다. 두 식물은 꽃의 색깔이 노란색인데, 피는 시기가 서로 다르다. 동의나물은 이른 봄에 피는 반면 곰취는 여름에 핀다. 또 곰취는 잎이 상당히 커서 7~9월에 60~80㎝까지 크게 자라는 반면, 동의나물은 잎이 작아 5~10㎝ 정도밖에 안 된다. 그리고 곰취는 산기슭, 동의나물은 물가에서 주로 자라는 것도 다른 점이다. 하지만 잎을 보고 구분하려면 잎의 톱니가 깊게 불규칙적으로 갈라지면 곰취, 규칙적으로 얇게 갈라지면 동의나물이다. 잎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할 것이다.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며, 원숭이나물, 입금화, 노제초, 수호려라고도 한다. 곰취와는 달리 동의나물을 나물로 먹으려면 어린잎을 삶아서 잘 우려내어 독성을 제거해야 한다. 날것으로 먹을 경우 배탈이 나거나 설사를 하기 때문이다. 뿌리를 포함한 모든 부분을 약재로 쓰는데, 노제초나 수호려는 약재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꽃말은 ‘산속의 보물’이다. (야생화 백과사전 봄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