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살눈 없는 참나리, 중나리 만나러 가는 길 (daum.net)
지난 주말 중나리를 보러 소백산 간다기에 바로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동안 야생 나리는 볼만큼 보았지만 중나리만 보지 못했다. 사실 중나리도 못본 것은 아니었다. 신구대식물원 등에 중나리를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목원에 심은 야생화는 야생화 특유의 색과 매력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출발 전날 갑자기 중나리가 피었을까 걱정이 들었다. 귀한 야생화를 보러 갔는데, 피기 전이거나 이미 져서 못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마침 소백산 중나리 개화 소식을 검색해보니 지난해 7월 20일에도 꽃망울만 보았다는 글이 있었다. 괜히 알아보지도 않고 서둘러 가겠다고 했나 후회가 생겼다.
6월 털중나리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산하에서는 8월까지 다양한 야생 나리들이 시차를 두고 피어나 미모를 뽐낸다. 이들 나리 앞에는 참나리, 땅나리 등과 같이 접두사가 붙어 있다. 나리 이름에 붙는 규칙을 알면 나리를 만났을 때 이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나리는 줄기 아래쪽에 여러 장의 돌려나는 잎이 있는 종류와 그렇지 않은 종이 있는데, 돌려나는 잎이 있는 종은 ‘말’자가 붙는다. 돌려나는 잎이 있고 옆을 보고 피면 그냥 말나리, 하늘을 보고 피면 하늘말나리다. 섬말나리는 울릉도에서 나는, 돌려나는 잎이 있는 나리라는 뜻이다. 섬말나리는 돌려나는 잎이 2~3층인 것이 특징이다.
돌려나는 잎이 없는 나리들은 피는 방향에 따라 위를 향해 피면 하늘나리, 땅을 보고 피면 땅나리다. 그렇다면 중나리는 옆을 보고 피어야 규칙에 맞겠는데 꼭 그렇지 않다. 옆은 옆이지만 45도 정도 아래를 보고 피는 꽃이다. 중나리 특징은 피는 방향보다는 참나리와 비슷한데 잎겨드랑이에 까만 구슬(살눈 또는 주아)이 없다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 그러니까 살눈 없는 참나리가 중나리인 것이다. 중나리는 살눈 대신 땅속줄기를 뻗어 번식한다고 한다. 여기에 잎이 솔잎처럼 생기고 고운 분홍색 꽃이 피는 솔나리가 있다.
나리 중에서 털중나리, 말나리, 하늘말나리 등은 비교적 산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날개하늘나리, 중나리는 피는 곳이 드물다. 원만한 고수들도 야생에서 만난 적이 없다고 고백하는 꽃이다. 날개하늘나리까지 보았는데 야생의 중나리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설랬다.
아침 8시 소백산 죽령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좀 지나자 하늘말나리가 나타나고, 산수국, 동자꽃, 둥근이질풀, 물레나물에다 말나리까지 얼굴이 내밀었지만 오늘은 그들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물레나물 꽃은 정말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
등산로를 따라 오른지 2시간쯤 지났을 때, 앞에서 “중나리 피었어요!”라고 했다. 고개를 들자 과연 저멀리 앞쪽에 주황색 꽃 무리가 보였는데 중나리 같았다. “이야~”, “오우~” 등 감탄사가 여러 개 터졌다.
가까이 가보니 아래쪽 꽃은 막 피었고 위쪽은 아직 꽃망울 상태인, 꽃이 가장 예쁠 때였다. 5~6월 기온이 높아 작년보다 빨리 핀 것 같았다. 과연 ‘살눈 없는 참나리’답게 살눈은 하나도 없이 깔끔했다. 키가 참나리보다 약간 작은 것 같았지만 곧게 서고 균형이 잘 맞는 것 같았다. 다들 “화피가 (털중나리보다) 더 넓은 것 같다”, “나리 종류 중 제일의 미모 같다” 같은 칭찬 또는 감탄을 하며 꽃을 담았다. 카메라로 담고 스마트폰으로 담고 동영상까지 담았는데도 자꾸자꾸 또 찍고 싶었다.
연화봉에서 비로봉으로 가는 길에도 양지바른 언덕마다 중나리가 피어 있었다. 그런데 이 중나리들은 키가 크지 않아 참나리보다는 털중나리에 가깝게 보였다. 털중나리는 줄기와 잎 양면에 잔털이 많이 나 있는 반면 중나리는 잔털이 거의 없다. 또 중나리가 털중나리보다는 꽃색이 좀 연한 것 같았다.
죽령주차장에서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을 거쳐 하산하는 길은 15㎞가 넘었다. 길은 멀고 하산길은 가팔라서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른 집에 가서 카메라에 담긴 중나리 미모를 볼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김민철ㅣ조선일보 2022.07.19
/ 2022.07.20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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