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봄꽃여행] (2) 송강누리길 제11코스, 고양동누리길 제12코스에서 만난 풀꽃 나무꽃: 자작나무, 자두나무 (2019.04.20)

푸레택 2019. 4. 20. 19:50

 

 

 

 

 

 

 

 

 

 

 

 

 

 

 

 

 

 

 

 

● 고양누리길 14개 코스 걷기 2분기 3회차

 

☆ 일시: 2019.04.20(토) 09:30~13:30

☆ 걷기코스: 고양동누리길(제12코스), 송강누리길(제11코스 일부) / 9.1km

 

☆ 삼송역(三松驛) 8번 출구- 774번 간선버스- 안장고개, 선유동(仙遊洞) 입구 출발- 오로시(烏鷺詩) 이직(李稷) 묘(墓)- 선유랑마을-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 묘(墓)- 고양향교(高陽鄕校), 중남미문화원(中南美文化院)- 대자산(大慈山)- 최영(崔瑩) 장군 묘- 밀풍군(密豊君) 이탄(李坦) 묘(墓)- 명나라궁녀 굴씨(屈氏)여인 묘- 필리핀 참전비- 공릉천(恭陵川)- 송강(松江)마을- 정철(鄭澈) 시비(詩碑)- 850번 버스- 화정역(花井驛)- 집 도착

 

☆ 풀꽃 나무꽃: 백목련, 목련, 자목련, 왕벚나무, 산벚나무, 능수벚나무, 개나리, 진달래, 복숭아나무, 회잎나무, 팥배나무, 신갈나무, 자작나무, 은행나무, 박태기나무, 백송, 자두나무, 서양민들레, 현호색, 노루발풀, 종지나물, 꼭두서니, 냉이, 꽃다지, 제비꽃, 비비추, 꽃잔디, 긴병꽃풀, 할미꽃, 애기똥풀

 

● 자작나무 / 박상진 경북대 교수 (우리나무의세계1)

 

시인 백석(1912~1995)이 1938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쓴 〈백화(白樺)〉주란 시를 읽어본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山너머는 平安道 땅이 뵈인다는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이렇게 북한의 산악지방에서 시작한 자작나무는 만주를 지나 시베리아를 내달리고 다시 유럽 북부까지 북반구의 추운 지방은 온통 그들의 차지다. 북한이 자작나무가 자라는 남방한계선에 해당하며, 남한에서는 자연 상태로 자라는 자작나무 숲이 없다. 따뜻한 남쪽나라를 마다하고 삭풍이 몰아치는 한대지방을 선택한 자작나무는 자기들만의 터를 잡는데 성공한 셈이다. 백석의 시에서처럼 추운 땅에서는 다른 나무들을 제치고 숲을 이루어 자기들 세상을 만든다. 한대지방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사진을 보면 눈밭 속에 처연하게 서 있는 하얀 나무들은 대부분 자작나무다. 같이 자라는 사시나무 종류는 푸른색이 들어간 흰빛이라서 이들과는 구분이 된다.

 

자작나무는 영하 20~30도의 혹한을, 그리 두꺼워 보이지 않는 새하얀 껍질 하나로 버틴다. 종이처럼 얇은 껍질이 겹겹이 쌓여 있는데, 마치 하얀 가루가 묻어날 것만 같다. 보온을 위하여 껍질을 겹겹으로 만들고 풍부한 기름 성분까지 넣어 두었다. 살아 있는 나무의 근원인 부름켜(형성층)가 얼지 않도록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을 세운 것이다. 나무에게는 생존의 설계일 뿐이지만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껍질은 쓰임이 너무 많다.

 

두께 0.1~0.2밀리미터 남짓한 흰 껍질은 매끄럽고 잘 벗겨지므로 종이를 대신하여 불경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쓰였다. 경주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를 비롯하여 서조도(瑞鳥圖) 등은 자작나무 종류의 껍질에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자작나무 종류 중 정확히 무슨 나무인지는 앞으로 더 조사해보아야 한다. 영어 이름인 버취(Birch)의 어원은 ‘글을 쓰는 나무 껍데기’란 뜻이라고 한다.

 

북부지방의 일반 백성들도 자작나무 껍질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껍질은 기름기가 많아 잘 썩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을 붙이면 잘 붙고 오래간다. 불쏘시개로 부엌 한구석을 차지했으며, 탈 때 나는 자작자작 소리를 듣고 자작나무란 이름을 붙였다. 한자 표기는 지금과 다르지만 결혼식에 불을 켤 수 있는 나무란 뜻으로 ‘화혼(華婚)’이라 했고, ‘화촉을 밝힌다’라는 말도 자작나무 껍질에서 온 말이다. 옛사람들은 자작나무를 ‘화(樺)’라 하고 껍질은 ‘화피(樺皮)’라 했는데, 벚나무도 같은 글자를 사용했다. 전혀 다른 나무임에도 같은 글자로 표기한 것은 껍질로 활을 감는 등 쓰임이 같았기 때문이다.

 

자작나무는 햇빛을 좋아하여 산불이나 산사태로 빈 땅이 생기면 가장 먼저 찾아가 자기 식구들로 숲을 만들어 빠른 속도로 자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날라온 가문비나무나 전나무 씨앗이 밑에서 자라나 자기 키보다 더 올라오면, 새로운 주인에게 땅을 넘기고 조용히 사라져 버린다. 내 손으로 일군 땅을 자자손손 세습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부(富)는 당대로 끝내는 자작나무의 삶은 우리도 본받을 만하다. 수명도 100년 전후로 나무나라의 평균수명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한마디로 고상하고 단아한 외모처럼 처신이 깔끔하다.

 

자작나무는 키 20~30미터, 줄기둘레가 한두 아름에 이른다. 집단으로 곧바로 자라며 재질이 좋아 목재로의 쓰임도 껍질 못지않다. 황백색의 깨끗한 색깔에 무늬가 아름답고 가공하기도 좋아 가구나 조각, 실내 내장재 등으로 쓰이며 펄프로도 이용한다. 또 4월 말경의 곡우 때는 고로쇠나무처럼 물을 뽑아 마신다. 사포닌 성분이 많아 약간 쌉쌀한 맛이 나는 자작나무 물은 건강음료로 인기가 높다. 밑변이 짧은 긴 삼각형의 잎이 특징이고, 밑으로 늘어진 수꽃을 잔뜩 피워 바람에 꽃가루를 날려 보내서 수정시킨다. 자작나무가 많이 자라는 곳에서는 꽃 피는 봄날, 호흡기 계통의 화분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 자두나무 / 박상진 경북대 교수 (우리나무의세계1)

 

어린 시절,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쯤으로 기억된다. 나는 학교 앞 문방구 맨 앞에 진열된 예쁜 뿔피리가 너무 갖고 싶었다. 당시는 어렵던 시절이라 집에 말해봤자 연필과 공책 이외의 이런 사치품을사줄 리 만무했다. 그래서 혼자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마당 구석의 자두를 따 모아 장날에 내다 팔기로 한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장날 아침, 작은 자루를 둘러메고 시장으로 간 나는 좌판을 펴고 자두의 경상도 사투리인 “왜추 사이소!”를 외치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의 외침이 불쌍했던지 자두 한 자루는 금세 팔려나갔고, 어느새 뿔피리를 사기에 충분한 돈이 주머니에 들어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 저녁에 터졌다. 나의 좌판장사 소문이 집에까지 퍼져 부모님도 알게 된 것이다. 양반집 종손인 내가 장사를 했다는 것은 가문의 수치였다. 결국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다. 수익금을 압수당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장사를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머릿속 깊이 각인되었다. 그때 만약 부모님이 나의 좌판장사를 기특하다고 칭찬해주셨다면 나의 인생길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초여름, 과일가게에서 만나는 진한 보랏빛 자두는 우리의 미각을 돋운다. 자두는 《삼국사기》에 복숭아와 함께 백제 온조왕 3년(15)에 처음 등장한다. 이를 미루어 보아 우리나라에 시집온 것은 삼한시대로 추정된다. 적어도 2천 년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과일나무인 것이다.

 

자두는 우리말로 ‘오얏’이다. 오얏의 한자말은 이(李)로 우리나라 성씨로는 두 번째 많은 이씨를 대표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도문대작》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도(紫桃)’라고도 하였다. 보랏빛이 강하고 복숭아를 닮았다는 뜻이다. 이후 자도는 다시 자두로 변하여 오늘에 이른다. 널리 친근하게 사용되던 오얏이 자두보다는 훨씬 더 정이 가는 이름이다.

 

자두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는 ‘도리(桃李)’라 하여 대부분 복숭아와 짝을 이룬다. 중국이나 우리의 옛 시가에 보면 도리를 노래한 구절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도리는 또 다른 사람을 천거하거나 쓸 만한 자기 제자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도리만천하’라고 하면 믿을 만한 자기 사람으로 세상이 가득 찼다는 뜻으로 실세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의 역사서에 등장하는 도리는 흔히 이상 기후를 나타내는 표준으로 삼았다. 늦가을에 꽃이 피었다거나, 우박의 굵기가 도리만 했다는 기록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천자문》에는 ‘과진이내(果珍李柰)’라 하여 과일 중 보배는 자두와 능금이라고 했다. 그만큼 맛이 좋다는 뜻이겠으나, 오늘날의 우리 미각으로 본다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자두는 개량종으로 굉장히 맛이 좋아졌음에도 흔히 자두라고 하면 신맛을 상상하여 입안에 군침부터 돈다. 재래종 자두는 엄청난 신맛에 요즈음 사람들은 결코 먹으려들지 않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두의 일본 이름은 아예 신 복숭아란 뜻인 ‘수모모’라고 했겠는가.

 

옛사람들은 복숭아와 함께 봄에는 오얏 꽃을 감상하면서 시 한 수 읊조리고, 여름에는 익은 열매를 따먹는 과일나무로서 곁에 두고 좋아했다. 좀 더 많은 과일이 열리게 하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동국세시기》에는 ‘나무시집보내기[嫁樹]’라 하여 정월 초하루나 보름에 과일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넣었다. 이렇게 하면 과일이 많이 달린다고 한다. 대추나무나 석류나무 등의 다른 과일나무에도 가수를 하며, 장대로 과일나무를 두들기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주술적인 행사뿐만 아니라 잎에서 만들어진 광합성 양분이 뿌리나 줄기의 다른 곳에 가는 것을 줄여 상대적으로 과일에 많이 가도록 유도하는 과학적인 조치다.

 

흔히 쓰는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란 말은 자두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이다. 의심받을 만한 행동은 아예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만큼 자두나무는 사람들 가까이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나무임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가 이씨 왕조이기는 하지만 자두를 상징물로 쓰지 않은 탓에 자두나무를 특별히 우대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다만 대한제국에 들어서면서 왕실의 문장(紋章)을 자두 꽃으로 했다. 덕수궁 석조전 용마루, 구한말 우표 등에 사용되었고, 지금은 전주 이씨 종친회 문양이다.

 

자두나무는 전국에 걸쳐 인가 부근에 과일나무로 심고 있으며, 10여 미터 정도 자라는 중간 키의 갈잎나무다. 잎은 달걀 크기로 어긋나기로 달리고 끝이 차츰 좁아지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봄에 동전 크기만 한 새하얀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데, 보통 세 개씩 달린다. 열매는 둥글고 밑 부분이 약간 들어간 모양으로 여름에 보랏빛으로 익는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자두는 대부분 1920년경부터 심기 시작한 개량종 서양자두(학명 Prunus domestica)로 달걀만 한 굵기에 진한 보라색이며 과육은 노랗다. 재래종 자두나무는 중국 양쯔강 유역이 원산지로 열매는 둥글거나 갸름하며, 방울토마토보다 약간 큰 크기에 과육도 적다. 서양자두에 밀려난 재래종 ‘오얏나무’는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