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생명에 가장 치명적인 위협은 태풍과 벼락이다. 들녘에 홀로 서서 비바람, 눈보라와 맞서야 하는 나무로서 피할 수 없는 위협 요인이다. 해마다 태풍과 벼락이 빈번하게 찾아오는 여름이면, 곳곳에서 큰 나무들이 쓰러지는 사태를 맞이하는 건 하릴없는 노릇이다.
이태 전 태풍 ‘마이삭’으로 나뭇가지의 절반이 찢겨나간 ‘이천 신대리 백송’도 그랬다. 우르르 쏟아져 쌓인 나뭇가지 잔해들은 이 나무가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살아남기 어려울 만큼 참혹했다.
197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천 신대리 백송’(사진)은 우리 땅에 살아 있는 백송을 대표할 만큼 아름다운 나무였다. 200여년 전 전라감사를 지낸 민정식이 자신의 선조인 민달용의 묘지 앞에 심은 이 나무는 조선 후기 여흥(지금의 여주)민씨 일가가 누렸던 세도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인문학적 자연자원이기도 하다.
흰색을 바탕으로 밝은 회색의 얼룩무늬가 신비로운 백송은 중국에서 들어온 나무로, 자람이 까탈스러울 뿐 아니라, 옮겨심기도 잘 안돼서 중국 바깥에서는 보기 어려운 나무라는 식물학적 특성도 이 나무를 더욱 소중하게 보존해야 할 이유다.
제 몸피의 절반이 찢겨나갔지만, 사람들은 나무를 포기하지 않았다.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치우고, 나뭇가지의 찢겨나간 부분을 정성껏 치료해 건강을 회복하도록 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만, 사람들의 수굿한 정성에 응답하여 나무는 다시 일어섰다.
생명의 끈을 내려놓지 않은 모진 생명의 안간힘이었다. 높이 17m에 이르렀던 옛 위용을 잃은 상처투성이로 나무는 다시 생생하게 살아났다. 나무의 생명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애쓴 모두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태풍도 벼락도 필경 다시 찾아온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바라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천 신대리 백송’에게 그랬듯이 나무가 부닥쳐야 하는 자연재해에 함께 맞서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곧 나무와 더불어 더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ㅣ경향신문 2022.07.12
/ 2022.07.1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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