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가족 이야기/황영성 · 가족/고이케 마사요 (daum.net)
가족 / 고이케 마사요
여자가 부엌에서 혼자
조용히 콩깍지를 까고 있다
블랙아이드피라는 이름의 콩이다
프라이팬에 볶아 먹는다
이름 그대로
검은 눈 같은 작은 콩이다
딸이 그 옆을 지나간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딸도 콩깍지를 깐다
심심한 손녀가 부엌에 들어온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손녀도 콩깍지를 깐다
남편이 출장지에서 지쳐 돌아온다
세 사람의 모습을 보고 남편도 콩깍지를 간다
아들이 애인을 데리고 돌아온다
네 사람의 모습을 보고 그들도 콩깍지를 깐다
정신이 들자
조용히 콩깍지를 까고 있는 여섯 명의 가족
테이블 위에는 조용한 콩깍지의 산
“우리가 왜 콩깍지를 까는 거지?”
그리고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가장 조용한 의문 하나가
마지막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
살짝 테이블 앞에 앉는다
어릴 적 마을의 이발소에는 엄마 젖을 빠는 새끼 돼지들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판화가 이철수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네 그림이 이발소 돼지 그림만큼 쉬웠으면 좋겠구나라고 말했다 한다. 아들은 평생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며 작업을 했다. 좋은 시는 아주 쉬운 언어로 쓰여야 한다. 이발소 그림처럼 누구든지 한눈에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쉬운데 읽을수록 깊이가 느껴진다면 그 시는 진짜 시라 할 수 있다.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동주의 ‘별 헤는 밤’ 같은 시가 모범이라 할 것이다. 6명의 가족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콩깍지를 깐다. 오랜 세월 인간이 꿈꾼 평화와 사랑이 이곳에 있다.
곽재구 시인ㅣ서울신문 20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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