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일기] 40년 만에 만난 전우
밤사이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는 단비가 내려 초여름 신록이 더욱 싱그럽다.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오늘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루고 미뤄왔던 전우회 모임이 있는 날이다. 오늘 모임엔 멀리 대구에 사는 김 하사와 가평 설악면에 사는 이 하사도 참석한다. 전역 후 늘 전우들 소식이 궁금하였는데 유튜브와 인터넷 덕분에 연락이 되어 드디어 오늘 만남의 기쁜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김 하사와 이 하사와는 전역 후 첫 만남이다. 소풍날을 기다리는 마음 들뜬 소년처럼 가슴이 설렌다. 아득히 먼 그때 그 시절, 젊은 날의 추억들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까마득히 먼 옛날, 나는 강원도 양구 대암산 산골짝 외딴곳에 자리잡은 한 포병부대에서 군복무를 했다. 안동 36사단 신병교육대에서 6주간 전반기 군사훈련을 받고, 부산 육군병기학교에서 5주간 후반기 군사주특기교육(탄약관리병)을 받았다. 그러고는 부산역에서 군용열차를 타고 춘천역에 도착했다. 3일간 머물렀던 103보충대(102보충대)에서 양구군 동면 원당리에 위치한 833포병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다. 그 당시 군인들 사이에는 이런 유행어가 떠돌았다. “원통해서 못 가겠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그래도 양구보다는 나으리라.” 바로 그 양구로 자대배치 받은 것이다.
양구에 위치한 부대로 배치된 병사들은 소양강 춘천 선착장에서 군용선 배를 타고 양구로 향했다. 1시간쯤 지났을까, 우리 병사들은 양구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려 군용 트럭으로 갈아타고 가는 동안 얼핏얼핏 보이는 양구 겨울 풍경은 군가의 한 구절처럼 인적 드문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내린 전선’이었다. 방한모를 뒤집어쓴 군인들 모습을 보며 휴전선 최전방으로 배치되었구나 생각하니 바짝 긴장감이 들었었다. 사실 나는 그때 방한모라는 군인모자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자대배치된 곳이 포병부대여서 나는 3년 가까운 군생활을 하는 동안 GP(최전방감시초소)나 GOP(일반전초) 철책근무는 하지 않았다.
약속 시간 20분 전에 만남의 장소인 인천 백운역에 도착했다. 역사驛舍가 한적하다. 막 개찰구를 나가려는데 한 노년의 신사가 눈에 띈다. 40여년 세월이 흘러갔어도 한눈에 김 하사임을 알 수 있었다. “김대규 하사님!” 45년 만에 김 하사님의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 김 하사는 연신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며, “너무너무 고맙고 반갑다”며 내 손을 꼭 잡아준다. “와~ 김 하사님! 이게 도대체 몇 년 만입니까?” 김 하사는 어젯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45년 전 군대 친구들 만나러 서울 올라간다고 하니까 대구 친구들이 다들 놀라데. 우째 그런 일도 있나 하면서. 오늘 전우들 만날 생각에 어젯밤 잠을 못 잤다니까.”
김 하사는 단기하사로 군대 시절 군수과 업무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이사종계 업무를 맡아 보았다. 이사종계는 피복과 군화, 침구류 등을 상급부대로부터 수령하여 각 포대에 나눠주는 업무를 한다. 그런데 감사에 대비하여 재물조사를 하면 늘 물품이 부족했다. 김하사와 나는 밤 늦게까지 손망실 처리 서류 정리를 하곤 했었다. 그는 그 복잡한 업무를 처리하면서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했다. 그 당시 군대는 욕설과 폭력이 난무했다. 나는 김 하사가 누구한테 욕 한 마디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누구를 폭력하는 것은 더더욱 보질 못했다. 김 하사는 참 인격이 훌륭한 본받고 싶은 전우였고, 내가 졸병시절일 때 기댈 언덕이 되어주셨던 분이었다..
내가 일병 시절, 우리 부대에서 포대별 대항 ‘대암 퀴즈대회’가 개최되었다. 계급이 서로 다른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출전하는 것이 대회 규칙이었다. 누가 권했는지 기억에 없지만(내 성격상 절대 자발적 출전이 아님) 나는 김 하사와 짝을 이루어 대회에 출전했다. 그때 재미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데 군수과장님이 “오늘 저녁 메뉴가 뭐냐”고 물으셨다. 주간週刊 식단 현황표 작성은 군수과 서무계인 나의 업무 중 하나였고, 나는 늘 하루 메뉴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닭곰탕입니다.”
과장님은 내가 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모르셨고, 나 또한 이것이 결승전 문제 중 하나인 것을 짐작하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예선전 문제는 작전과에서 출제했고 결승전 문제는 본부포대 참모장교들이 한 문제씩 출제했다는 것이다. 군수과장님은 오늘 저녁 주메뉴가 무엇인지 묻는 재치있는 문제를 출제하신 것이었다. 예선을 통과한 우리팀. 결승전에서 내가 마지막 이 문제를 맞혔고 결국 본부포대 우리 조組가 우승했다. 그후 전우들은 이따금 나를 볼 때면 “닭곰탕!” 하며 우승을 축하해 주었다. (나는 그때 우승으로 얻은 포상휴가를 휴가 한 번 못간 수송부 한 전우에게 양보했다. 이건 비밀인데...)
김 하사와 함께 개찰구 밖으로 나가니 박남종 선임하사님이 가장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계셨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그동안 못 뵈었는데 안타깝게도 3년 사이에 부쩍 늙으셨다. 선임하사님은 처음에는 김 하사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당백!” 김 하사가 선임하사님께 거수 경례를 한다. 전역 후 45년 만에 올리는 인사.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당백은 군대시절 1군(3군단) 소속 우리 부대의 경례구호로 혼자서 용감하게 능히 백 사람을 감당한다는 뜻의 일당백一當百을 줄인 말이다.
선임하사님은 비로소 김 하사를 알아보시고 이산가족 상봉하듯 기쁨과 반가움을 가득 안고 감격적인 해후를 하신다. 김 하사는 선임하사님의 손을 꼭잡고 군대 시절 옛 추억을 더듬는다. 군대시절 선임하사님은 사병(士兵)들을 인간적으로 대해 주셨고 잔정이 많으셨다. 동네 이웃집 맘씨 좋은 아저씨 같은 분이셨다. 선임하사님은 우리 833포병이 양구로 부대 이전하기 전 철원에 있을 때부터 근무하셨고, 922포병으로 전출하신 후 그곳에서 전역하셨다고 한다.
잠시 후 가평에서 달려온 이 하사가 도착했다. 박 선임하사님과 이 하사는 서로 꼭 껴안으며 40년 만에 재회하는 기쁨을 나누셨다. 선임하사님은 “진짜 감회가 새롭다. 진짜 감회가 새롭다”를 연발하시며 이 하사를 꼭 끌어안아 주시고 등을 두드려 주신다. 군대 시절 몇 년 동안이나 한솥밥을 먹으며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전우를 40년 만에 만났으니 참으로 감회가 사뭇 남달랐을 것이다. 선임하사님은 지난 일들을 더듬어 생각하시는 듯 목이 메시고 눈시울을 붉히셨다.
김 하사와 이 하사가 두 손을 맞잡으며 가슴 뜨겁게 해후하는 모습도 참 보기 좋았다. 이 하사는 과원들을 잘 챙겨주고 인정이 참 많은 전우였다. 말년 병장 때 마지막 정기 휴가를 가는 날, 이 하사가 내 손을 꼭 잡더니 무언가를 쥐어준다. 오백원권 지폐였다. 당시 병장 월급이 3,000원이었다. 나는 그때 그 고마움을 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도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내가 상병 때였던가. 포대 대항 구보대회가 있었다. 모든 포대원들은 누구도 열외없이 완전군장을 하고 후곡리 차리포대 앞에 집합했다. 완전군장한 우리 포대원들은 그곳에서 출발하여 원당리 부대 정문까지 달렸다. (10km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마지막 부대원 한 사람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시간이 곧 포대 점수였다. 포대원들의 단결이 필요한 구보대회였다. 나는 열심히 잘 달리다가 원당리 21사단 66연대를 지나서 부대가 가까워질 무렵 갑자기 뒤쳐지기 시작했다. 평소 사무실에만 붙어 있어 체력을 키우지 못했고 무엇보다 원래 체질이 약골인 탓이었다. 그때 함께 뛰던 내 옆의 누군가가 “김 상병 힘들지. 내가 소총이라도 들어줄까?” 하는 것이었다. 내 소총을 들어준 전우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인정 많고 전우애 넘치는 이 하사가 아니었을까? 그날 구보 대회에서 우리 본부포대가 꼴찌를 했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평소 인자하신 본부포대장님의 지시로 우리 본부포대원들은 연병장에 다시 모여 체력 훈련을 했다.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다.
곧이어 우리들의 영원한 대장,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신현탁 군수과장님이 도착하셨다. 김대규 하사는 예의바르게 거수경례를 한다. 당백! 참 멋진 모습이다. 과장님은 40여년 만에 동고동락했던 군수과 김 하사와 이 하사를 만나 감격해 하시며 말을 잇지 못하신다. 과장님은 내가 전역하기 몇 달 전 우리 부대에서 춘천 미군부대로 전출하셨다. 영어회화에 능통하셔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 통역 봉사활동을 하셨고, 그때 정현 테니스 선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주시기도 하셨다.
군대 시절 군수과 서무계였던 나는 사무실에서 행정업무를 보았는데 군수과장님의 전화 첫마디는 늘 “낸데 말이야”였다. 경상도 억양의 우렁찬 목소리,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40년 세월이 흘러갔어도 목소리 여전하시고 전우들 챙겨주시는 마음 또한 변치않으셨다. 과장님은 서무계인 나를 많이 아껴주셨고 군수과 식구들 고생 많다며 늘 출장이나 휴가를 챙겨주려 힘쓰셨다. 나에게 늘 “군대 우등생이 사회 우등생이지” 하시며 격려를 해 주셨다. 한번은 사무실에서 고생한다며 인제 신남인가 어디로 물품수령을 하러 가는 길에 나를 함께 데리고 가 주셨다. 그때 광치고개를 넘으며 보았던 자연림의 울창한 숲, 아름다운 경관은 두고두고 잊혀지질 않았다.
끝으로 박수천 전우가 도착했다. 박 전우는 병기과 탄약계로 알파포대 위에 위치한 탄약고에서 근무했다. 군수과와 병기과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여 군대 시절 박 전우와는 한 식구처럼 가깝게 지냈다. 여섯 전우들이 오늘 이렇게 다 모일 수 있는 것은 이번 모임을 재촉한 가평 이 하사와 멀리 대구에서 먼길 마다않고 달려온 김 하사의 노고 덕분이다. 과장님 안내로 냉면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40년 전 한 사무실에서 근무한 전우들 여섯이 모이니 과장님께서는 옛 생각이 나셨는지 “일일결산 한 번 하자” 하신다. 하루 일과를 마칠 때쯤 늘 일일결산을 했었다. 매주 금요일에는 주말 결산을 했다. 군대에서 하루는 길고도 길다. 그런데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군대에서 하루는 길고도 길다.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연병장에 모여 점호를 받고, 66연대 앞까지 군가를 부르며 구보를 한다. 부대전술훈련과 같은 특별한 훈련이 없는 날에는 아침식사를 하고 각자 맡은 업무와 사역을 한다. 9시 저녁 점호를 끝내고 10시 취침 그리고 두 시간 야간보초 또는 불침번을 서야 하루일과가 끝난다. 이렇게 군대생활의 하루는 길고도 길다. 그런데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그렇게 한달이 가고 일년이 가고 3년 세월이 흐르면 어느덧 전역의 아침이 밝아온다. 요즈음은 군복무 기간이 18개월이라고 하는데 내가 군복무를 할 때는 33개월이었다. (나는 3개월 혜택을 받아 30개월 군복무를 했다.) 선임들은 34~36개월 군복무했고, 그보다 더 먼저 입대한 선임은 1.21사태로 36개월 군복무한 후 다시 6개월 연장복무를 했다고 들었다.
과장님께서 국가보훈처가 제공하는 ‘나라사랑큰나무 배지’를 구해오셔서 전우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수 달아주셨다. 이 배지는 선열들의 애국심과 자유와 희망이 담긴 대한민국의 든든한 버팀목을 표현한 상징물이라고 한다. 마침 오늘은 현충일이고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 더욱 뜻깊은 일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호국배지 달기 캠페인은 국가를 위해 희생과 헌신하신 분들을 기억하고, 고귀한 희생에 추모와 감사의 마음을 가지자는 의미에서 광복 60주년, 6.25전쟁 55년이 되는 해인 200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 전우들은 흥남면옥에서 군수과장님이 사주시는 불고기 백반을 맛있게 먹으며 옛추억에 빠져들었다. 스무살 남짓 젊디젊은 청년이었던 전우들은 속절없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흰머리에 주름살 가득한 모습이었지만, 동고동락했던 젊음의 시절을 회억回憶하고 추억담을 나누는 순간만은 우리는 다시 가슴뛰는 뜨거운 청춘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 젊디젊은 청춘은 어디로 갔나? 세월은 어찌 이리도 빠르게 흘러갔을까?” 짙은 회한이 서린다.
양구의 겨울은 왜 그리 춥던지. 체감 온도 영하 30도를 이겨내며 혹한기 훈련을 받았지. 눈은 또 왜 그리도 많이 내리던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던 제설작업. 알파 브라보 차리포대 8인치 견인곡사포 포사격. 공병 피복 수령 광치고개너머 신남으로 현리로 방산으로 그리고 일종 부식 수령 21사단. 양구 동면 원당리와 후곡리, 임당리, 월운리, 송현리, 양구읍, 해안면 펀치볼, 인제 서화면 천도리, 도솔산, 대대 전술훈련 나갔던 파로호... 40년 세월이 흘러갔어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이름들.
“833포병대대는 1973년도에 철원 문혜리에서 양구 원당리로 부대 이전했지. 탄약고 위에 사격장을 만들었는데 그 터가 공동묘지였어. 그때 뼈를 수십 마대 수습했었지.” 박 선임하사님은 양구 원당리로 이전한 부대의 초창기 일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계셨다. 귀신이 나온다는 탄약고 위에 있는 그 사격장에서 딱 한 번 사격했던 기억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부대 이전 다음해에 자대 전입했다는 김 하사는 “부대 곳곳에 사역 엄청 많이 나갔다” 하며 당시 군생활의 애환을 털어 놓았다. 사실 나는 서무계라 사역을 많이 나가지 않았지만 인상 깊었던 일 몇 가지가 생각난다.
어느 해 가을었던가, 월동용 싸리나무를 꺾어오는 사역에 나간 적이 있다. 선임들이 싸리나무를 한아름씩 꺾는 동안 졸병이었던 나는 그 절반도 못꺾었다. 한번은 본부포대 월동준비 김장 사역을 나갔다. 커다란 탱크에 장화를 신고 들어가서 고추를 버무린 배추를 옮겨 담았다. 김장할 때는 하사관 부인들이 부대를 찾아와 많이 도와 주었다. 말년병장 때는 부대 내 신작로 길섶 풀뽑기 사역을 나갔다. 강아지풀과 쇠비름, 명아주, 방동사니를 뽑아내며 전우들과 한담閑談을 나누었던 기억이 새롭다. 제설작업 사역은 덧붙이지 않아도 되겠다.
우리 전우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여전히 싹싹하고 정이 많은 이 하사는 “직접 따놓은 능이버섯으로 백숙을 끓여 주겠다”며 “설악면으로 놀러오시라. 그리고 2박 3일 양구로 추억여행을 떠나자” 제안한다. 우리 전우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스며있는 그곳. 4, 5년 전 부대개방행사 때 두 차례나 부대를 방문하여 추억여행을 했었다. 한 번은 신 과장님께서도 동행해 주셨다. 옛 내무반과 창고, 행정사무실과 사병식당은 사라졌어도 나의 젊음의 시간과 전우들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었다. 차리포대가 있던 후곡리 후곡약수물을 마시며 전역 전날 후문너머 번지없는 술집 호롱불 아래서 전우들과 석별의 정 나누던 기억을 떠올렸다.
꽃다운 젊은 시절 군대에서 보낸 3년의 세월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 시간은 의미없이 사라지지 않고 오늘 전우들의 가슴속에 살아남아 다시금 새싹처럼 희망을 피워 올렸다. 지금껏 살아오며 삶이 힘들 때마다 군대 시절 극한의 상황을 이겨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내가 능히 감당할 만한 시련이지" 하며 고난의 순간들을 넘기곤 했었다. 40년 만에 만나 전우애를 다시 나눌 수 있음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흘러가버린 시간 속에서도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비록 삶의 가치관과 생각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전우들을 배려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음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 세상 소풍길 마치고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전우, 소식 끊겨 만나지 못하는 전우들의 얼굴이 하나둘 그립게 떠오르고 있었다. 봄이 오면 온 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던 진달래꽃, 여름철이면 콸콸콸 시원하게 흘러가던 계곡물, 고향 그리움 가득 안고 피어나던 코스모스꽃, 메마른 가슴 콩닥콩닥 뛰게 하던 울긋불긋한 단풍, 함박눈 소복소복 쌓여 수채화 모습을 한 내무반 막사와 연병장, 부대 뒷산 용늪 대암산의 사계절 풍경들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인생 황금기인 청춘 시절 군대에서 인연을 맺은 후 각자의 삶에 바빠 서로를 잊고 지내다가 이제 인생 황혼기에 다시 만난 전우들. 40년 만에 다시 이어진 이 인연이 남은 인생의 값진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2.06.06(월) 전우모임을 마치고
833포병대대 본부포대
군수과 서무계 병장 출신 김영택 쓰다.
박수천 전우가 단톡에 올린 글을 소개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45년 전의 833포대를 생각했습니다. 반갑고 한 가족같은 마음의 정을 흠뻑 느낀 것은 멀리 대구에서, 가평에서 오신 분의 보고픈 정이 아니고서는 가능했을까요? 이 하사님은 아들의 1시 파리행 비행기 출국을 못 보셨고, 기차표를 끊어주시겠다며 불편한 몸을 희생하시는 박 선임하사님 존경합니다. 호국의 뱃지를 구해 오셔서 달아주시는 군수과장님, 어른의 베푸는 마음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다음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세요. 833 화이팅!!!
2022.06.06(월) 박수천 전우의 글을 옮김
오늘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신현탁 과장님!
나라사랑큰나무 보훈 배지를 구해 오셔서 한 사람 한 사람 달아주시는 모습, 베푸시는 마음 참 아름다웠습니다.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맛있는 불고기 점심 사주시고 저희들의 정신적 기둥이 되어주시는 저희들의 영원한 대장이신 과장님, 더욱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박남종 선임하사님!
철원에서 양구로 833포병대대 부대 이전 이야기며 탄약고 사격장 등 구석구석 숨겨진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건강 잘 챙기셔서 많은 얘기 들려주시고 저희들과 오래도록 만나 주세요.
김대규 하사님!
잘 내려가셨는가요? 먼 길 마다 않고 달려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따스한 인품, 젠틀한 옛 모습 그대로 변치않아 고맙습니다.
이성교 하사님!
오늘 모임은 이 하사님의 전우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싹싹하고 인정 많은 성품, 옛 모습 그대로 보는 듯 했습니다. 다음엔 설악면을 거쳐 양구로 추억여행 떠날 날이 기다려집니다.
박수천 전우님!
타임머신 타고 45년 전 833포병대대 추억여행 한 듯 하다고요. 마음의 정 많으신 모든 분들 덕분이지요.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손주 녀석이 제 휴대폰을 들고 블록 맞추기 놀이를 하고 있어 늦게 인사드립니다. 오늘 상봉 사진도 좀 늦어질 것 같아요. 우선 몇 장만 보내드리겠습니다.
2022.06.06(월) 내가 단톡에 올린 글
김대규 하사님 멀리 대구에서 올라오시고, 이성교 하사님 또한 가정사 제쳐 놓으시고 가평에서 달려오신 덕분에 한 분도 빠짐없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모임 땐 양구 젊음의 추억이 어린 곳을 찾아 추억여행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맛있는 점심을 사 주시고 국가보훈처에서 제공하는 호국 배지를 구해오셔서 전우들에게 직접 달아주신 신현탁 과장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의 든든한 대들보이며 영원한 대장이신 과장님 더욱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박남종 선임하사님께서는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김 하사의 귀향길을 챙겨주시니 고맙습니다. 건강 잘 유지하시어 오래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특히 신 과장님께서 몸이 불편하신 선임하사님을 챙겨주시는 모습 감동적이었습니다.
2022.06.07(화) 내가 단톡에 올린 글
장문의 833 군수과 역사 잘 읽었습니다.
닭곰탕 사건도 있었네요?
그땐 cp에서 매일 회의할 때 대대장님께서 곧장 묻곤 했지요.
그때 결산일지에 우리 서무님께서 매일 결산내용과 오늘의 menu를 예쁜 글씨로 적어주곤 했지요.
닭곰탕 사건도 있었네요. 혼자 웃었어요. 밭에서 휴식하면서...
그때 군수업무(병기 수송 포함) 잘한 거 같아요. 물자 획득, 탄약, 수송 분배, 급식 등 모두 여러분의 덕택이었습니다.
보급 수령할 때는 항상 밤 늦게 도착했는데 그때까지 퇴근도 안하시고 사무실에서 기다리시던 선임하사님, 이 하사님 (김 하사님은 같이 동행), 서무님 그리고 그때 우리 member님 정말 고마웠습니다.
다들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Have a nice day.
2022.06.08(수) 신현탁 과장님께서 단톡에 올리신 글
신현탁 과장님! 고맙습니다.
과장님 글을 읽다 보니 젊은 시절 군대 추억들이 더욱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졸병 시절,
제가 보기에도 제가 작성하는 차트 글씨가 못마땅하고 능숙한 선임 서무계의 잘 쓴 글씨보다 너무 미흡하여
과장님께 “제 글씨가 많이 서툴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말씀드리면
과장님께서는 늘
“아, 잘 쓴 거야. 이 정도 썼으면 잘 쓴 거지” 하시면서
부족한 저를 늘 격려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서무계 고생한다면서
늘 저를 배려해 주시고
저희 과원들 출장이나 휴가 보내주려 애쓰셨던 과장님께 새삼 고마움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2022.06.08(수) 내가 단톡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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