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4) / 발산과 자제 - 함순례의 '꼴림에 대하여'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54) 발산과 자제 - 함순례의 ‘꼴림에 대하여’
꼴림에 대하여 / 함순례
개구리 울음소리 와글와글 칠흑 어둠을 끌고 간다
한 번 하고 싶어 저리 야단들인데
푸른 들녘마저 점점이 등불을 켜든다
내가 꼴린다는 말 할 때마다
사내들은 가시내가 참… 혀를 찬다
꼴림은 떨림이고 싹이 튼다는 것
무언가 하고 싶어진다는 것
마음속 냉기 풀어내면서
빈 하늘에 기러기 날려 보내는 것
물오른 아카시아 꽃잎들
붉은 달빛 안으로 가득 들어앉는다
꼴린다,
화르르 풍요로워지는 초여름 밤
— 시집 『뜨거운 발』(애지, 2006)
<해설>
사전을 뒤지니 ‘꼴리다’가 “생식기가 성욕으로 흥분하여 뻣뻣해지면서 커지다”와 ‘배알이 꼴리다’란 뜻으로 쓰여 “비위에 거슬려 아니꼽다”란 두 가지 뜻이 있다고 설명해 놓고 있다. 시인은 후자인 ‘배알이 꼴리다’로 쓰지 않고 전자의 뜻으로 이 말을 쓰고 있다. 여성 화자가 이 말을 수시로 하니까 “사내들은 가시내가 참… 혀를 찬다”고. 하지만 ‘꼴림’을 생명체의 원초적 본능으로 이해하면 혀를 찰 하등의 이유가 없다. 개구리들도 와글와글 “한 번 하고 싶어 저리 야단들이” 아닌가.
시인은 꼴림을 뭇 동물의 원초적 본능으로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떨림이고 싹이 튼다는 것”으로, “무언가 하고 싶어진다는 것”으로, “빈 하늘에 기러기를 날려 보내는 것”(미당의「冬天」이 연상된다)으로, 이윽고 “마음속 냉기 당당하게 풀면서/ 한 발 내딛는 것”으로 해석한다. 즉 열정과 창조의 원동력으로 파악한 것이다. 꼴림이 없으면 풍요로움도 없다는 시인의 주장에 공감한다. 함 시인의 용감함에 박수를 보낸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ㅣ뉴스페이퍼 2019.06.07
/ 2022.04.11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