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2) /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 권성훈의 '움,'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2)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 권성훈의 ‘움,’
움, / 권성훈
파산을 신청하고 긴 계단 돌아왔다
순번 없는 3월 하늘 새순 돋는 대기표
말소된 이연(離緣)의 저녁, 고지서로 가득하다
슬픔의 만기일과 눈물의 소멸 시효
담배를 꺼내 문다 서류 봉투 꺼내 운다
활자도 모르는 척 (위장) 이혼 증명서
반지 자국 매만지며 주문 한 번 외워볼까
양말 벗을 귀갓길 이불 덮을 방바닥
일순간, 욕망의 배꼽, 움이 튼다, 아득하다
― 『유씨 목공소』(서정시학, 2012)
<해설>
경제적인 이유로 이혼하는 부부들이 있다. 남자가 개인파산 신청을 할 때, 빚쟁이에게 시달리는 피해를 아내에게 주지 않기 위해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위장이혼이지만 재결합할 확률은 낮다. 시인이 언젠가 그런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나 보다. 남자는 담배를 꺼내 물고 여자는 서류 봉투를 꺼내보고 우는 광경이었나. 배우자가 없는 양 살아가야 하니 반지도 각자 뺀다. 저녁도 같이 먹고 한 이불을 덮고 잠도 잤지만 이제는 다 일장춘몽 같은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이 시에서 움이란 재결합에 대한 희망인 듯하다.
이렇게 헤어졌다 다시 부부관계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남자가 귀가하면 일순간, 욕망의 배꼽, 움이 트지만, 다 아득한 옛날 일이 되었다. 파산, 말소, 고지서, 만기일 같은 것이 움트는 것을 막는다.
경기대 권성훈 교수는 젊은 날,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을 했었다. 수많은 이혼 부부를 만났다고 한다. 서로 원수처럼 대해 얼굴을 찌푸린 경우가 많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혼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많이 접했다고 한다. 주변 상황에 의해 마지못해 헤어지는 부부들의 사연을 시로 썼다. 돈이 부부를 갈라놓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ㅣ뉴스페이퍼 2019.06.05
/ 2022.04.11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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