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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의 인물조각보] 주거 불균형 해결한 빈의 ‘공정성 철학’

푸레택 2022. 5. 10. 07:58

[노명우의 인물조각보]주거 불균형 해결한 빈의 '공정성 철학' (daum.net)

 

[노명우의 인물조각보]주거 불균형 해결한 빈의 '공정성 철학'

[경향신문] 어떤 도시는 음식을 내세운다지만, 빈은 배출한 인물을 자랑한다. 멀게는 모차르트, 베토벤부터 가깝게는 화가 클림트,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까지 배출한 도시니 그럴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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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의 인물조각보] 주거 불균형 해결한 빈의 ‘공정성 철학’ /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어떤 도시는 음식을 내세운다지만, 빈은 배출한 인물을 자랑한다. 멀게는 모차르트, 베토벤부터 가깝게는 화가 클림트,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까지 배출한 도시니 그럴 법도 하다. 건축가 오토 바그너도 빼놓을 수 없는 빈의 자랑이다. 빈의 노이슈티프트가세(Neustiftgasse) 40번지에 그가 설계했고 직접 살았던 아파트가 있다. 바그너는 세부적 장식부터 창문의 모양과 크기에 이르기까지 아파트의 모든 층을 동등하게 다뤘다. 다른 층보다 특별히 중요해 보이는 층이 없다. 건물의 모든 층은 높이와 무관하게 동등한 대접을 받는다. 부르주아가 사는 2층과 가난한 사람이 사는 다락방이라는 주거 공간의 수직 분할에 대한 바그너 식의 대응인 셈이다. 그는 주거의 공정성을 고민했다. 빈이 그를 괜히 자랑하는 게 아니다.

빈 음악협회 콘서트홀, 서양 고전음악 애호가라면 반드시 찾고 싶어 하는 성지이다. 공연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연주회의 제일 좋은 좌석은 100유로 이상을 지불해야 확보할 수 있다. 부자가 아닌 이상 큰맘 먹어야 하는 돈이다. 돈이 없으면 예술에 대한 욕망도 단념해야 할까? 빈 음악협회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싸게는 6유로, 비싸도 10유로 정도에 판매되는 입장권도 있다. 도시별 물가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흔히 사용되는 맥도널드의 빅맥세트는 빈에서 6.9유로이다. 빅맥세트를 사먹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만 있으면 음악협회 음악회에 갈 수 있다. 단 서서 음악회를 볼 의지는 있어야 한다.

입석이지만 문제없이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극장이 크지 않기에 입석 관객도 100유로 이상을 지불한 관객과 다름없이 지휘자의 몸놀림, 바이올린 연주자의 운지법 심지어 팀파니 연주자가 북채를 휘두르고 난 후 소리를 컨트롤하기 위해 북의 표면을 손으로 고르는 제스처까지 잘 볼 수 있다. 비싼 좌석에는 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노인이 앉아 있다. 입석 관객은 더 다채로운 구성이다. 성별 나이 인종까지 다양하다. 입장권이 매진된 후에야 빈에 도착한 외부인, 매번 비싼 표로 입장할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입석표는 음악감상의 마지막 기회를 제공한다. 경제적 차이로 인한 예술향유의 불평등에 대한 빈 특유의 공정한 해법인 셈이다.

한국의 주택보유 상황과 음악협회의 입장권 가격 정책을 비교해봤다.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절대 낮지 않다. 전국의 주택보급률은 2017년 현재 103.3%이다. 그런데도 자기 집이 있는 사람은 2015년 기준 전국 56.8%에 불과하다. 7대 도시는 51.9%이고 서울의 경우 42.1%까지 떨어진다.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이 한국인 중 절반이다. 그런데 집이 있다고 사정이 동일한 건 아니다.

임대사업자 등록 현황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임대사업자 중 상위 30명이 1만1029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 무려 1인당 평균 367채이다. 한술 더 떠 594채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48세의 진모씨는 이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만약 한국이라는 나라가 빈 음악협회 연주회장이라면 소수의 집 있는 사람이 연주회장 좌석을 독점했기에,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이 입석으로 내몰리는 형상인 셈이다.

땅은 유한한데 인간의 욕심은 무한하다. 주거문제의 해결이 각자의 경제적 능력에만 내맡겨지면 주거지는 극단적으로 배분된다. 심지어 부동산이 노동보다 돈을 더 빨리 벌 수 있는 수단이 되면, 즉 집이 집을 벌기 시작하면 세상은 집을 여러 채 갖고 있는 소수의 사람과 겨우 한 채만 갖고 있거나 아예 자기 집이 없는 사람으로 극단적으로 양극화된다. 주거에 관한 한 한국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에 매달려 있는 사람과 꼭대기에서 막대한 불로소득을 올리고 있는 사람은 국적은 같지만 서로를 모른다. 그들이 사는 곳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어 그들은 길거리에서라도 우연히 마주칠 가능성조차 없다. 그들은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를 맺었던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나, 집을 평균 367채나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매번 계약할 때마다 세입자와 대면하지 않을 것이다.

빈 음악협회에 100유로를 지불하는 사람이 있기에 빅맥세트 가격으로 음악회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빈은 주거문제를 음악협회 방식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빈 시정부는 1922년에서 1934년 사이에 심각한 주거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사치세와 임대수입에 누진세를 적용하여 0.5%에 불과한 호화주택 소유자로부터 전체 세수의 45%를 거둬들였고, 이 기금으로 공공임대아파트 6만가구를 지어 22만명에게 혜택을 주었다. 그때 지어진 공공임대아파트는 현재 관광의 대상이 될 정도로 빈의 명물이기도 하다. 빈의 자랑거리는 비엔나커피(정확하게 말하자면 카페 멜랑주)가 아니라 빈 방식의 공정성 철학임을 비엔나커피를 마시며 생각해본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ㅣ경향신문 2019.10.22

/ 2022.05.10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