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화가 박영의 귀촌일기(1)]꽃과 나의 대화가 은혜롭기를 기도하며:한국 교회의 나침반 뉴스파워(newspower.co.kr)
고향으로 내려가야겠다고 10년 전부터 다짐했었다. 더 이상 서울에 살지 않겠다고 마음 깊숙이 각인시켰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농사를 지으려고 했다면 좀 더 세심한 계획을 세웠겠지만 나는 자연과 벗 삼아 그림을 그리려고 했기 때문에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내가 태어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농가주택을 찾게 되었다. 시를 쓰는 아내가 다시 한 번 내 생각을 점검했지만 나는 단호히 시골로 가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방이 3칸, 마당 한 켠에 작은 창고가 지어진 작은 집을 소유하게 되었다.
은행잔고는 이삿짐을 싣고 갈 차를 빌리는 정도였다. 꼭 가지고 갈 작품만을 챙겼지만 의외로 많아 1톤 트럭 2대를 가득 채웠다. 서울에서도 꾸준히 작업을 했지만 점차 무기력해지고 창의성이 메말라가고 있었던 터였다.
내 집 뒤쪽에는 빈 집이 한두 채가 아직 남아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대나무와 찔레덩굴이 침범해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대나무 숲을 헤치고 들어가 보니 예전에 살던 사람이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쓰던 우물물이 있었고 아직도 저 아래 깊은 곳에는 물이 차 있었다. 검은 그림자가 내려다보이는 그 우물 옆으로는 빈집에 딸린 창고도 있었다. 장독대 위에도 항아리 몇 개가 떠나간 사람의 흔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시골 생활의 첫 겨울을 혹독하게 지내고 난 지금은 문만 열면 매콤 쌉쌀한 찔레향기가 징하게 코끝을 자극한다. 나는 그 향기에 취해 홀로 아찔해진다. 그동안 성과 위주로 살아온 내 인생이기에 일이 없으면 안달을 했었지만 꽃향기는 나를 자유롭게 평화롭게 살도록 조금은 무기력하게 나를 만들어 버린다.
내 집은 약간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앞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논과 밭이 펼쳐져 있어 마당에 앉아 있으면 나른한 행복을 주며 병든 영혼을 치유해준다. 또한 태양은 자연이 우리에게 무상으로 내리는 축복이다. 만물에 생기를 주고 죽음이나 끔찍한 운명조차도 그 색깔을 퇴색시킨다.
또한 밤이 되어 마당에 서면 아이 주먹만 한 별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한동안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초롱초롱한 별밤이면 나는 가만가만 내가 좋아하는 시를 불러낸다. 어느 때는 기대이상으로 나를 특별히 길러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울기도 한다.
그동안 나는 나를 너무 혹사시키면서 산 것 같다. 욕심 많고 꿈도 많아 뭔가를 목표로 삼으면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뜻대로 된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도 공부하는 것으로 최고가 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일이 이 세상에서 제일 기쁘고 즐겁다. 더욱이나 그림 전시를 해서 얻어진 수익을 이웃을 위해 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시골에서 지내면서 내가 변한 것이 있다면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작은 일에도 소심해서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불안 초조해 하던 습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을 달리 해서 오늘 안 되면 내일하기로 마음먹으니 매사에 여유가 생겼다. 예전에는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면 반드시 완성을 시키려 몸과 영혼을 망가뜨렸는데 지금은 아주 조금씩 캔버스를 채워나간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집중하는 이 시간은 나를 충만하게 이끌어 준다.
오늘도 홀로 꽃을 바라보며 꽃과 나의 대화가 은혜롭기를 기도하고 뒤뜰에 무너질 듯 피어난 흰색 찔레 덤불과의 눈인사도 기쁘게 맞이한다.
글=박영 화백(홍대 미대 서양학과, 프랑스 유학, 크리스천정신문화연구원장)ㅣ뉴스파워 2021.05.13
/ 2022.09.18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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