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인위적 온실가스의 배출량 증가가 지구 온난화의 주원인이라고 선언했다. 탄소 저감이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의 긴급한 과제가 되면서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나무의 기능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 나무를 활용해 탄소 저감에 나선 곳을 찾았다. 나무가 숲이 되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치와 효용을 6회에 걸쳐 살펴본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국제사회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공동 노력에 합의했다. 그 후 30년. 기후 변화가 우리의 일상을 파고 들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의 대응 움직임도 빨라졌다. 폭염과 폭설 폭우 가뭄은 환경 이슈를 넘어 인권의 문제가 됐다. 도시숲은 도시 미관을 위한 조경 사업에서 생존을 위한 필수 사업으로 위상이 달라졌다.
대표적인 도시가 포항과 대구다. 철강도시 포항은 2015년부터 ‘그린웨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도심에 28만㎡의 철길숲과 해도도시숲을 조성했다. 철강단지에서 불어오는 미세먼지를 줄이고 삭막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시작한 사업인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외부 사업으로 승인 받으며 지자체 탄소 중립 정책의 이정표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폭염 일수가 가장 많은 대구는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4725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그 중 가로수가 22만7000그루로 1303㎞에 이른다. 주요 거리마다 2열로 배치한 가로수는 도심 체감 온도를 낮추며 대구 시민들의 고된 여름 나기를 돕고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둘러싸인 제주도도 폭염과 열대야 일수가 늘어나는 등 기후 변화 대응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됐다. 도는 매년 100만 그루 나무 심기를 추진하면서 올해는 지난해보다 98억 늘어난 688억원을 산림 분야에 투입하고 있다. 도시와 학교, 공유지 등 도심 자투리 공간 곳곳에 숲을 조성하고, 2020년 시작한 도시바람길숲 조성사업도 올해 마무리한다.
산림은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인정하는 핵심 탄소 흡수원이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능력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인구가 밀집한 도심지역의 가로수는 기후 변화 대응의 핵심 수단으로 주목 받으며, 체계적인 관리와 활용 방안을 실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욕은 1995년부터 10년마다 가로수 조사를 실시해 이를 기반으로 가로수 지도를 만들고 있다. 68만 그루의 가로수마다 ID를 부여하고, 관리 정보를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다. 나무를 관리하는 자원 봉사자는 1995년 700명에서 2015년 2241명으로 늘었다.
런던은 하늘에서 볼 때 도시 전체 면적에서 녹지가 수직으로 투영되는 면적의 비율인 수관피복률을 활용한 도시 트리맵을 제작하고 있다. 현재 21%인 수관피복률을 2050년까지 10%p 이상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가로수를 목표 달성의 주요 전략으로 설정했다. 런던은 과도한 전정을 지양하고, 매뉴얼에 따라 잎량과 수관을 최대한 늘리면서 탄소 중립에 기여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산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지자체들도 가로수 관리를 고도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식재와 전정 중심의 단순 관리에서 벗어나 수종, 연혁, 특성 등 가로수 현황을 세밀하게 데이터화하고 시민들에게 개방해 가로수의 가치를 시민과 행정이 함께 향상시키는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관리 매뉴얼도 시급하다. 최근 논란이 되는 과도한 전정 문제와 관련해 산림 전문가들은 민원이 제기될 때마다 일회성 조치를 하기 보다 강전정을 지양하고 수형의 고유미를 최대한 유지한 자연형 육성을 기본으로 전문가와 주민의 의견이 고루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로수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주변 여건을 고려한 수종 선택도 중요하다. 벚나무는 꽃이 아름답지만 병충해에 약하고, 단풍류는 낙엽이 많이 떨어진다. 느티나무는 성장이 빠르고, 양버즘나무는 겨울에 잎이 떨어지면서 노면에 그늘을 만들지 않아 여름과 겨울에 모두 이롭다. 은행나무는 병충해와 공해에 강하고 여름과 가을에 다른 경관을 연출하지만 암나무의 경우 열매가 떨어지면서 악취를 풍긴다. 이를 테면 보행자가 많은 동네와 차량 이동이 많은 지역의 수종 선택 기준은 달라야 한다는 의미다.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고 가꾸는 방안과 함께 목재 사용을 늘려 탄소 저장량을 높이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수확된 목재에 저장된 탄소의 양은 건조된 목재 무게의 절반 정도다. 1㎥의 목재를 이용해 만든 제품을 사용하면 917㎏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
목재는 건축 원자재 등으로 이용하면 더 오랫동안 목재 내 탄소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소비 문화를 콘크리트·철근 ·플라스틱 중심에서 목재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산림은 일정 임령에 도달하면 생장이 느려지고 탄소 흡수량도 줄어든다. 따라서 수확한 임목을 목제품 형태로 가공해 탄소를 저장하는 한편 새로운 숲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림 중 산림탄소경영이 필요한 구역을 설정해 임업 활동이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목재를 수확한 자리에는 후계림을 조성해 산림 내 수종과 연령의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 다만 수목과 산림이 탄소를 얼마나 흡수해서 고정하는 지에 대한 논쟁이 계속 있어온 만큼 적절한 벌채 시기에 대한 접점은 도출할 필요가 있다.
산림 경영을 지속하려면 사유림 소유자가 산림을 잘 경영했을 때 적정한 수익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산림 면적 629만㏊(2020년 기준) 가운데 사유림은 67%에 달한다. 산림 경영의 수입은 임목 판매로 실현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산림 경영의 수익성이 매우 낮아 산주들의 관심도가 낮다. 산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유림에서 발생하는 공익적 가치를 합리적으로 평가해 합당한 지원과 보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나무는 기후변화 대응에서 비용 효과성이 가장 높은 수단으로 주목 받고 있다. 50년 동안 잘 자란 나무 한 그루는 1억4000만원의 경제적 가치를 갖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나무가 탄소를 빨아들이는 양보다 인간이 탄소를 배출하는 양이 많으면 지구는 계속 황폐해질 수 밖에 없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일 만큼이나 나무를 가꾸고 관리하고 활용하려는 우리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정임 기자ㅣ국민일보 202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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