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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코로나 시대, 외로움 즐기는 자가 이긴다 (2022.04.08)

푸레택 2022. 4. 8. 06:21

[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코로나 시대, 외로움 즐기는 자가 이긴다 (daum.net)

 

[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코로나 시대, 외로움 즐기는 자가 이긴다

올해 초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가 해를 넘길 모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하면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모임은 취소 혹은 연기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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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코로나 시대, 외로움 즐기는 자가 이긴다 / 이용범 소설가

ㅣ외로움 이기는 법

올해 초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가 해를 넘길 모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하면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모임은 취소 혹은 연기되고 날마다 찾던 식당에서조차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식사해야 한다. 인파로 붐비는 거리를 벗어나도 몸 하나 내려놓을 벤치마저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힘든 시기가 아닐 수 없다.

현대인에게 고질적인 악성 질환은 외로움이다. 인간은 혼자 있는 시간을 고통스러워한다. 군중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외로움은 타인과 떨어진 물리적 거리만 의미하진 않는다. 동족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조차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오래전 조상들은 공동체에 해가 된 구성원을 무리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처벌했다. 공동체 자체가 생존의 울타리 역할을 하던 그 시대에 추방은 곧 죽음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에게 가장 혹독한 처벌은 추방이 아니라 군중 속의 고독 혹은 격리다. 격리는 사회적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 사회적 단절이 가져온 우울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방식의 비즈니스가 많아져 그만큼 일자리를 잃는 사람도 늘었다.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도 디지털 방식의 비즈니스는 앞으로 더 활성화할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방식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도 인간의 사회적 본성까지 대체할 순 없을 것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다.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외로움은 굶주림만큼이나 강한 갈망을 유발한다. 연구진은 성인 40명에게 10시간 동안 음식을 주지 않고 모든 사회적 접촉도 차단했다. 이후 실험 참가자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사회활동에 관한 사진도 보여주면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로 이들의 뇌를 촬영했다. 그 결과 굶주릴 때와 외로울 때 반응하는 뇌 영역이 같았다. 외로움은 배고픔만큼이나 견디기 어려운 욕구인 것이다.

외로움은 만병의 근원이다. 연구에 따르면 외로운 사람은 더 쉽게 감기로 고통받고 증세도 오래간다. 사회관계에서 고립될수록 면역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사회적인 동물에게 타자와 맺는 관계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악착같이 사람을 갈망한다.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인간은 무슨 짓이든 다 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순간순간 온라인에 접속하고 인터넷 게임에 몰입하며 가상세계에 뛰어든다.

온라인 활동이 외로움을 견디는 데 한몫할지 모르지만 사람에 대한 갈망까지 멈추게 하진 못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접속한다고 외로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2017년 미국 피츠버그대학 연구진이 페이스북 등 11개 SNS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본 결과 SNS에 빠져들수록 외로움은 오히려 깊어졌다. 온라인으로 타인의 삶을 지켜보면서 외로움을 더 타는 것이다.

2평 남짓한 방에서 스탠드 조명에 의지하는 밤이다. 한줄기 빛에 기댄 밤이지만 외로움과 쓸쓸함은 없다. 여태 공부한 지식을 토대로 본연의 지식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외로움은 원초적 욕구이자 고질병
굶주림만큼 힘들다는 연구도 존재
사회적 거리두기 일상화된 요즘
디지털 소통으론 외로움만 더 깊어

코로나19 사태로 경험했듯 무리 지어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은 전염병에 매우 취약하다. 바이러스는 관계망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간다. 바이러스야말로 인간의 원초적 갈망을 가장 잘 활용할 줄 아는 생명체인 것이다.


코로나19로 겪게 된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실업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실업자들도 직장인처럼 평일에 행복감이 낮아지고 주말에는 높아진다는 것이다. 출퇴근 걱정이 없는 실업자들은 주중이든 주말이든 행복감에 차이가 없어야 하지 않을까.

2014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진은 갤럽이 보유한 50만명 이상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여가 시간과 행복감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실업자들이 평일에 행복하지 않은 것은 친구와 가족들이 모두 일하러 나가기 때문이다. 주말에 행복한 것은 그들과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과 실업자 모두 주말에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평일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혼자 주말을 보내는 사람은 직장인이든 실업자든 행복감이 낮았다. 그런 의미에서 일자리를 잃는 것은 가족이나 친구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업자는 일자리가 없어서 불행하고 남들이 일할 시간에 혼자 있어야 해 더 불행한 것이다.

◆ 외로움과 친구 되기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따라서 평생 외로움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외로움은 자신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를 다시 점검해보라는 신호다. 이를 무시하면 고립된 채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외로움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2016년 독일 보훔대학 연구진은 흔히 30대와 50대에 더 외로움을 느낀다고 밝혀냈다. 30대는 가정을 꾸려야 하는 나이다. 50대는 자녀를 독립시켜야 하는 나이다.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는 것은 50대를 넘어서면 행복감이 조금씩 는다는 사실이다. 나이 들수록 사소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불행한 사건에도 정서적 흔들림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감정도 바이러스처럼 다른 사람에게 전염된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존 카시오포 교수는 오랜 기간 인간의 사회적 관계와 고립에 대해 연구해 왔다. 연구 결과 외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까지 외로움의 수렁으로 끌고 간다. 지독히 외로워하는 사람을 직접 만난 사람들은 보통사람보다 50% 더 외로워했다. '외로운 사람과 만난 사람을 만난 사람'도 25% 더 외로워했다. '외로운 사람과 만난 사람과 만난 사람을 만난 사람'도 외로움이 10% 증가했다.

그러니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우울하거나 외로워하는 사람을 피해야 한다. 대신 외로움을 곁에 두고 오랜 친구처럼 함께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는 사랑받아본 경험에 좌우된다. 혼자 있어도 불안해하지 않는 안정애착(securely attached)이 형성된 사람은 불안애착(anxious attached)을 가진 사람과 비교할 때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 하나는 사랑을 받아본 경험, 다른 하나는 사소한 친절에도 감사하는 마음이다.

외로운 사람 옆에 있으면 더 외로워
먼저 사랑하고 베풀어야 비로소 탈출
현명한 이는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
이 시대 무사히 벗어나려면
외로움 친구 삼아 '즐기는 자' 돼야

우리는 사랑받은 만큼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랑한 만큼 사랑받는다. 친절을 베푼 만큼 배려받고 배려받은 만큼 친절을 베풀 수 있다. 그러므로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먼저 사랑하고 베푸는 것이다.


외톨이로 사는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관계를 맺지 않는 게 본인에게는 손해일 수 있지만 사회에는 오히려 이익이 되는 경우도 있다. 생물계에는 어느 집단에서든 외톨이가 존재한다. 모든 생물은 함께 뭉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그런데 왜 외톨이가 존재하는 걸까.

집단행동은 때로 집단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가령 전염병이 창궐하는데도 함께 모여 활동하고 함께 모여 배를 채우는 동물은 순식간에 멸종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외톨이뿐이다. 외톨이는 다수가 피해를 입는 위기 상황에서도 종을 보존하고 집단을 유지한다. 따라서 외톨이를 부적응자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인류가 고통스럽게 통과 중인 이 시대는 우리에게 외톨이를 요구한다. 무조건적인 단절과 고립은 깊은 후유증을 남긴다. 그러나 이 시대에서 무사히 벗어나려면 고독을 친구 삼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독일 태생의 신학자 폴 힐리티(1886~1965)는 외로움을 '혼자 있는 고통'으로, 고독을 '혼자 있는 기쁨'으로 표현한 바 있다. 고독은 세상과 단절시키는 성벽이 아니다. 벽장 안에 유폐된 자아도 아니다. 현명한 사람은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킨다. 자발적 고독은 낭떠러지 끝에 자기를 세워둔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며 스스로를 정화시킨다.

이용범 소설가ㅣ아시아경제 2020.11.05

/ 2022.04.08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