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3) 아아 어찌 잊으랴 - 이덕진의 ‘피의 능선’ (2022.04.11)

푸레택 2022. 4. 11. 20:48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3) / 아아 어찌 잊으랴 - 이덕진의 '피의 능선'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3) / 아아 어찌 잊으랴 - 이덕진의 '피의 능선' - 뉴스페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3) / 아아 어찌 잊으랴 - 이덕진의 '피의 능선' 피의 능선이덕진 여기 지금 살육을 본다 지구도 하늘도 까무러질 듯 포는 우는데 지그시 떠오르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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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3) 아아 어찌 잊으랴 - 이덕진의 ‘피의 능선’

피의 능선 /
이덕진


여기 지금 살육을 본다 

지구도 하늘도 까무러질 듯 
포는 우는데 
지그시 떠오르는 아침 햇빛이 
비둘기색 1211고지를 황홀히 빚어낸다

악착스러운 인간의 생과 사의 찰나에,
육과 육, 피와 피의 난무! 
아아 임리(淋漓)한 선혈이 굴곡된 계곡을 붉히고 
산형이 변하여 시체가 첩첩할 때 
능선은 피를 빠는 하나의 악귀 

만대에 계승될 또 하나의 피비린내 나는 
장엄한 전설이 생겼다
태고와 같은 전장
전우는 용감히 쓰러진 전우를 다시 부른다

— 『전선문학』 창간호(1952.4.10)

<해설>

장훈 감독의 영화 <고지전>이 실감나게 그린 피의 능선 전투는 1951년 8월 17일부터 시작되어 9월 3일에 끝난 한국전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 미국 제2사단과 국군 제5사단 제36연대가 양구 북방 피의 능선을 공격하여 북한군 제12, 24사단과 밀고 밀리는, 뺏고 빼앗기는 전투를 벌여 결국은 능선을 점령했다. 이 전투로 북한군은 펀치볼 북쪽 능선으로 물러섰고 한ㆍ미 양군은 백석산과 대우산 간의 측방도로를 확보했다. 그런데 시인에게는 이런 승전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덕진은 “산형이 변하여 시체가 첩첩할 때” 같은 묘사를 통해 전투의 실상을 전달하는 한편 “능선은 피를 빠는 하나의 악귀”라고 하면서 전쟁의 무자비함을 통탄했다. 우리가 이겼다고 환호하는 대신 쓰러진 전우를 외쳐 부르는 국군을 등장시켜 우리가 어떻게 치른 전투인지를 들려주고 있다. 그는 이 전투가 “만대에 계승될 또 하나의 피비린내 나는/ 장엄한 전설”이 될 것임을 예감했다. 그때 전사한 2,700명 국군과 유엔군의 명복을 빈다. 

이덕진 시인은 일제 말 징병에 끌려가 중국 남경에서 광복을 맞고 귀국해 동국대학을 다녔다. 교사로 있을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종군작가단에 들어가 상임감사로 활동했고 휴전 후 언론인으로 살아갔다. 종군작가단이 만든 『전선문학』 총 7권에는 35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ㅣ뉴스페이퍼 2019.06.06

/ 2022.04.11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