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행자가 배에서 졸고 있는 어부를 보고 말했다. “고기를 일찍 잡으셨나요?” “3일 동안 잡을 분량을 아침나절 다 잡고, 이제 쉬는 중이라오.” 여행자는 이처럼 물고기가 많은 바다라면 큰 선박을 구해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지 않을까 의아해서 물었다. 어부의 답은 그러나 명쾌했다. “일을 마친 뒤 뱃머리에서 한가롭게 조는 게 낙이라오. 물고기를 더 많이 잡아설랑 부자가 된다 해도 내가 바라는 행복이 바뀔 것 같지는 않소.”
심리학자 매건 헤이즈의 얘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러시아에선 보드카를 한 잔 들고 ‘프라스토르’를 하는 게 노동자들의 소원이래. 탁 트인 벌판, 지평선을 바라보며 즐기는 쉼을 ‘프라스토르’라고 한대. 스웨덴에선 ‘에코타’라 해서 새벽 숲에 들어가 첫 새소리를 듣는 즐거움, 새벽 소풍을 최고 행복으로 친대. 태국에선 ‘사바이’라고, 해변에 드러누워 편안한 휴식을 뜻하는 말. 서늘바람이 불고 시원한 휴식 시간은 ‘옌 사바이’라고 한대. 아랍어엔 ‘아부르니’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당신 없이 살 수 없으니 당신보다 먼저 죽고 싶소’란 닭살 돋는 말. 무릎 베개를 하고 누워 아부르니~ 웃는 얼굴에 뺨을 때리진 않겠지. 호주 서부사막에 사는 원주민들은 ‘킨이닌파’라는 걸 하는데, 엄마가 안 듯 꼭 안아주며 토닥이는 행위란다. 안아주면 그 순간부터 휴식이지. 알래스카와 그린란드 원주민들은 ‘우니카키티기느크’라는 게 있는데, 이야기를 하는 재미에 빠지자는 뜻. 두런두런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공동체 모두 행복해진다. 일본에선 ‘세이자쿠’라고 해서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의 평온함을 뜻한대.
현명한 사람은 달리기 경주를 언제 끝낼지를 아는 사람이지. 악기를 다룰 때, 숨돌릴 시간을 아는 연주자가 가장 뛰어난 연주자다. 당신은 언제 숨돌릴 참인가. 잠시 우리 숨돌리자.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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