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임의진의 시골편지] 보사노바 보쌈논밭

푸레택 2022. 5. 28. 17:17

[임의진의 시골편지]보사노바 보쌈논밭 (daum.net)

 

[임의진의 시골편지]보사노바 보쌈논밭

[경향신문] 예전엔 농번기 방학이란 게 있었어. 농사랄 것도 없는 부모님의 교회당 한구석 텃밭에 비해 동무들은 수십마지기 농사를 돕는 어린이 노동자들이었지. 게다가 소 꼴도 베러 다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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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농번기 방학이란 게 있었어. 농사랄 것도 없는 부모님의 교회당 한구석 텃밭에 비해 동무들은 수십마지기 농사를 돕는 어린이 노동자들이었지. 게다가 소 꼴도 베러 다니고 염소도 줄줄이 끌고 다니면서 배를 불려야 했어. 쫄쫄 어린 주인을 따라다니던 황구 백구 개들은 떠돌이개를 만나 연애를 하고 아랫배가 불렀다. 경지 정리가 아직 덜 된 시골 논밭은 마치 보사노바 음률처럼 예측할 수 없는 곡선으로 논두렁 밭두렁이 흘렀지. 아마존도 아닌데 아나콘다처럼 굵고 긴 구렁이나 꽃뱀들, 비뚤배뚤 보사노바 스타일로 도망치는 걸 보기도 했다. 보사노바는 잘 몰라도 수육에 쌈을 해서 먹는, ‘보쌈논밭’의 저녁 밥상. 가끔 동무집에 갔다가 그런 식탁에 마주 앉아 저녁기도를 바치기도 했었다.

한번은 브라질에 갔었어. 우라질 브라질은 멀기도 하더군.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진한 녹색의 밀림과 사각거리는 금모래를 지닌 해변에선 오길 잘했지 끄덕이게 된다. 리우데자네이루엔 보사노바를 부르는 가수들이 넘쳐난다. 남극성을 바라보면서 연인들은 달콤한 사랑 노래를 흥얼거려. 가난해도 사랑이 곁에 있으면 용기가 우뚝 솟지. 보름달이 뜨면 달이라도 배가 불러 참 다행이구나 웃는 낙천적인 사람들. 앵무새들도 ‘올라! 봉 디아’ 아침 인사를 하면서 길손들을 맞이해. 무섭다는 동네도 가보면 다 같은 사람 사는 동네. 못나고 가난하면 두렵지 않지.

다음주엔 경상도 한 대학원에서 몇 마디 말을 해야 하는데, 심지어 물리학자, 신학자, 음악가 등이 함께하는 자리라 오줌을 지릴까 걱정이야. 못나고 못 배운 걸 알 테니 보사노바나 한 소절 나누면 되겠지. 보사노바는 힘을 빼고 불러야 잘 부르게 돼. 인생도 또 무엇이라도 힘이 잔뜩 들어가면 부러지게 되어 있지. 힘빼기 기술을 터득해야 평안해진다네. 배에 힘주면서 거만하게 걸으면 뒤로 넘어져 죽는다는 옛말이 있다. 게다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나.


임의진 목사·시인ㅣ경향신문 2021.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