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화가 박영의 귀촌일기(2)]내 그림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다:한국 교회의 나침반 뉴스파워(newspower.co.kr)
지난주에는 뒤뜰에서 잡초를 뽑다가 붉은가슴울새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집에 안고 왔다.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새에게 물을 티스픈으로 떠먹여주었지만 입을 딱 다물고 먹지 않았다. 새의 가슴은 얼마나 연약한지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 듯 하다. 나는 손수건으로 싸서 조그만 바구니에 넣어주었다. 울새는 잠깐 정신을 차린 듯 눈을 뜨고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 단호한 눈빛을 가진 울새는 정말 너무도 거짓말같이 새벽녘에 죽어 있었다.
병에 걸린 것일까? 그때 생각했다. 물 한 방울 먹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새, 나 또한 죽음 앞에 당당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굳게 마음먹었다. 지금은 철새들의 놀이터였던 고천암에도 능금빛 노을이 지고 있다. 누가 저 노을빛을 만들었을까? 내가 그림 속에 배경으로 노을을 넣는다면 저런 느낌의 노을일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읍내에 웅변대회를 나갔다가 돌아오던 그 날도 노을이 지고 있었다. 차멀미를 심하게 한 탓으로 원고를 잊어버렸고 그래서 고작 3등에 머물렀다. 아버지가 나보다 더 서운해 하시는 표정이셨다.
아버지, 시골학교 교장이신 아버지는 포부도 당당하고 나에게는 완벽한 멘토였다. 저 노을 속에 깨끗한 흰색 와이셔츠와 검정 양복을 차려 입은 멋진 아버지 모습이 보인다. 지금은 천국에 가시어 푸른 별이 되셨지만 새벽녘이면 마당까지 뚜벅뚜벅 걸어오신다.
아버지가 교장으로 평생 외지를 돌아다니셨기 때문에 나는 초등학교 동창이 거의 없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지만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다’(In omnibus requiem quaesiviet nus quam invenisi nisi angulo cum Libro))는 말을 왜 아켐피스가 했는지 조금은 알 듯 하다.
중학교 들어가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영어공부와 책읽기에 몰두했다. 가끔 백일장에 나가서 상장을 탄 것을 계기로 글쓰기와 삽화 수준의 그림을 그리면서 사춘기의 외로움을 달랬다. 누나가 너무 혼자만 지내지 말라며 고등학교 시절 여자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지금도 여자 친구와 가끔 통화하면서 지내고 있다.
내가 꼭 무엇이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워서 먹고 살 수만 있다면 화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내 그림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다.
어릴 적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들로 산으로 마구 쏘다니면서 새둥지에서 새끼들을 런닝구에 싸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새를 키우는 맛을 아는 나는 여치며 방아깨비, 메뚜기를 잡아 쭈~쭈~쭈 하면서 샛노란 어린 새의 주둥이에 넣어주면 잘도 받아먹었다.
하루는 학교에 갔다가 곧장 새장으로 가지 않고 들에 나가서 메뚜기를 잡아가지고 집에 와 보니 새장 문이 활짝 열리고 새들이 한 마리도 없었다. 그 황당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버지가 다 날려 보낸 것이다.
그 이후 새를 키우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앵무새, 십자매를 키우기 시작했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라고 새장을 장롱만한 크기로 제작했다. 아내는 벌레 때문에 더 이상 새를 키우지 말자고 했지만 아이들이 다 크기까지 내 곁에서 새소리는 떠나지 않았다. 지금은 다 결혼하여 깨끗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아이들은 새장 문을 열어놓고 앵무새와 놀았던 추억을 가끔씩 소환한다.
내가 시골에 와서 가장 즐거운 것은 새소리와 함께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다. 햇빛과 함께 어김없이 찾아와 기쁨의 노래를 들려주는 산새들, 내 영혼은 산새를 닮아갈 것이다. 사는 일 또한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기쁨이 밀물처럼 밀려올 것을 믿는다.
오늘은 날씨가 쾌청하다. 뭔가 좋은 예감이 온다. 캔버스 앞으로 가야겠다.
글=박영 화백(홍대 미대 서양학과, 프랑스 유학, 크리스천정신문화연구원장) 2021.05.21
/ 2022.09.18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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