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 살아가는 이야기

[오늘 일기] 동심초와 은방울꽃

푸레택 2022. 5. 23. 23:18

[오늘 일기] 동심초와 은방울꽃

오늘 아침, 대학 친구인 문 교수가 카톡으로 소프라노 신영옥이 부른 가곡 동심초 노래를 보내왔다.

동심초(同心草)는 소월(素月)의 스승인 안서(岸曙) 김억(金億)의 역시(譯詩)에 김성태(金聖泰)가 곡을 붙인 가곡이다. 원작(原作) 시(詩)는 무려 천여 년을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중국 당나라 때 명기(名妓)이자 여류 시인인 설도(薛濤, 768~832)의 작품이다. 동심초를 최초로 부른 가수는 산장의 여인 노래로 유명한 권혜경이라고 한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동심초 유튜브 영상 배경화면에 꽃말이 행복, 희망’인 은방울꽃이 가득하다. 문 교수가 영상과 함께 보내온 글이 까마득히 먼 젊은 시절의 추억을 소환한다.

대학 1학년 때 광릉 식물 채집에서 은방울꽃을 처음 보았지요. 50년도 넘은 시간이지만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나는 그에게 답글을 썼다.

동심초가 심금을 울립니다. 듣고 또 듣습니다. 부르고 또 불러봅니다.

대학교 1학년 광릉 식물 채집 때 처음 보았던 은방울꽃. 문 형도 저와 똑같은 기억을 갖고 계시네요. 저도 은방울꽃만 보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둥굴레와 비비추도 그때 처음 듣고 보았지요. 아련한 젊은 날의 추억을 돌이켜 봅니다.

그 시절 의지할 데 없는 마음, 문 형 덕분에 많은 위로를 받고 견뎌냈습니다. 세월도 가고 청춘도 가고 한번 간 젊음은 다시 오지 않는군요. 흘러가버린 젊은 날의 추억들. 한갓 헛된 꿈인가요. 지나간 세월이 봄날의 꿈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생물교육학과는 해마다 학년초에 광릉에서 식물 채집을 겸해서 신입생 환영회를 개최하는 전통이 있었다. 낮에는 가까운 산과 계곡을 찾아 식물 채집을 하며 식물 공부를 하였고, 다음 날은 광릉초등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학년 대항 축구 시합을 했었다. 밤이 되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주위에 과(科) 학우들이 모두 둥글게 둘러앉아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하고 장기자랑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수님들도 함께 어울리시며 노래를 부르셨다.

영국에서 염색체학을 공부하고 오셔서 세포유전학을 가르쳐 주셨던 이웅직 교수님이 부르신 얼룩 송아지나하나의 사랑’(송민도 노래). 교수님은 어떤 모임에서건 이 두 노래만 부르셨다. 그후 이 노래는 우리 생물교육학과의 주제곡이 되었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이보다 유전 법칙을 잘 설명해 주는 노래는 없다. 나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여 영원히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소. 나혼자만을 그대는 믿어주고 영원히 영원히 변함없이 사랑해 주.’ 이보다 더 사랑을 잘 표현한 노래는 없다.

나는 캠프파이어 시간이 되면 학우들 무리 속에 잠시 앉았다가 슬그머니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캠프파이어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노랫소리를 멀리서 들으며 나홀로 별빛 쏟아지는 길을 걸었다. 무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나와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왠지 마음이 더 편하고 좋았다.

그때 언제 왔는지 친구 M이 곁에 와 있었다.

왜 함께 어울리지 않고 혼자 떨어져 있어. 자, 가자구!
친구는 늘 나를 중심으로 끌어들였고 나는 늘 변방이 좋아 주변을 맴돌았다.


친구 M은 늘 형(兄)과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어 내게 기댈 언덕이 되어 주었다. 대학시절 서로 가정교사(과외) 아르바이트를 구해주며 이심전심(以心傳心) 고난의 시간을 함께 겪었던 친구. 서울대 대학원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공주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로 근무하다 은퇴한 친구. 그는 요즈음도 카톡으로 좋은 글과 노래를 보내주며 나의 안부를 묻곤 한다. 빈천지교(貧賤之交)의 고마운 벗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어떤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계를 맺기보다는 멀리서 관찰자의 시각에서 지켜보고 바라보며 관조(觀照)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 성격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동심초 노래 가사처럼 맘과 맘을 맺지 못해 때론 허전하고 공허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럴 땐 내가 나의 관찰자가 되어 내가 나를 바라본다. 지금 나에게 이런 생각과 감정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면 나의 생각과 감정을 보다 잘 다스릴 수 있게 된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동심초 노래를 부르고 또 불러본다. 까마득히 먼 옛날 광릉숲에서 난생 처음 은방울꽃을 보며 가슴 설렜던 그 풋풋했던 젊은 시절의 추억에 잠겨보면서.

/ 2022.05.23(월) 

https://youtu.be/TJuJ5LETEyg

https://youtu.be/zcSBQt7XW6g

https://youtu.be/sBilOoOQhnw

https://youtu.be/3FkeXLszTlU

https://youtu.be/bfXUFG4Cu6Y

https://youtu.be/sXUvoiJG3w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