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인위적 온실가스의 배출량 증가가 지구 온난화의 주원인이라고 선언했다. 탄소 저감이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의 긴급한 과제가 되면서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나무의 기능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 나무를 활용해 탄소 저감에 나선 곳을 찾았다. 나무가 숲이 되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치와 효용을 6회에 걸쳐 살펴본다.
예술회관 옥상에서 형산강 쪽을 바라보자 거대한 공장이 강 줄기를 따라 끝없이 펼쳐졌다. 굴뚝에선 하얀 증기가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난 6월 포항. 포항시에선 우리나라 최초의 철강기업 포스코가 1968년 이후 54년간 제철산업의 역사를 써내려왔다. 그 동안 철강산단은 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자체에 막대한 세금을 내며 지역경제를 떠받쳤다. 하지만 철강도시라는 명성과 이미지는 포항시가 가진 푸른 바다와 산의 매력을 상쇄하고 도시 경관을 어둡게 했다.
2015년, 100년 간 기차가 달리던 남구 효자역과 옛 포항역 사이 4.3㎞ 구간이 KTX포항역 이전으로 폐철도가 됐다. 공청회를 열어 시민들에게 활용 방향을 묻자 “도로를 내달라” “자전거길을 내달라” “숲을 만들어달라” 여러 갈래 의견이 나왔다. 이 무렵 시는 산단도시의 이미지를 벗어나 시민들에게 자연의 혜택을 주자는 데 중지를 모으고 시정 방향을 ‘친환경 녹색도시’로 설정했다. 철길숲은 친환경 녹색도시로 발돋움하는 데 가장 직접적인 체감 효과를 낼 수 있는 사업으로 판단됐다.
시는 2009년 미군 부대가 철수하면서 기능이 중단된 북구 우현동 폐선 2.3㎞까지 연결해 총 6.6㎞의 철길숲을 준공했다. 이어 효자교회에서 출발하는 2.7㎞를 최근 추가 조성했다. 완성된 총 9.9㎞의 철길숲에는 19만3000㎡의 녹지공간이 만들어졌다. 그 안에 106종 21만본의 나무와 각종 식물을 식재했다.
시는 철길숲 조성사업에 시정 역량을 집중했다. 우선 사업에 담긴 포항시의 비전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철길숲 BI(브랜드 이미지)를 제작했다. 철길숲이 휴식과 문화 생활의 욕구를 자극하는 전초기지가 되도록 숲에 스마트도서관도 짓고, 쉼터를 넉넉히 배치하고, 수경시설인 벽천과 음악 분수를 설치했다.
시민들이 철길숲을 통해 식물과 생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단풍 하나도 여러 수종을 식재했다. 쾌적한 산책로 조성을 위해 잎이 풍성한 녹음수를 주로 심으면서도 소음 방지 기능이 뛰어난 침엽수와 활엽수를 다층 구조로 배치했다. 일부 지역에는 바람이 불면 소리를 내는 풍경을 걸어두기도 했다. 이 모든 사업에 앞서 녹지과를 그린웨이추진과로 명칭을 바꾸고 직원 18명을 모두 녹지직과 토목직으로 채워 넣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도전이 있었다. 바로 정부로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외부사업으로 승인 받았다는 점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온실가스 배출 기업에 연간 정해진 배출량을 할당하고 배출량 부족분 또는 초과분에 대한 거래를 허용하는 제도다. 2015 파리 협정에서 탄소중립 의무국가에 포함된 모든 나라는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2015년 시행에 들어갔다.
온실가스 배출권을 확보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온실가스 총량을 할당받는 방법과 외부사업이나 청정개발체제를 이용한 투자를 통해 확보하는 방법이다. 할당은 일정 규모 이상의 온실가스 배출 사업장을 소유한 기업에 대해 검증기관의 승인 후 무상이나 유상으로 할당하는 방식이다. 최종 탄소배출량을 인증받은 기업이나 단체는 할당된 배출량보다 적게 배출하면 남은 탄소만큼 탄소배출권이 생겨난다. 이렇게 생겨난 배출권은 장외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다.
탄소배출권을 확보하는 또 다른 방법은 외부사업이다. 대규모 조림 사업이나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 개발 등을 통해 배출권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지자체는 도시숲을 조성해 검증기관의 인증을 받아 배출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인정받은 배출권 가치만큼 기업 등에 팔 수 있다.
철길숲은 지난 4월 국가배출량인증위원회 심의에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외부사업으로 최종 승인됐다. 연간 40t씩 30년간 1200t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을 인정받았다. 배출권 거래 가격은 t당 3만5000원, 총 4200만원의 가치가 확인됐다. 거래가는 재인증 과정을 통해 변동되는데 숲이 울창해지면 가치는 더 높아진다.
국내에서 온실가스 배출 거래권을 획득한 도시숲은 올해 4월까지 새만금 방풍림과 순천만국가정원 등 소수에 불과하다. 포항은 지난해 철강공단과 도심 사이에 미세먼지 차단을 위해 조성한 해도숲(30년간 780t 탄소 흡수량 인증, 현재 가치 2700만원)으로도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 승인을 받아 전국 지자체 중 유일하게 2곳을 보유한 지역이 됐다.
지난달 8일, 공교롭게도 ‘철의 날’을 하루 앞두고 찾은 철길숲에선 많은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근에서 식사를 마친 근로자와 장애를 가진 청년, 팔을 씩씩하게 흔들며 걷는 엄마와 딸. 이들은 철도가 지나던 시끄러운 동네가 쉬고 걸을 수 있는 도심 공원으로 돌아온 데 대해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경식 포항시 환경국 그린웨이추진과장은 “철강산업도시 포항을 사람과 자연이 함께 하는 녹색생태도시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포항시의 핵심 시정 방향”이라며 “도시숲을 꾸준히 조성하고 관리함으로써 시민 일상이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것은 물론, 탄소 중립을 실현하는 실질적인 방안으로 점차 큰 역할을 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정임 기자ㅣ국민일보 2022.07.30
/ 2022.08.1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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