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사서독>을 보면 이런 대사가 쫄깃하게 감긴다. “당신은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곁에 없었어요….” 요새 활짝 핀 마당의 수국이 나에게 하는 말 같다. 며칠 대처에서 놀다가 왔는데, 꽃들이 삐진 얼굴. 달래주려고 샘물을 뿌려주었다.
“많이 먹을 필요 없어. 한 마리 생선을 뼈째 먹어봐. 그럼 진짜 맛을 알게 될걸. 많이 읽을 필요 없어. 한 권 책을 너덜너덜해지도록 읽어봐. 진짜 재미가 느껴질걸. 많이 사랑할 필요 없어. 단 한 사람을 지독히 사랑해봐. 그럼 진짜 사랑을 알게 될걸.” 여행자 시인 다카하시 아유무의 시구를 기억해.
멀리 있지 않아. 가까운 이와 가까운 곳에 당신이 찾는 게 다 있다. 그런데 우리는 바보처럼 멀리서 찾지. 작은 케이크 한 조각이 주는 위로에 대해 얘기해 볼게. 커피와 크림치즈가 버무려진 케이크 티라미수. 끌어올린다는 뜻의 ‘티라레’와 나를 의미하는 ‘미’, 위로해준다는 뜻의 ‘수’가 뭉친 이태리말이다. ‘나를 위로해주는 케이크’라는 뜻. 커피에 카페인이 있으니 티라미수를 먹으면 머리가 핑 돌면서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케이크 한 조각에도 피곤하고 다친 마음을 쓰담쓰담 할 수 있다.
최근에 서울 친구들이랑 남산에 산책갔어. 서울이 고향인 친구는 처음이라고 했다. 파리 에펠탑은 가봤으면서 남산타워는 못 가보고 죽는 경우가 많지. 다른 나라 같으면 남자들의 전용 화장실 전봇대(?) 말고는 화장실 찾기도 곤욕이겠지만 우리나라는 어디나 청결한 화장실과 편의시설. 나무 그늘도 우거지고 좋았어. 산 아래서 사들고 간 티라미수와 얼음 커피를 나눠 먹었다. 건강할 때 같이 산에도 가고, 빵도 나누고, 맑은 술 한잔 건네며 그렇게 축제처럼 살자꾸나. 작은 일에 의미를 두면 매일매일이 축제가 돼. “축제 없는 삶이란 쉴 만한 여관도 없이 행군하는 길과 같다.” 웃는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데모하듯이 남긴 말이래.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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