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봄꽃여행] (1) 홍릉수목원 홍릉숲 4월 풍경: 금낭화, 산당화, 명자나무 (2019.04.21)

푸레택 2019. 4. 21. 19:26

 

 

 

 

 

 

 

 

 

 

 

 

 

 

 

 

 

 

 

 

● 국립산림과학원 홍릉수목원 홍릉숲 4월 풍경: 금낭화, 산당화, 명자나무(2019.04.21)

 

● 명자나무 / 박상진 경북대 교수 (우리나무의 세계1)

 

명자란 이름의 자그마한 꽃나무가 있다. 좀 연륜이 있는 독자라면 여자 이름이 온통 ‘자’로 끝맺음하던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영자, 순자가 가장 많았지만 명자(明子)도 흔한 이름이었다. 나무 이름으로서 명자는 한자 이름인 명사에서 변한 것으로 짐작되며, 공식 이름은 명자꽃 혹은 명자나무다.

 

키가 2미터 내외로 땅에서부터 많은 줄기가 올라와 포기를 이루면서 자라는 명자나무는 주로 정원에 심고 가꿨다. 명자나무는 대체로 벚꽃이 질 때쯤 꽃이 피기 시작한다. 타원형의 작은 잎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면서 시샘하듯 금세 꽃봉오리들도 하나둘 꽃잎을 펼치기 시작한다. 매화처럼 생겼으나 약간 큰 진홍빛 꽃이 잎과 함께 나뭇가지 사이사이에 얼굴을 내민다. 대부분 붉은 꽃이지만 때로는 흰색, 분홍색 꽃을 피우는 원예품종도 있어서 취미에 따라 골라 심을 수도 있다. 한 번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늦봄까지 비교적 오랫동안 연속적으로 피므로 꽃봉오리와 활짝 핀 꽃이 함께 섞여 있어서 더욱 운치가 있다.

 

명자나무는 싹을 틔우는 힘이 좋아 전정가위로 잘라내도 금방 새가지를 뻗는다. 사철나무, 쥐똥나무 등 이런 특성을 가진 나무들은 울타리로 심기에 알맞다. 특히 명자나무는 가지를 잘 뻗고 가지가 변한 가시까지 달고 있으므로 흔히 화단의 경계나 출입구 좌우에 나란히 심는다.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명자나무에는 탁구공 크기부터 거의 달걀 크기에 이르는, 모과를 쏙 빼닮은 아기모과가 열린다. 모양새야 모과나무와 가까운 혈족이니 그렇다 쳐도 작은 나무에 너무 부담스럽게 보이는 굵은 열매가 열리다 보니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그러나 가녀린 몸체로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가을에 노랗게 익을 때까지 잘 키워낸다. 씨앗에 줄 영양분도 잔뜩 넣어두고 사람에게 필요한 비타민, 능금산 등 유용 성분도 빠뜨리지 않는다.

 

《동의보감》에 명자나무 열매는 이렇게 나와 있다. “담을 삭이고 갈증을 멈추며 술을 많이 먹을 수 있게 한다. 약의 효능은 모과와 거의 비슷하다. 또한 급체로 쥐가 나는 것을 치료하며 술독을 풀어 준다. 메스꺼우며 생목이 괴고 누런 물을 토하는 것 등을 낫게 한다. 냄새가 맵고 향기롭기 때문에 옷장에 넣어 두면 벌레와 좀이 죽는다.” 이외에도 강장제나 기침을 멈추게 하고 이뇨작용에 도움을 주는 민간약으로 쓰인다.

 

명자나무는 중국 중부가 원산지로 아주 옛날부터 가꾸어 온 나무다. 《시경》 〈위풍〉 편의 ‘목과’에 “투아이목도(投我以木桃) 보지이경요(報之以瓊瑤)”란 구절이 있는데, 이때의 목도(木桃)를 명자로 보아 “나에게 명자를 주었으니 옥으로 보답하나니”로 해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여암유고》(1744)에 명사(榠樝)란 이름이 처음 나온다고 한다.주

 

명자나무는 한자표기에 혼란이 있다. 옥편을 찾아보면 査, 樝, 楂는 같은 글자이며 ‘나뭇등걸 사’ 혹은 ‘풀명자나무 사’라고 나와 있다. 풀명자나무는 명자나무의 종류이기는 하나 최근 일본에서 들여온 자그마한 나무일 뿐이므로 옥편의 풀명자나무라는 풀이는 옳지 않다.

 

사돈(査頓)이란 말의 유래와 관련하여 이런 이야기가 있다. 고려 중기의 윤관 장군은 부원수로 있던 오연총과 서로의 자녀를 혼인시켰다. 두 사람은 개울 하나를 두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갑자기 술이 마시고 싶어진 윤관이 술병을 들고 오연총의 집을 찾아가려고 하였으나 밤사이 개울물이 불어나 건너갈 수가 없었다. 오연총 역시 술 생각이 나 마침 윤관을 찾아가려던 참이라 둘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게 되었다. 둘은 주위에 있던 사(査)에 걸터앉아 머리를 조아리면서(頓) 술잔을 주고받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래서 사돈이란 말이 생겼다는 것이다.주 이때의 ‘사’는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풀명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나뭇등걸을 말할 뿐이다. 《동의보감》에도 명사에 대한 한글표기를 명자라고 하였으니, 옥편의 풀이는 ‘명자나무 사’가 맞다. 풀명자가 명자나무와 다른 점은 꽃이 주홍색 한 가지뿐이고 가시가 더 많으며, 과실의 크기가 지름 2~3센티미터 정도로 명자보다 작다.

 

산당화란 이름도 명자나무의 다른 이름으로 널리 쓰인다. 《북한수목도감》에는 산당화와 명자나무를 다른 나무로 기술하고 있으나 우리는 같은 나무로 취급하고 있다.

 

● 금낭화(金囊花) Dicentra spectabilis (L.) Lem.

 

뜨거운 심장을 가진 꽃

우리 꽃은 대개 작은 편이다. 그에 비하자면 서양 꽃은 대개 큼지막하다. 그래서 눈길은 서양 꽃에 먼저 가곤 한다. 그러나 큰 만큼 금세 질리는 것도 또한 서양 꽃이다. 그에 비한다면 우리 꽃은 작지만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모양도 아기자기하다.

 

금낭화 역시 아주 아름다운 꽃이다. 봄이 무르익은 4~5월 금낭화는 무릎 정도까지 키가 크고, 꽃대가 활처럼 휘면서 홍색 꽃이 여러 송이 피어난다. 꽃은 줄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는데, 크기는 작은 편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끝이 양쪽으로 살짝 올라가 하트 모양을 이룬다. 영어로는 'bleeding heart'라고 하는데, 이는 ‘피가 흐르는 심장’이란 말이다.

 

이 하트 속에 하얀색이 붙어 있는데, 마치 작은 주머니처럼 생겼다고 해서 아름다운 주머니 꽃이라는 의미로 금낭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하얀 주머니 속에 암술과 수술이 들어 있다. 지구상에는 참 많은 꽃이 있지만 모두 다 자기만의 빛깔과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금낭화는 비교적 일찍 지고 만다는 것. 4~6월에 꽃이 피었다가 6~7월에는 열매를 맺는다. 세상은 온갖 생명으로 가득 차 푸른빛을 한껏 자랑하고 있을 때, 금낭화는 서둘러 수면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편, 열매는 긴 타원형으로 달리고 안에는 검고 빛이 나는 씨앗이 들어 있다.

 

금낭화는 등모란이나 덩굴모란이라고도 하는데, 모란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옛날 여자들이 갖고 다니던 주머니와 비슷하다고 해서 ‘며느리주머니’라고도 하며, 입술에 밥풀이 붙어 있는 듯하다고 해서 ‘밥풀꽃’이라고도 한다.

 

꽃말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이다. 꽃의 모습이 마치 고개를 숙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순종하는 듯한 모습이니 절묘하게 어울린다.

 

금낭화는 이른 봄 새순을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지만 나물로 먹을 땐 삶은 뒤 며칠간 물에 우려내야 한다. 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금낭화는 약재로도 사용된다.

 

금낭화는 현호색과에 속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의 봉정암 근처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우리나라 곳곳의 산지에서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 이외에는 중국에도 분포한다. (야생화 백과사전 봄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