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오늘 일기] 인생은 소풍길

푸레택 2022. 6. 10. 10:49

?? 인생은 소풍길

딸내미는 초등학교 2학년인 큰 손주 아윤이를 등교시키고 직장으로 출근한다. 그러고나면 작은 손주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하원 때 데려오는 일, 큰 손주 영어학원에 보내고 데려오는 일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몫이다. 식사 준비는 할머니가 맡아서 하고 나는 큰 손주가 수업을 마칠 때 쯤 학교에 가서 손주를 데려온다. 오늘 학교에서 큰 손주를 데리고 딸네집에 들렀더니 아내가 달걀을 삶았다며 다른 반찬과 함께 종이봉투에 넣어준다.

그것을 들고 막 나오려는데 일곱살 둘째 손주 재호가 “할아버지! 잠깐만!” 한다. 그러고는 종이봉투를 빼앗아 들고는 냉장고 문을 열고 껍질째 먹는 ‘씻은사과’ 한 개를 꺼내 봉투에 넣는다. “할아버지, 집에 가서 드세요.”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지고 감동이 밀려왔다. “고마워! 많이 컸네, 우리 재호!” 일곱살 손주의 말과 행동이 너무도 귀엽고 아름다워 보였다. 집으로 향하는 발길이 내내 따뜻했다.

재호는 평소에도 “할아버지, 저녁 먹고 가세요” 하기도 하고 자기가 먹던 것을 내게 주기도 하는 잔정이 많은 녀석이다. 재호는 유일하게 내게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쓴다. 손주가 넣어준 감동의 사과가 든 종이봉투를 들고 집으로 가며 옛날 어린 시절 왕십리에 사셨던 정이 많으셨던 이모님을 떠올렸다.

이모님댁에 가서 동생들이랑 놀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이모님은 언제나 보따리 보따리에 과일을 챙겨 싸주시고 그것도 모자라 주머니에도 뭔가를 잔뜩 넣어주셨다.


보성중학교 1학년 때 작문 시간, 나는 왕십리 이모님 댁에 놀러갔던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썼다. 작문 선생님은 다음 수업 시간에 내가 쓴 글을 학생들에게 읽어주시며 모범적인 글쓰기라며 칭찬해 주셨다.

(혜화동 보성중학교 1학년 때 내 글을 칭찬해 주셨던 한정식 작문 선생님은 보성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를 가르치셨다. 고1 때 담임이셨던 홍순태 상업 선생님과 함께 후에 유명한 사진 작가가 되셨다. 한정식 선생님은 중앙대학교, 홍순태 선생님은 신구대학교 사진학과 교수를 역임하셨다.)

홍순태 5주기 특별전 '서울의 찬가' 2021.5.4~5.28 / 원로 사진작가 한정식 '고요' 연작전 2021.10.1~10.27

그후 국어시간에 김소월의 시 왕십리(往十里)를 배웠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 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天安)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중학생 시절, 나는 이 시가 좋아서 늘 암송하고 다녔다.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하고 읊조려 본다. 나는 왕십리라는 말을 들으면 유달리 정이 많으셨던 왕십리 이모님과 학창 시절 암송하고 다녔던 김소월의 시 왕십리가 떠오른다. 

어느 해 4월이었던가, 벚꽃놀이가 한창이던 때 창경원(창경궁)에서 전국산업박람회가 열렸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창경궁을 창경원이라고 불렀고, 창경원은 벚꽃을 많이 심어 놓아 벚꽃놀이로 유명했다. 또 동물원이기도 했다. 철이 들어서야 그것이 일제강점기 때 궁궐을 격하시키고 우리 민족의 얼을 짓밟으려는 획책인 것을 알았다. 전국박람회는 며칠간 계속되었는데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박람회를 구경하러 창경원에 갔다. 전국 각지에서 박람회를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로 창경원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조선 5대 궁궐의 하나인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고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을 낮추어 불렀다. 우리의 궁궐을 격하시키고 민족의 얼을 짓밟으려는 일제의 획책 가운데 하나이다. 1983년 경기도 과천에 서울대공원이 생기면서 동물원을 이전시키고 창경원은 창경궁이라는 이름과 함께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 - 다음백과)


박람회 한쪽 옆에 커다란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그때 노래를 부른 가수들이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유행가 한 소절 제대로 부를 줄 몰랐고, 연예인 누구에게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그 무대에서 사회를 보았던 사람이 송해였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지금까지 어슴푸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전국노래자랑 최고령 최장수 사회자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는 송해 씨는 어린 시절 내가 처음 본 연예인이었다. 그가 엊그제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연예인에 대해 관심이 없고 좋아하는 연예인도 없다. 또한 나는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아서 많은 국민들이 좋아한다는 전국노래자랑을 지금껏 찾아서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요즈음은 TV 자체를 멀리 하니 뉴스도 드라마도 예능 프로그램도 관심 밖이다. 오직 EBS 세계테마기행 같은 여행 프로그램이나 축구와 테니스 같은 스포츠 영상만 유튜브로 가끔씩 찾아본다. 아무 것에도 메이지 않으니 자유롭고 편안하다. 유유자적悠悠自適이란 이런 것일까?) 


천상병 시인은 인생은 소풍길이라고 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ㅡ 귀천(歸天)에서

유달리 정이 많으셨던 왕십리 이모님도, 최장수 최고령 사회자였던 전국노래자랑’의 송해(宋海) 선생도, 스스로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이라던 순수 시인 천상병(千祥炳)도 모두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길 끝내고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인생은 소풍길. 이 소풍길이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 가득한 가슴 설레는 나날이 되고, 청년들에게는 삶에 보람을 느끼는 가슴 뿌듯한 하루하루가 되고, 노년기 때는 부귀와 명예, 욕망 떨쳐버리고 유유자적 인생을 관조하며 살아가는 인생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생은 나그네길. 인생이란 홀로 왔다 홀로 가는 외로운 길. 풀잎에 맺힌
아침이슬 같은 소풍길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 소풍길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는 행복한 길이었으면 좋겠다.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는 소풍길이었으면 좋겠다.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축복받은 소풍길이었으면 더욱 좋겠다. 

글=김영택 2022.06.10(금) 

https://youtu.be/xbtVjxo3cwU

https://youtu.be/xaa0a4Lt1Vk

https://youtu.be/ZDkggN2Ll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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