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벚꽃을 보고 느낌이 일어 한용운,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이기철, 벚꽃 그녀에게, 벚꽃나무 유홍준 (2019.04.13)

푸레택 2019. 4. 13. 23:35

 

 

 

 

 

 

 

 

 

 

 

 

 

 

 

 

 

 

 

 

● '고양 독립운동가의 길 함께걷기'에 참가하여 호수공원 벚꽃길을 걷다 (2019.04.13)

 

'고양 독립운동가의 길 함께 걷기'에 참가하여 일산 호수공원 벚꽃 길을 걷다. 봄날은 가슴 설레도록 아름답다. 발길 닿는 곳, 눈길 머무르는 곳 어디든 봄은 무르익는다. 그러나 봄날은 간다. 세월도 흐른다. 온갖 시름 다 잊고 지금 이 순간의 봄만을 만끽하고 싶다.

 

● 見櫻花有感(견앵화유감)

벚꽃을 보고 느낌이 일어 / 韓龍雲(한용운)

 

​昨冬雪如花 今春花如雪

(작동설여화 금춘화여설)

雪花共非眞 如何心欲裂

(설화공비진 여하심욕렬)

 

지난 겨울 내린 눈이 꽃과 같더니

이 봄엔 꽃이 되려 눈과 같구나

눈도 꽃도 참 아님을 뻔히 알면서

왜 이리도 내 마음은 찢어지는지

 

●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 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청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하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 벚꽃, 그녀에게 / 김종제

 

누군가를 저렇게 간절히 원하다가

상사병으로 밤새 앓아 누워

죽음의 문턱까지 가 본 적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원망하다가

눈물 하루종일 가득 흘려

깊은 강물 되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목 빼고 기다리다가

검은머리 한 세월

파뿌리 흰머리가 되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못 잊어 그리워하다가

붉은 목숨 내놓고

앞만 보고 행진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찾아다니며

사막의 빙하의 길

오래 걸어 신 다 닳아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단 며칠이라도 얼굴 보여주려고

이 세상 태어나기를 원한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몸 눕혀 불길로 공양해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목숨 바쳐

순교자의 흰 피를 뿌려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말없는 눈빛으로 다가가

속 깊은 우물이 되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천년 만년 바람 불고 눈비가 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절대적인 꿈과 희망이 되어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전율이 감도는

노래와 춤이 되어 본 적이 있느냐

어제 벚꽃, 그녀에게

숨김없이 옷을 다 벗고

사랑한다고 고백해 본 적이 있느냐

 

● 벚꽃나무 / 유홍준

 

추리닝 입고 낡은 운동화 구겨 신고 마트에 갔다온다 짧은 봄날이 이렇게 무단횡단으로 지나간다 까짓 도덕이라는 거, 뭐 별거 아니지 싶다 봄이 지나가는 아파트 단지 만개한 벚꽃나무를 보면 나는 발로 걷어차고 싶어진다 화르르 화르르 꽃잎들이 날린다 아름답다 무심한 발바닥도 더러는 죄 지을 때가 있다 머리끝 생각이 어떤 경로를 따라 발바닥까지 전달되는지... 그런 거 관심 없다 굳이 알 필요 없다 그동안 내가 배운 것은 깡그리 다 엉터리, 그저 만개한 벚꽃나무를 보면 나는 걷어차고 싶어진다 세일로 파는 다섯개들이 라면 한 봉지를 사서 들고 허적허적 돌아가는 길, 내 한 쪽 손잡은 딸아이가 재밌어서 즐거워서 자꾸만 한 번 더 걷어차 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