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지역에 '물폭탄' 장마가 달라졌다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25)] (daum.net)
올해 장맛비가 이상합니다. 8월까지 유례없이 긴 장마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마는 대개 7월이면 끝났고, 최근 3년여간 장마다운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 여름 장맛비는 더욱 이상하게 다가옵니다.
올해 장맛비는 국지적으로 거세게 내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년에는 장맛비가 몇날 며칠 지속적으로 내렸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계속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참, 지루하다’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올해엔 장마철이 지루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단시간에 비가 왕창 쏟아져 내리고 비가 그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한참을 비가 오지 않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루한 장마라기보다는 특정 지역에 ‘물폭탄’이 떨어지는 국지성 집중호우 형태입니다.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몰라 긴장이 됩니다. 비가 그쳤을 때 일을 처리하려고 급히 움직입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우산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기도 합니다.
많은 양의 비가 한꺼번에 국지적으로 내리면서 8월 첫 주에는 중부지방에 산사태가 나고 곳곳이 침수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흙더미가 펜션을 덮쳐 주인 일가족 3명이 사망하고, 서울 도림천변 산책로에 있던 80대 남성은 비로 갑자기 불어난 급류에 휩쓸려 숨졌습니다. 피해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기상청은 8월 중순까지도 집중호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스콜과는 달라, 국지성 집중호우로 봐야
장마란 보통 초여름인 6월 중순부터 7월 하순까지 약 한 달간 이어지는 집중 강수 기간을 의미합니다. 장마라는 단어에서 ‘장(長)’은 ‘길다’라는 뜻의 한자어이고, ‘마’는 ‘물’을 뜻하는 옛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시베리아로부터 내려오는 북쪽의 차가운 고기압과 남태평양으로부터 올라오는 남쪽의 따뜻하고 습한 고기압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특히 여름철 두 기단이 만나 장마전선이 형성됩니다. 장마전선은 대표적인 정체전선으로 이 전선이 걸쳐 있는 지역에 긴 시간 비를 내립니다.
우리나라는 장마 기간에 강수량이 집중되는 기후로, 장마철 내리는 비의 양은 연 강수량의 30%를 차지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장마는 많이 변해왔습니다. 장마 기간은 길어지고 장마철 강수량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마른장마’라는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장마전선 형성이 불명확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선을 따라 내리는 장마철 강수량이 자연스럽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마른장마라는 용어는 기상학적으로 정립된 말은 아닙니다.
2000년대 들어 장마철임에도 강수량이 300㎜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이를 장마철인데 비가 오지 않는다는 뜻의 마른장마로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14년에는 평균치의 절반에 불과한 158.2㎜의 비가 내리기도 했습니다. 장마철이 불명확해지자 기상청도 2009년부터 따로 장마예보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여름철 집중호우가 예상될 때 예보를 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집중호우성 장맛비가 내릴 때마다 한국의 장맛비가 동남아에서 나타나는 ‘스콜(squall)’로 변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스콜은 열대기후 지역의 갑작스러운 대류성 강수 현상을 말합니다. 강한 햇빛 때문에 지표면 또는 해수면에서 증발이 빨라지는 등 대류현상이 활발히 일어나 갑작스럽게 세찬 소나기가 내리는 것입니다. 적도 주변 열대기후 지역에서는 스콜현상이 거의 매일, 주로 오후 시간대에 발생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열대지방은 워낙 무더운 날씨이기 때문에 스콜이 뜨거운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기상이변 속출
한국의 여름 날씨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더욱 더워지는데다 장맛비의 특성이 변하며 짧은 시간에 국지적으로 세찬 비를 내리기 때문에 ‘스콜’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 시간당 100㎜ 내외의 폭우가 쏟아지는가 하면 일정 시간을 두고 시간당 30~50㎜의 강한 비가 반복적으로 내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 12일에는 서울 평창동에 시간당 50㎜의 강한 비가 내린 반면 같은 시간 서울 서초동에는 1㎜의 비가 내리는 데 그쳤습니다. 기상청도 장맛비의 특성이 변화해 마치 스콜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맞지만, 장맛비와 스콜은 발생 원리가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즉 한국의 장맛비가 스콜로 변하고 있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는 뜻입니다.
스콜은 대류현상에 의해 스스로 발생하는 자생형 강우인 반면, 올여름 집중호우는 자생형이 아닙니다. 스콜은 열대지방의 높은 기온과 강한 햇빛으로 인해 스스로 비구름이 만들어지고, 비구름이 비를 뿌리고 지표를 식히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반면 중부지방에 내린 이번 비는 우리나라를 둘러싼 대기의 영향을 받아 발생했습니다. 남쪽에서 남서풍을 타고 장마전선에 유입된 고온 다습한 공기가 상층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와 만나 비구름이 크게 발달하면서 세찬 비를 내렸습니다.
스콜은 주로 낮에 발생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국지성 호우는 낮과 밤의 구분이 없는 것도 차이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집중호우가 늘고 있는 것은 통계로도 확인이 됩니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1970년 7월 하루에 80㎜ 이상의 비가 내린 집중호우는 연평균 8일이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연평균 20일 정도로 크게 늘었습니다. 남부지방보다 중부지방에서 집중호우의 증가세가 두드러졌습니다.
집중호우가 늘어나는 등 장맛비의 패턴이 변하는 이유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기후변화로 대기 중 수증기의 양이 늘어났습니다. 수증기가 늘어나면 대기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이를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국지성 집중호우가 내리게 됩니다. 지구온난화가 발생하면 지구가 뜨거워진다는 것만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증발량이 늘어나면서 기상이변이 늘어난다는 점이 더 위험합니다.
올해 여름 집중호우 이후에는 역대급 폭염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역대급 폭염으로 거론되는 해는 2018년과 1994년입니다. 2018년에는 하루 최고 기온이 33도를 넘는 폭염일 수가 31.5일에 달했습니다. 1994년에는 31일이었습니다. 올해는 2018년의 기록도 깨질 수 있다고 합니다. 건강을 챙겨야겠습니다.
목정민 과학잡지 <에피> 편집장ㅣ경향신문 20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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