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사람살이의 안위 지켜온 나무 (daum.net)
탱자나무는 예로부터 산울타리로 많이 심어 키웠다. 탱자나무 가지에서 돋아나는 억센 가시가 외부와의 차단에 효과적인 때문이다. 사납게 돋치는 가시가 무성한 까닭에 바깥출입을 엄격히 금지해야 할 죄인을 가두는 데에도 탱자나무는 이용됐다. 이른바 위리안치(圍籬安置)다. 탱자나무 가시가 무성한 울타리로 싸인 집 안에 죄인을 가두는 형벌이다. 특히 역모에 해당하는 중죄를 지은 죄인에 대한 형벌이었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그렇듯, 옛사람들은 한 가지 쓰임새로만 나무를 심지 않았다. ‘상주 이안리 탱자나무’는 마을 골목 안쪽의 길가 공터에 서 있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조붓한 골목이라면 탱자나무 가시가 오가는 사람들을 성가시게 한다는 이유에서 베어낼 가능성이 높다. 탱자나무가 살아남기에 유리한 자리는 아니다. 사람살이를 불편하게 하면서 사람의 마을에서 나무가 오래 살아남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탱자나무는 그 자리를 220년째 지키며 살아남았다.
산울타리로 심어 키우는 여느 탱자나무와 달리 하나의 줄기가 곧게 오르며 사방으로 둥글게 가지를 뻗친 ‘상주 이안리 탱자나무’는 나무높이가 7m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모든 탱자나무를 통틀어 높이로는 가장 큰 나무다. 201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문경 장수황씨종택 탱자나무’보다 1m 정도 더 높다.
누가 이 자리에 왜 심었는지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 탱자나무가 마을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영험한 나무라고 믿고 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어떤 귀신도 이 탱자나무의 가시를 피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20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흔하게 심어 키우는 나무이지만 ‘상주 이안리 탱자나무’처럼 마을 어귀에서 여느 정자나무처럼 근사하게 자라난 탱자나무는 매우 희귀한 경우다. 우리 곁의 나무들이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어떤 형태로 보호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ㅣ경향신문 2022.06.14
/ 2022.07.15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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