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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의 행복심리학]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환상은 부자들이 만든다 (2022.04.08)

푸레택 2022. 4. 8. 13:23

[이용범의 행복심리학]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환상은 부자들이 만든다 (daum.net)

 

[이용범의 행복심리학]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환상은 부자들이 만든다

‘두 아이가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치다 주인에게 들켰다. 한 아이는 붙잡혔고 한 아이는 가까스로 도망쳐 개울을 건너다 다리가 무너지는 바람에 물로 빠지고 말았다. 그 아이가 사과를 훔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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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의 행복심리학]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환상은 부자들이 만든다 / 이용범 소설가 

ㅣ세상은 얼마나 공정한가

사고 당하면 '피해자가 원인 제공'
이런 심리적 현상 '공정한 세상 가설'
性 피해자·노숙자·실업자·장애인 등
피해자 불행 정당화하며 공정 믿어
고위층 자녀 특혜에 분노하는 청년
치열한 경쟁 내몰려 유독 여유 없어
'세상이 공정하다는 믿음' 위선이지만
비관적 세계관은 생존에 불리해
"노력하면 성공한다" 믿고 살 수밖에

‘두 아이가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치다 주인에게 들켰다. 한 아이는 붙잡혔고 한 아이는 가까스로 도망쳐 개울을 건너다 다리가 무너지는 바람에 물로 빠지고 말았다. 그 아이가 사과를 훔치지 않았어도 다리는 무너졌을까.’

이 이야기는 스위스의 심리학자 장 피아제(1896~1980)가 6~12세 아이들에게 질문한 것이다. 1991년에도 한 심리학자가 아이들에게 같은 이야기로 반응을 분석했다. 그러자 6세 아이 86%, 7~8세 아이 73%, 9~10세 아이 54%, 11~12세 아이 34%가 사과를 훔치지 않았다면 그 아이는 물에 빠지지 않았을 거라고 답했다. 어릴수록 나쁜 짓을 하면 천벌받는다고 믿은 것이다.

ㅣ피해자를 비난하는 이유

2004년 인도양에서 발생한 지진해일로 23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일부 기독교인은 인간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신의 경고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 때도 같은 경고음이 흘러나왔다. 재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그만한 잘못이 있었을까.

사람들은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이유를 찾으려 든다. 누군가 사고를 당하면 피해자에게 그럴 만한 까닭이 있지 않을까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공정한 세상 가설(just-world hypothesis)’이다. 사람들은 세상이 공정하기 때문에 선한 행위는 보상받고 나쁜 행위는 처벌받는다고 믿곤 한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도 이런 심리에서 비롯된다. 그럴 만한 짓을 했으니 그런 불행이 닥쳤을 거라고 짐작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피해자의 불행을 정당화함으로써 세상이 공정하다고 계속 믿는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큰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일수록 더 비난받는다. 성폭행 피해자 역시 모욕적 비난에 직면한다. 특히 성범죄자들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자기의 행위에 대해 정당화한다.

미국의 범죄심리학자 그레셤 사이크스(1922~2010)와 사회학자 데이비드 마차(1930~2018)는 범죄자들이 자기 행위에 대해 정당화하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구분했다. 첫째, 어쩔 수 없던 상황이라며 변명한다. 둘째, 자기 행위가 어떤 피해도 유발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셋째,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오도한다. 넷째, 자기에 대한 사회의 비난이 부당하다고 항의한다. 다섯째, 자기의 행위가 오히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정당화한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에이즈 환자, 극빈층, 성폭력 피해자, 노숙자, 실업자, 장애인들을 경멸하면서 그들 스스로 불행의 원인 제공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이들은 약자에 대한 관심도 적다.

ㅣ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미국의 심리학자 멜빈 러너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유리창 너머로 과제 수행 중인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어 예산상 무작위로 한 사람에게만 보수를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누가 보수를 받고 있는지 알려준 뒤 두 사람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보수를 받지 못한 사람의 기여도에 대해 낮게 평가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가 하는 일이 열등하다고 답했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왜 부자나 권력자를 높게 평가하는지 보여준다. 부자나 권력자는 열심히 노력했기에 그렇게 된 것이며, 가난한 사람은 못났거나 게으르기에 부자가 되지 못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심리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어진다. 미국 듀크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아론 카이 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일이 좋아서 할 경우 열악한 노동 조건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착취당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또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별도의 보상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공동체에 헌신하는 사회운동가나 스스로 원해 창작활동에 나선 예술가의 가난을 당연하게 여긴다. 성공한 사람에게서 성실성이나 열정 같은 미덕을 찾아내 성공에 대해 정당화하고, 실패한 사람에게서는 부정적 원인을 찾아내 패배자로 낙인찍는 것이다. 게을러서 가난한 사람이 있다. 한편 열심히 노력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런 불공정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난이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부자는 일과 욕망의 노예이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이런 전략에서 비롯된다. 사실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가난 그 자체다. 가난한 사람들은 나이·성별·교육 수준·인종을 불문하고 불공정한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부자들은 사소한 손실만 예상돼도 불공정한 거래를 냉정하게 거부한다. 부자는 자기가 볼 손실을 재빨리 인식하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손실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은 자기가 약자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ㅣ위선 혹은 거짓 믿음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으면 불공정에 대한 심리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적당히 덮어버리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자기·집단·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 기존의 불합리한 시스템까지 정당화하는 오류도 범하게 된다.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개인의 정치적 이념도 피해자를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미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수주의자들은 대체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공정성 문제는 ‘세상이 누구에게 공정한가’에 관한 것이다. 세상이 자기에게 공정하다고 믿는 것과 남에게 공정하다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르다. 자기에게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대체로 행복한 삶을 누린다. 이들은 불안하거나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자존감과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이 남에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거나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2008년 프랑스 이제르주(州) 그르노블 중앙광장에서 한 연구자가 거지로 위장한 뒤 행인들을 관찰했다. 행인들은 거지에게 적선하거나 무심히 지나쳤다. 연구진이 이들을 따라가 설문 조사해 보니 ‘세상은 남들에게 공정하다’라고 믿는 사람일수록 거지에게 적선하지 않았다. 거지가 된 것은 온전히 그 사람 탓이라는 심리 때문이었다.

청년들은 공정성에 매우 민감하다. 고위층 자녀가 특혜를 받거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경쟁조차 거치지 않고 정규직이 되는 것에 비판적이다. 자기의 노력으로 그런 이익을 얻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치열한 생존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는 신호다. 치열한 취업 전쟁을 치러야 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약자 배려라는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든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그래서 사회에 갈등이 존재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이념과 정치세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에 맞게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측이 어긋나는 세상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모호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노력이나 헌신의 대가를 기대할 수 없다. 세상이 공정하다는 믿음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희망의 불씨가 된다. 노력하면 언젠가 성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확신하는 사람의 삶은 늘 불만족스럽다. 비관적 세계관을 지닌 이들은 생물학적으로도 생존에 불리하다. 세상이 공정하다는 믿음은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이 삶에 기여하는 한 그 믿음은 살아남는다.

글=이용범 소설가ㅣ아시아경제 2021.03.17

/ 2022.04.08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