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산책]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다

[봄꽃여행] (3) 송강누리길 제11코스, 고양동누리길 제12코스에서 만난 풀꽃 나무꽃: 개나리, 백송, 은행나무, 목련, 복사나무 (2019.04.20)

푸레택 2019. 4. 20. 20:09

 

 

 

 

 

 

 

 

 

 

 

 

 

 

 

 

 

 

 

 

● 고양누리길 14개 코스 걷기 2분기 3회차

 

☆ 일시: 2019.04.20(토) 09:30~13:30

☆ 걷기코스: 고양동누리길(제12코스), 송강누리길(제11코스 일부) / 9.1km

 

☆ 삼송역(三松驛) 8번 출구- 774번 간선버스- 안장고개, 선유동(仙遊洞) 입구 출발- 오로시(烏鷺詩) 이직(李稷) 묘(墓)- 선유랑마을-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 묘(墓)- 고양향교(高陽鄕校), 중남미문화원(中南美文化院)- 대자산(大慈山)- 최영(崔瑩) 장군 묘- 밀풍군(密豊君) 이탄(李坦) 묘(墓)- 명나라궁녀 굴씨(屈氏)여인 묘- 필리핀 참전비- 공릉천(恭陵川)- 송강(松江)마을- 정철(鄭澈) 시비(詩碑)- 850번 버스- 화정역(花井驛)- 집 도착

 

☆ 풀꽃 나무꽃: 백목련, 목련, 자목련, 왕벚나무, 산벚나무, 능수벚나무, 개나리, 진달래, 복숭아나무, 회잎나무, 팥배나무, 신갈나무, 자작나무, 은행나무, 박태기나무, 백송, 자두나무, 복사나무, 서양민들레, 현호색, 노루발풀, 종지나물, 꼭두서니, 냉이, 꽃다지, 제비꽃, 비비추, 꽃잔디, 긴병꽃풀, 할미꽃, 애기똥풀

 

● 개나리 / 박상진 경북대 교수(우리나무의세계1)

 

나리 나리 개나리

잎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동화작가 윤석중의 〈봄나들이〉는 유년을 되돌아보게 하는 유명한 동요다. 개나리는 잎이 피기 전, 나뭇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샛노란 꽃이 길게 늘어서서 뭉게구름처럼 피어난다. 홀로 핀 개나리꽃은 상상할 수 없다. 춤추는 홍학이 무리를 이룰 때 장관이듯 개나리도 수백 수천 그루가 무리를 지어 필 때 아름다움이 더한다.

 

노란빛은 희망과 평화를 상징하고, 누구에게나 마음의 안정을 주는 색깔이다. 물론 개나리보다 먼저 산수유와 생강나무가 노란 꽃으로 봄 치장을 하여 겨울잠에서 대지를 깨운다. 그래도 무르익어 가는 봄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꽃은 개나리가 단연 으뜸이다.

 

개나리란 이름은 초본식물인 나리꽃보다 좀 작고 아름다움이 덜하다는 뜻으로 짐작된다. 북한에서는 접두어 ‘개’가 들어간 식물의 이름을 모두 바꾸었으나 개나리만은 그대로 두었다. 개나리는 나리꽃과 관련을 짓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개나리가 꽃으로 우리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화암수록(花菴隨錄)》주이다. 강인재의 〈화목(花木) 9품〉 중 맨 뒤 9품에 무궁화와 함께 개나리가 나온다. 이 아름다운 꽃을 보고 선조들이 시 한 수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꽃으로서 관심을 가져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개나리는 네 개의 꽃잎으로 갈라져 있으나 아랫부분은 합쳐져 있다. 얼핏 서양의 종 모양이 연상되는데, 그래서인지 영어 이름도 '황금종(golden bell)'이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으며, 땅에서부터 여러 가닥의 줄기가 올라와 포기를 이룬다. 그대로 두면 가지가 활처럼 휘어져 밑으로 처진다. 약간 높은 언덕바지에 산울타리로 심어 두면 꽃 피는 계절에 올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꽃이 진 개나리는 맑은 날의 우산처럼 쓰임새가 없는 것으로 알기 쉽다. 그러나 가을에 열리는 볼품없는 열매가 옛날에는 귀중한 약재로 쓰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개나리의 열매는 연교(連翹)라 하여 한약재로 쓰인다. 종기의 고름을 빼고 통증을 멎게 하거나 살충 및 이뇨작용을 하는 내복약으로 쓴다. 조선시대에 임금님께 올리는 탕제로 처방했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귀한 약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개나리 열매는 그렇게 흔치 않다.

 

개나리꽃은 암술이 낮고 수술이 높은 단주화(短柱花) 개체와 그 반대인 장주화(長柱花) 개체가 있다. 수정이 되어 열매가 열리려면 단주화가 장주화가 섞여 있어야 열매를 더 잘 맺는다. 우리 주변에는 단·장주화가 섞인 개나리가 훨씬 적다.주 열매가 잘 열리지 않아도 번식에는 문제가 없다. 번거롭게 씨를 받아 심을 필요 없이 가지를 꺾어다 꽂아 놓기만 해도 쉽게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키 3미터 정도이며 잎과 가지는 서로 마주보면서 붙어 있다. 마디 부분 이외의 가지 골속은 비어 있다. 개나리의 학명을 살펴보면 종(種) 이름에 'koreana'가 들어 있다. 우리 땅이 개나리 조상의 중심지였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개나리 식구들은 개나리를 비롯하여 산개나리, 만리화, 장수만리화, 의성개나리 등이 있다. 모양새가 비슷비슷하나 만리화와 장수만리화는 잎이 크고 넓은 타원형이므로, 잎이 좁은 다른 개나리들과 구분할 수 있다.

 

● 백송 / 박상진 경북대 교수(우리나무의 세계2)

 

백송(白松)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진 소나무 종류 중 하나다. 나무 전체가 하얀 것이 아니라 줄기가 회백색이라서 멀리서 보면 거의 하얗게 보인다. 무엇이든 생김이 독특하면 금세 눈에 띄기 마련인데, 백송도 한 번 보기만 하면 잊어버릴 수 없을 만큼 인상이 남는다. 하얀 얼룩 껍질이 트레이드마크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껍질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는 흑갈색의 일반 소나무와는 사뭇 다르다.

 

백송의 껍질이 처음부터 하얀 것은 아니다. 어릴 때는 거의 푸른빛이었다가 나이를 먹으면 큰 비늘조각으로 벗겨지면서 흰빛이 차츰차츰 섞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흰 얼룩무늬가 많아지다가 고목이 되면 거의 하얗게 된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가 점점 백발이 되듯, 백송의 일생은 이렇게 하얀 껍질로 나잇값을 한다. 사람과 다른 것이 있다면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하얀 껍질이 결코 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아는 백색은 밝고 정갈하면서 범접하기 어려운 고고함이 배어 있다. 그래서 백송의 흰 껍질은 좋은 일이 일어날 길조를 상징한다. 지금의 서울 헌법재판소 내에 있는 천연기념물 8호로 지정된 재동 백송은 구한말 흥선대원군의 집권 과정을 지켜본 나무다. 그가 아직 권력의 핵심에 들어가기 전, 안동 김씨의 세도를 종식시키고 왕정복고의 은밀한 계획을 세웠던 곳이 바로 이 백송이 바라다 보이는 조대비의 사가(私家) 사랑채다. 흥선대원군은 불안한 나날을 오직 백송 껍질의 색깔을 보면서 지냈다고 한다. 이 무렵 백송 밑동이 별나게 희어지자 개혁정치가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 거의 150여 년 뒤인 2004년, 현직 대통령이 쫓겨날 위기에 몰렸을 때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헌법재판소의 백송 껍질이 더 희게 보였다고 한다. 사실 백송 껍질이 더 하얗게 보이는 것은 나무의 영양상태가 좋아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일을 과학의 잣대로 보면 재미가 없어진다. 있는 그대로의 믿음을 가질 때 그 믿음이 바로 현실이 되기도 한다.

 

백송은 중국 중부와 북서부를 원래의 자람 터로 하는 나무다. 원산지에서도 자연 상태로 만나기가 어려운 희귀수종이다. 특별한 모습 때문에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주로 가로수나 정원수로 심고 있다. 우리나라의 백송은 오래전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처음 가져다 심기 시작한 것이다.

 

백송은 만나기도 어렵고 흰 나무껍질 때문에 백의민족이라는 민족의 정서에도 맞아 예부터 귀한 나무의 대표였다. 그래서 웬만한 굵기의 백송은 특별 보호목이 될 정도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남한에 다섯 그루, 북한은 개성에 한 그루의 백송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 중 충남 예산의 ‘추사백송’을 제외하면, 자라는 곳은 모두 서울·경기지방이다. 중국 왕래를 할 수 있는 고위 관리가 주로 서울·경기에 살았던 탓일 터다.

 

백송은 흰 껍질뿐만 아니라 잎의 생김새도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의 소나무 종류를 크게 나눌 때 잎이 두 개인 소나무와 곰솔, 그리고 잎이 다섯 개인 잣나무 등이 있다. 반면에 백송은 세 개의 잎을 가진다. 어느 쪽에 들어가야 할지 조금 애매하지만, 잣나무와 같이 잎 속의 관다발이 하나이므로 잣나무 종류에 포함시킨다.

 

백송은 키 15미터, 지름이 두 아름 정도에 이를 수 있는 큰 나무다. 아래부터 줄기가 갈라지는 경향이 있으며, 수관은 둥글게 발달한다.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다음해 10월에 익어서 달걀모양의 솔방울이 된다.

 

● 은행나무 / 박상진 경북대 교수(우리나무의세계2)

 

은행나무는 페름기(2억 3천~2억 7천만 년 전)에 초기 형태의 은행잎 모양이 알려질 만큼 일찍 지구상에 나타났다. 조금 늦추어 잡아도 공룡시대인 쥐라기(1억 3천 5백~1억 8천만 년 전) 이전부터 지구상에 삶의 터전을 잡아왔다. 대체로 중생대에 이르러서는 약 11종 정도로 번성하였으며, 백악기(6천 5백만~1억 3천 5백만 년 전)에는 지금의 모양과 거의 같은 은행나무가 아시아, 유럽, 북미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 후 지질학적인 대변동으로 제3기에 들어오면서 은행나무 일가는 지금의 은행나무만 남게 된다. 그나마 북미는 약 7백만 년 전, 유럽은 2백 5십만 년 전쯤에 멸종되었고, 오늘날에는 극동아시아 대륙에서만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있었던 혹독한 빙하시대를 지나면서 많은 생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는데도 의연히 살아남은 은행나무를 우리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은행나무가 처음 지구상에 출현할 당시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계의 냉엄한 현실에서 업그레이드를 소홀히했다가는 순식간에 영겁의 세계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태어날 당시는 지금과 같은 잎 모양이 아니고, 손바닥을 펼친 것처럼 여러 개로 갈라져 있었다. 차츰 진화가 되면서 갈라진 잎들이 합쳐져 오늘날의 부채꼴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이다.

 

대체로 2~3억 년 전의 화석식물인 은행나무가 멸종되지 않고 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강력한 환경 적응력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춥거나 덥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라도 살아갈 수 있고, 아무리 오래된 나무라도 줄기 밑에서 새싹이 돋아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나이가 수백 년에서 천 년이 넘는 고목 은행나무의 상당수는 원래의 줄기는 없어지고 새싹이 자라 둘러싼 새 줄기이다. 잎에는 플라보노이드, 터페노이드(Terpenoid), 비로바라이드(Bilobalide) 등 항균성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병충해가 거의 없다. 열매는 익으면 육질의 외피에 함유된 헵탄산(Heptanoic acid) 때문에 심한 악취가 나고, 그 외에 긴코릭산(Ginkgolic acid) 등이 들어 있어서 피부염을 일으키므로 사람 이외에 새나 다른 동물들은 안에 든 씨를 발라먹을 엄두도 못 낸다. 씨앗을 먼 곳까지 보내는 것을 포기한 대신에 동물의 먹이가 되는 것을 원천봉쇄한 셈이다.

 

한때 지구상의 여러 대륙에 있던 은행나무 종족들이 최종적으로 살아남게 된 곳은 중국이다. 자생지와 관련된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양쯔강 하류의 톈무산(天目山) 일대에서 자생지로 추정되는 은행나무들을 찾아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때 불교 전파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은행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로 유명하다. 은행나무 고목으로서 보호받고 있는 것만 해도 거의 800그루에 이른다. 이들 중 천연기념물 22그루, 시도기념물 28그루가 문화재 나무로 지정되어 있으며, 나이가 천 년이 넘은 은행나무도 여러 그루 알려져 있다.

 

은행나무는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다른 나무가 갖지 못하는 태고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특별함이 있다. 우선 나무를 잘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세포 속에 독특한 모양을 한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정도 되는 다각형의 작디작은 ‘보석’이 들어 있다. 이것은 수산화칼슘이 주성분인데, 현미경 아래에서 영롱한 빛을 내어 은행나무에 또 하나의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서울 성균관 명륜당에 천연기념물 59호로 지정된 문묘은행나무를 비롯한 몇몇 고목 은행나무에는 ‘유주(乳柱)’라는 특별한 혹이 생기기도 한다. 유주는 모양새가 여인의 유방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공기뿌리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암수가 다른 나무로 진기하게도 수꽃에는 머리와 짧은 수염 같은 꽁지를 가지고 있는 정충이 있다. 그래서 동물의 정충처럼 비록 짧은 거리지만 스스로 움직여서 난자를 찾아갈 수 있는 특별한 나무다.

 

은행나무는 흔히 바늘잎나무에 넣는다. 잎이 넓적한 모양새로 보아서는 넓은잎나무에 속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은행나무를 이루고 있는 나무세포의 종류와 모양, 그리고 배열로는 바늘잎나무와 거의 비슷하다. 사실 나무 종류를 보다 정확하게 나눈다면 ‘은행수(銀杏樹), 침엽수, 활엽수’로 분류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나눔이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선조를 따지고 한참을 올라가도 여전히 한 종류밖에 없어서 식물분류학의 단위로 보아도 1목, 1과, 1속, 1종일 뿐이다. 하나밖에 없는 은행나무 때문에 ‘은행수’를 따로 떼어내어 취급하기는 너무 불편하니 편의상 바늘잎나무에 포함시킨다.

 

● 복사나무 / 박상진 경북대 교수(우리나무의세계1)

 

복사나무는 중국 서북부의 황하 상류 고산지대가 원산지로 아주 옛날부터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과일나무로 자리를 잡았다. 복숭아라는 맛있는 과일은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뿐만 아니라 차츰 신선이 먹는 선과(仙果)로 품격이 올라갔다. 복사나무에 대한 수많은 전설이 만들어지고 민속이 얽혀 들었으며, 병마를 쫓아내는 선약(仙藥)의 나무가 되기도 했다.

 

고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서왕모(西王母)는 곤륜산에 사는 신선인데, 어느 날 한무제를 만나게 된다. 서왕모는 3천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천도복숭아 일곱 개를 선물로 가져가 서로 나누어 먹는다. 복숭아를 신선이 먹는 불로장생의 과일로 받아들이게 된 시발점이다.

 

이런 복사나무와 여기에 얽힌 설화가 중국에서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삼국사기》에 벌써 그 기록이 나온다. 거의 2천 년 전인 백제 온조왕 3년(15)에 “겨울이 가까워 오는 10월에 벼락이 치고 복사나무와 자두나무 꽃이 피었다”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이상 기후의 상징으로 예를 들 정도이니, 이미 이보다 훨씬 전에 들어와 당시에는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시대와 고려 및 조선왕조를 거치는 동안 복사나무는 우리의 재래 과일나무로 갈수록 더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더 맛있고 굵은 품종을 골라 키우는 안목도 있었을 터이나 기록으로는 반도(蟠桃), 홍도(紅桃), 벽도(碧桃) 등의 이름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1910년경 경기도에서 조사한 자료에는 10종의 품종 이름이 나온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먹는 개량 복숭아는 1906년 뚝섬에 원예시험장이 설치되면서 미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새 품종을 들여온 것들이다.

 

복사나무는 복숭아라는 과일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봄날을 화사하고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복사꽃을 선사한다. 연분홍의 아름다운 꽃이 핀 복사 밭은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주에서도 그렸듯이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향을 대신했다.

 

복사나무가 갖는 또 다른 상징성은 못된 귀신을 쫓아내고 요사스러운 기운을 없애주는 주술적인 징표이다. 옛날 중국에는 동해 가운데 도삭산이 있고, 거기에 큰 복사나무가 3천 리에 걸쳐 뻗쳐 있었다고 한다. 가지가 뻗은 동북쪽의 작은 귀문(鬼門)을 통해 모든 귀신들이 출입했다. 문지기 귀신인 울루(鬱壘)와 신다(神茶)는 악독한 귀신이 들어오면 꽁꽁 묶어서 호랑이에게 바로 넘겨주었다. 이후 중국에서는 설날 아침, 마귀를 쫓기 위하여 문짝에 복사나무로 만든 도부(桃符), 혹은 도판(桃板)이라는 작은 나뭇조각에 울루와 신다의 이름을 적어서 걸어두기 시작했다. 이 풍속은 우리나라에 전해져 설날, 입춘, 단오에 도부를 걸거나 복사나무 그림을 그려 붙였다.주 도삭산의 복사나무처럼 아무 귀신이나 출입할 수 있으므로 울루와 신다가 지키지 않는 복사나무는 자칫 못된 귀신의 소굴이 된다. 그래서 옛 풍습으로 집 안에는 복사나무를 심지 않았다.

 

복사나무는 키가 6미터 정도까지 자라기도 하지만 복사 밭에서 만나는 재배품종은 3미터 남짓이다. 나무줄기나 가지에 수지(樹脂)가 들어 있어서 상처가 나면 맑은 생고무처럼 덮어준다. 잎은 손가락 한두 개 길이로 긴 타원형이다. 꽃은 4월 중순경 잎보다 먼저 피는데, 대부분 분홍색이지만 품종에 따라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산에서 흔히 만나는 ‘개복숭아’는 재배 복숭아의 씨앗이 떨어져 자란 것이다.

 

복사나무는 잎, 꽃, 열매 모두 약재로 쓰인다. 특히 동쪽으로 뻗은 가지와 뿌리, 열매의 약효가 뛰어나다고 믿는다. 《동의보감》에는 복숭아씨, 꽃, 나무에 달린 채 마른 건조 복숭아, 복숭아 털, 복사나무 벌레, 복사나무 속껍질, 잎, 나무진, 열매는 물론이고 도부에 써 붙인 부적 글까지 모두 질병 치료에 쓴다고 했다. 꽃잎이 여러 겹으로 중첩된 만첩백도와 만첩홍도는 꽃을 보기 위해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