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여성 과학자 연구시간 줄었다 [알아두면 쓸모있는 과학 (23)] (daum.net)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확산됐습니다. 특히 미국 등지에서는 일정 기간 학교·대학·연구소 등이 아예 폐쇄됐습니다. 비(非)일상이 일상화되면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중단되거나 변화를 맞았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여성 과학자들의 연구가 타격을 받고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여성 과학자의 연구논문 수가 남성 과학자들의 연구논문 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원인은 연구실이 셧다운 되면서 주로 여성 과학자들이 집에서 육아와 가사를 도맡아 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과학계의 젠더 이슈에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질 시점입니다.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팬데믹 기간 동안 여성의 논문 출간 줄었나? 데이터가 말한다(Are women publishing less during the pandemic? Here’s what the data say)’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팬데믹 이후 남성과 여성의 논문 출간 건수 격차가 벌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이후 같은 기간 남성과 여성의 논문 건수를 비교했더니 여성의 논문 수 증가폭이 남성에 비해 현저히 적었습니다.
분석을 담당한 캐나다 토론토대 메간 프레데릭슨 교수는 연구자들이 논문을 올리는 프리프린트(pre-print) 2곳의 논문 저자 성별을 분석했습니다. 프리프린트는 과학자들이 논문을 학술지에 투고하기 전 논문을 공개하는 곳입니다. 생명과학 분야로 바이오아카이브(bioRxiv), 수학 및 물리 분야로 아카이브(arXiv)가 대표적입니다. 프리프린트에 논문을 올리면 자신의 연구결과를 빨리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어 연구 분야 선점에 유리합니다. 또한 다양한 과학자들로부터 코멘트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검증된 논문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서 봐야 합니다.
여성과 남성 과학자 논문 수 격차 벌어져
메간 교수가 프리프린트의 논문을 비교분석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코로나로 인한 논문 건수 추이 변화를 보기 위해서로 보입니다. 정식 출간된 논문의 경우 심사과정이 길기 때문에 팬데믹으로 인한 셧다운의 영향을 살펴보기 어렵습니다.
메간 교수는 바이오아카이브와 아카이브 프리프린트 사이트에 2019년 3~4월, 2020년 3~4월 올라간 논문 3만6000여 건에 실린 저자 7만3000여 명의 성별을 분석했습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 분석 결과 아카이브에 올린 논문의 경우 2020년 3~4월 논문이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여성 저자 건수는 2.7% 늘어난 데 반해 남성 저자 건수는 6.4% 증가했습니다. 바이오아카이브의 경우 같은 기간 여성 저자 건수가 24.2% 증가했고, 남성 저자 건수는 26% 늘었습니다.
연구를 책임지는 제1저자로서의 여성의 논문 출간 건수가 줄어든 프리프린트도 있었습니다. 어스아카이브(EarthArXiv)는 2019년 4월과 2020년 4월의 여성의 제1저자 논문 건수가 20%대에서 10%대로 떨어졌습니다. 메드아카이브(medRxiv)도 같은 기간 여성의 제1저자 논문 건수가 30%대에서 20%대로 감소했습니다.
자녀 양육에 가사까지 기울어진 운동장
덴마크 연구자 젠스 안데르센 박사와 미국 미시건대 레쉬마 작시 교수도 남녀의 논문 출간 건수 격차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아카이브에 발표했습니다. 덴마크 연구진은 코로나19 팬데믹 관련된 논문 1893건을 분석했습니다. 이 논문 가운데 여성 저자의 비율은 2019년 같은 기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세히 보면 제1저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2019년 평균에 비해 23% 감소했고, 교신 저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16% 줄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연구실과 학교가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집에 있는 아이의 삼시 세끼와 학습을 챙겨야 할 부담은 현실적으로 여성 과학자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울어진 시소’와 같은 현실에서 여성 과학자들은 집을 청소하고,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을 도와주고, 과제물을 챙겨주고, 그리고 그사이 자신의 연구를 정리하면서 동료들과 회의를 해야 합니다. 어떤 여성 과학자는 코로나19 셧다운 이후 매일 해가 뜨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 산타클라라대 사회학자 몰리 킹은 학술지 〈네이처〉에 남자 과학자들에게는 집에서 아이들과 가사를 챙길 배우자가 있지만, 여성 과학자들에게는 일하는 배우자가 있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여성 과학자가 처한 현실은 연구시간이 남성 과학자보다 적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됩니다.
메간 교수는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남성 과학자와 여성 과학자의 격차가 앞으로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올해 3~4월에 프리프린트에 올라간 논문은 코로나19 발생 초기 또는 그 이전에 준비되던 논문이 다수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3~4월 연구실 셧다운으로 인한 연구성과들은 앞으로 계속 출간될 예정이기 때문에 앞으로 여성 과학자의 논문 건수가 어떤 추이를 보이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계에서 여성과 남성의 격차 문제는 오랫동안 지적돼왔습니다.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여성의 비율이 급감하는 ‘유리천장’이란 단어는 과학계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미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된 연구를 보면 여성 과학자들의 경력이 가장 많이 단절되는 시기는 학계에 진입한 후 5~10년 뒤라고 합니다. 가족을 이루고 자녀는 갖는 시기와 겹칩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찌 보면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는 한국의 현실은 외국보다 더욱 심각합니다. 최근 5년간 이공계 성별 취업률에서 성별 격차가 감소했다는 뉴스가 있지만, 책임연구원 또는 그보다 상부 자리까지 올라간 여성 과학자의 수는 남성에 비해 극히 저조합니다.
재난은 사회의 아픈 곳을 더욱 드러냅니다. 코로나 팬데믹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불평등이 가속화됩니다. 요즘 우리 주변의 젠더 불평등에 대해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문헌
-문성실, 〈팬데믹과 여성 과학자 생산성은 ‘반비례’〉, 이로운넷
-Giuliana Viglione, 〈Are women publishing less during the pandemic? Here’s what the data say〉, Nature, 2020. 5. 20.
-안희경, 〈과학계 젠더평등 이루려면 양육 가사 공동분담 문화 퍼져야〉, 이로운넷
목정민 과학잡지 <에피> 편집장ㅣ경향신문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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