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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의 인물조각보] 스마트폰이라는 늪에 빠진 한국인들

푸레택 2022. 5. 10. 08:02

[노명우의 인물조각보]스마트폰이라는 늪에 빠진 한국인들 (daum.net

 

[노명우의 인물조각보]스마트폰이라는 늪에 빠진 한국인들

[경향신문] 95%나 된다. 퓨리서치(Pew Research)에 따르면 2019년 무려 95%의 한국인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보급률 88%로 조사 대상국 중 2위를 차지한 이스라엘을 큰 폭으로 앞지른 압도적 1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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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의 인물조각보] 스마트폰이라는 늪에 빠진 한국인들 /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95%나 된다. 퓨리서치(Pew Research)에 따르면 2019년 무려 95%의 한국인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보급률 88%로 조사 대상국 중 2위를 차지한 이스라엘을 큰 폭으로 앞지른 압도적 1위 기록이다. 연령별로도 큰 차이 없이 고르게 스마트폰이 보급되어 있다. 18~34세 한국인 99%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데 50세 이상에서도 91%나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다. 당연히 SNS도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조사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인은 하루에 평균 1시간을 SNS와 함께한다.

문자를 발명한 토트신이 어느 날 이집트의 왕 타무스를 찾아왔다. 토트는 인간에게 문자라는 미디어를 선물하고 싶다면서, 문자의 장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난 후 왕 타무스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토트신의 제안을 거절했다. 문자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기억능력을 잃어버릴 거라는 이유였다. 오래된 에피소드이지만, 문자를 스마트폰으로 바꾸어 놓으면 감쪽같이 현대의 이야기로 변신한다. 문자를 소개하러 왕 타무스를 찾아온 토트처럼 어느 날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들고 등장했다. 우리는 열광하며 그 미디어를 받아들였고, 마침내 95%의 사람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고 별수 없이 망각의 늪에 빠졌다.

특별한 기억력의 소유자가 아니어도 전화번호 수십 개를 힘들이지 않고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처음 가는 길도 두어 번 가다보면 경로가 머리에 저절로 입력되던 능력의 소유자도 스마트폰의 길 안내에 의존하다보면 자주 가고도 길을 기억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사람이 미디어를 발명했지만, 미디어는 은밀히 새로운 인간을 발명한다.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을 발명했고, 그가 발명한 스마트폰은 2019년의 우리를 발명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 이번엔 고대 그리스 세계로 들어가본다.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는 바다 괴물 스킬라(Scylla)와 카리브디스(Charybdis)가 양쪽 해안절벽에서 버티고 있는 해협을 지나가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가 도사리고 있는 해협이 유일하게 그를 고향으로 안내하는 길이다. 해협을 통과하다가 스킬라와 카리브디스에 의해 죽을 확률은 매우 높다. 그렇다고 해협을 지나지 않으면 고향에 가지 못한다. 너무나 유명한 일화인지라, 영어에서는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을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Between Scylla and Charybdis)’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스마트폰 인간인 우리 또한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통과해야 하는 오디세우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미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스마트폰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다시 현대 한국으로 되돌아온다. 스킬라가 있던 언덕에 ‘관심종자’가 보인다. ‘관심종자’는 세간의 ‘어그로’를 끌어내어 불쾌감을 유발함으로써 쾌락을 얻으려 한다. 관심종자에 대한 제일 좋은 응대는 무관심이다. 관심종자의 도발에 어떠한 정서적 반응도 보이지 않으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고 그 불쾌감을 자신의 쾌감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이들의 전략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러나 여간해서는 무관심으로 응대하며 현대의 스킬라 곁을 지나가기 쉽지 않다. ‘어그로’를 자신의 쾌락의 원천으로 삼는 이들은 끊임없이 진화하여, 무관심 전략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불쾌감 자극을 개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번이 우리는 관심종자의 끈끈이주걱에 빠진다.

우리 시대의 스킬라 건너편엔 카리브디스인 ‘힙스터’가 있다. 세상의 인기를 한 몸에 끄는 사람, 무엇이든 SNS에 올리기만 하면 수백 수천의 ‘좋아요’를 획득하는 사람, 아마도 돈 걱정은 안 하는 것 같은 사람, 집에 있는 시간보다 여행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은 사람, 아마도 스테이크를 된장찌개만큼 자주 먹는 것 같은 사람, 아무 옷이나 걸치지 않고 아무 로션이나 얼굴에 바르지 않는 것 같은 사람, 절대 찡그린 표정으로 사진 찍지 않는 사람, 연예인보다 더 연예인 같은 사람, 그들을 묘사하자면 1000일 야화가 필요할 터이나 간단하게 줄여 ‘힙’에 살고 ‘힙’에 죽는 ‘힙스터’라 하자.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SNS 덕택에 늘 함께하는 듯한 느낌인 ‘관심종자’는 ‘어그로’를 사냥하지만, ‘힙스터’는 부러움을 사냥한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95%의 평범한 우리들은 ‘어그로꾼’에 속아 개미지옥에 빠지면 울화병에 걸릴 지경이고, ‘힙스터’의 ‘힙’ 대행진에 포위되면 처음에는 숨기고 싶은 초라함 그다음엔 알 수 없는 질투심에 휩싸인 자아를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는 처지가 된다. 오늘도 95%의 사람들은 거리를 걸으며 버스와 지하철에서 심지어 연인과 카페에서 마주 보고도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다. 우리 95%는 스마트폰의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우리 95%는 오디세우스처럼 각자의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시리(SIRI)에게 물었는데도 시리는 답을 모른다 한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ㅣ경향신문 2019.11.19

/ 2022.05.1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