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지친 이들에게 보내는 시’ 전진탁, ‘공부’ 김사인, ‘희망가’ 문병란

푸레택 2022. 5. 29. 19:29

■ 지친 이들에게 보내는 시 / 전진탁

여보게,
기분은 괜찮은가?
자네가 요즘 힘들다 해서 묻는 말일세!
문을 열고 나가서 세상을 한 번 보시게!

어떤가?
언제나 세상은 그대로이며
눈부시게 아름답지 않은가?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광풍이 휘몰아쳐도

여전히 해는 뜨고
또 여전히 땅은 그대로 있으니

자네 가슴으로 불어와
꽁꽁 얼어버린 찬바람일랑은
저 햇살 아래에 서서
녹여 떠나보냄이 어떠한가?

어느 곳
어느 땅이건
그 중심에는 언제나 자네가 서 있다네
그러니 중심 잘 잡으시게

자네가 휘청거리면
세상이 거세게 요동친다네
자네 휘청거리면
나는 넘어지는 신세니 한 번 봐 주시게

여보게,
세상의 중심!
그래, 자네 말일세!

자네가
태양을 집어삼킨 가슴으로 살기를
내 간절히 바라네

자네 식어있는 가슴을
지난날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다시 한 번 활활 태워 보시게

힘을 내시게
내 응원함세

자네가 세상의 중심이잖은가!

자, 내 손을 잡으시게
다시 일어서서
저 태양을 집어삼켜버리시게!

전진탁 《그대가 있어 세상이 아름답다》 중에서

■ 공부 / 김사인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

김사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2015)

? 해설

2022년 새봄, 서울 광화문글판은 김사인 시인의 시 ‘공부’를 선정했다. 김사인 시인의 시가 광화문글판의 문안으로 선정되기는 2016년 가을편에 담긴 '조용한 일' 이후 두 번째다. 시인으로서는 큰 영예이다.

글판 운영자인 교보생명은 “봄편 문안으로 선정된 시는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듯 사람과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배우는 것이 ‘인생 공부’라고 비유한다”며 “겨울과 봄이 바뀌는 계절의 틈새에서 우리를 위로하는 공동체의 따뜻한 시선이 있음을 떠올리자는 뜻으로 이번 문안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시는 삶의 섭리에 대한 성찰을 노래하고 있다. 사람은 인생이라는 커다란 학교의 학생이다. 살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공부다.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모두 다 공부다.

실패도 좌절도 공부의 한 과정이다. 어려운 것도 다 공부라고 생각하면 견딜만하다. 모든 것에 감사할만 하다. 여러분, 오늘도 인생공부 열심히 하시기 바란다.

? 김사인 시인

저자 김사인은 1956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대전고와 서울대 국문과에서 공부했다. 1981년 『시와 경제』 동인 결성에 참여하면서 시를 발표했으며, 1982년부터는 평론도 쓰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이 있고, 『박상륭 깊이 읽기』 『시를 어루만지다』 등의 편저서가 있다.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십년째 고양시 일산에 거주하고 있다.

김사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2015) 출판사의 저자 소개.

■ 희망가 / 문병란 시인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 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 길 멈추지 말라
  인생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 2022.05.29 옮겨 적음

https://youtu.be/xbtVjxo3cwU

https://youtu.be/Cvv2A46h0Sg

https://youtu.be/vwWOhlcFe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