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예술] 역사 예술 문화 경영 574

[이은화의 미술시간]〈166〉저항하지 않는 원숭이

저항하지 않는 원숭이[이은화의 미술시간]〈166〉 (daum.net) 저항하지 않는 원숭이[이은화의 미술시간]〈166〉 피터르 브뤼헐, ‘두 마리 원숭이’, 1562년경.원숭이 두 마리가 쇠사슬에 묶인 채 아치형 창가에 앉아 있다. 생김새로 보아 서아프리카 삼림에 서식하는 붉은 머리의 긴꼬리원숭이다. 가엾은 이 news.v.daum.net 원숭이 두 마리가 쇠사슬에 묶인 채 아치형 창가에 앉아 있다. 생김새로 보아 서아프리카 삼림에 서식하는 붉은 머리의 긴꼬리원숭이다. 가엾은 이들 뒤로는 벨기에 항구도시 안트베르펜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인다. 아프리카에 있어야 할 원숭이들은 대체 왜 여기에 묶여 있는 걸까?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은 자신이 살던 시대를 예리한 눈으로 관찰해 화폭에 담고자 했다..

[이은화의 미술시간]〈165〉인생의 폭풍우

인생의 폭풍우[이은화의 미술시간]〈165〉 (daum.net) 인생의 폭풍우[이은화의 미술시간]〈165〉 제임스 티소 ‘지나가는 폭풍우’, 1876년.인생에 어찌 따뜻한 봄날만 있을까. 살다보면 거센 폭풍우도 만나기 마련이다. 이 그림 속엔 바다를 배경으로 젊은 남녀가 등장한다. 폭풍우가 불어닥 news.v.daum.net 인생에 어찌 따뜻한 봄날만 있을까. 살다보면 거센 폭풍우도 만나기 마련이다. 이 그림 속엔 바다를 배경으로 젊은 남녀가 등장한다. 폭풍우가 불어닥치려는지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한데,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테라스 밖에 서 있다. 남자에게 등을 돌린 여자는 실내 등받이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화면 밖 관객만 응시한다. 이들은 대체 누구기에 이 궂은 날에 이러고 있는 걸까? 제임스 티소는 1..

[이은화의 미술시간]〈164〉카페는 세상의 축소판

카페는 세상의 축소판[이은화의 미술시간]〈164〉 (daum.net) 카페는 세상의 축소판[이은화의 미술시간]〈164〉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 1888년.카페는 만남과 휴식, 사교의 장소다.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빈센트 반 고흐 역시 카페의 모습을 여러 번 화폭에 담았다. 그런데 이 그림 속 카페는 전혀 news.v.daum.net 카페는 만남과 휴식, 사교의 장소다.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빈센트 반 고흐 역시 카페의 모습을 여러 번 화폭에 담았다. 그런데 이 그림 속 카페는 전혀 활발한 사교의 공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왠지 음울하고 고독해 보인다. 고흐는 왜 이런 모습을 그린 걸까? 그림 속 카페는 남프랑스 아를에 머물 때 고흐가 몇 달간 세 들어 살던 곳이다. 그는 이 멜랑콜리한 풍경..

[이은화의 미술시간]〈163〉바람을 담은 자화상

바람을 담은 자화상[이은화의 미술시간]〈163〉 (daum.net) 바람을 담은 자화상[이은화의 미술시간]〈163〉 귀스타브 쿠르베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1854년.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미술의 선구자 귀스타브 쿠르베가 그린 이 유명한 그림의 제목은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다. 후원자를 위해 그린 news.v.daum.net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미술의 선구자 귀스타브 쿠르베가 그린 이 유명한 그림의 제목은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다. 후원자를 위해 그린 그림인데, 화가 자신의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왜 이런 제목을 붙인 걸까? 가난한 농민이나 노동자의 비참한 모습을 종종 그렸던 쿠르베는 그림이 팔리지 않아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34세가 되던 1853년 운 좋게도 부유한 후원자를..

[이은화의 미술시간]〈162〉피카소와 손녀

피카소와 손녀[이은화의 미술시간]〈162〉 (daum.net) 피카소와 손녀[이은화의 미술시간]〈162〉 파블로 피카소 ‘안락의자에 앉은 올가의 초상’, 1918년.유명 예술가나 수집가의 죽음은 미술시장을 들썩이게 한다. 작품이 대거 시장에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1973년 파블로 피카소가 유언 없 news.v.daum.net 유명 예술가나 수집가의 죽음은 미술시장을 들썩이게 한다. 작품이 대거 시장에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1973년 파블로 피카소가 유언 없이 사망하자, 손녀 마리나는 1만 점이 넘는 작품을 포함해 유산의 5분의 1을 상속받았다. 그녀는 유작들을 냉정하게 처분하기 시작했는데, 2015년에는 대거 경매에 내놓았다. 비참했던 어린 시절을 잊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

[이은화의 미술시간]〈161〉기이한 가족 그림

기이한 가족 그림[이은화의 미술시간]〈161〉 (daum.net) 기이한 가족 그림[이은화의 미술시간]〈161〉 호아킨 소로야, ‘엄마’, 1895∼1900년.침대에 누운 엄마와 아기를 그린 가족화다. 그런데 설정이 기이하다. 침구는 물론이고 벽면까지 모두 흰색에다 아무런 장식이 없고, 이불 위로는 두 사람의 news.v.daum.net 침대에 누운 엄마와 아기를 그린 가족화다. 그런데 설정이 기이하다. 침구는 물론이고 벽면까지 모두 흰색에다 아무런 장식이 없고, 이불 위로는 두 사람의 머리만 나와 있다. 게다가 아기는 엄마에게서 떨어져 있다. 갓난아기는 엄마 품에 안기거나 젖을 빠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게 일반적인데 말이다. 호아킨 소로야는 20세기 초, 파블로 피카소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생존한 가..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마지막 수업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마지막 수업/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daum.net)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마지막 수업/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중일전쟁(1937)은 일제강점기의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일제는 제3차 조선교육령을 선포해 1938년부터 각급 학교 수업을 국어(일본어)로 할 것을 강요하며 철저한 황국신민 교육을 시행하려 했다. news.v.daum.net 중일전쟁(1937)은 일제강점기의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일제는 제3차 조선교육령을 선포해 1938년부터 각급 학교 수업을 국어(일본어)로 할 것을 강요하며 철저한 황국신민 교육을 시행하려 했다. 한국사학자 이기백(1924~2004)은 1938년 당시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그때까지 오산학교에는 일본어를 가르..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일본의 양심 세력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일본의 양심 세력/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daum.net)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일본의 양심 세력/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일본이 청일전쟁(1894)과 러일전쟁(1904)에서 승승장구하며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던 시기는 변절과 배신이 난무하던 때이기도 했다. 메이지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富蘇 news.v.daum.net 일본이 청일전쟁(1894)과 러일전쟁(1904)에서 승승장구하며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던 시기는 변절과 배신이 난무하던 때이기도 했다. 메이지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언론인 도쿠토미 소호(?富蘇峰)는 청일전쟁 직후 재빨리 군국주의자로 변신해 자신이 질타하던 정부의 고위직에 올라 조롱거리가 됐다. 국가주의를 공격하던 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에라스뮈스 프로그램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에라스뮈스 프로그램/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daum.net)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에라스뮈스 프로그램/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유럽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진영으로 양분돼 서로를 ‘사탄’이라고 비난하며 대립했다. 세계시민 에라스뮈스(1466~1536)는 극단적 갈등의 시기에 종교와 국경을 news.v.daum.net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유럽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진영으로 양분돼 서로를 ‘사탄’이라고 비난하며 대립했다. 세계시민 에라스뮈스(1466~1536)는 극단적 갈등의 시기에 종교와 국경을 초월한 자유와 관용을 주장했다. 그에게는 교양과 정신적 귀족으로 이루어진 상위 세계, 그리고 천박과 야만이라는 하위 세계 두..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영어의 달콤한 복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영어의 달콤한 복수/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daum.net)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영어의 달콤한 복수/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일제강점기에 한국어가 일본어에 밀려났듯이 영어도 천 년 전 프랑스어에 밀려 온갖 수난을 당한 적이 있었다. 1066년 노르망디공 윌리엄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 영어는 프랑스어에 무릎을 꿇었 news.v.daum.net 일제강점기에 한국어가 일본어에 밀려났듯이 영어도 천 년 전 프랑스어에 밀려 온갖 수난을 당한 적이 있었다. 1066년 노르망디공 윌리엄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 영어는 프랑스어에 무릎을 꿇었다. 승리한 프랑스어는 영어를 파묻어 버렸다. 정복왕 윌리엄과 귀족들은 잉글랜드에 프랑스어 사용을 강요했다. 영어는 가련하게도 자기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