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7) / 돼지를 키운 누님 - 김영산의 ‘돼지’ - 뉴스페이퍼 (news-paper.co.kr)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47) 돼지를 키운 누님 - 김영산의 ‘돼지’
돼지-큰누님 / 김영산
망헐놈의 돼야지, 망헐놈의 돼야지 금시 싸움질이여― 피범벅 된 꼬리 물어뜯으러 우르르 몰리는 놈들 간짓대로 패 운동장 내모니 불콰한 콧등 식식대며 흙덩이 마구 파헤치다,
접붙이랴 새끼 받으랴 주사 놓으랴 사료 주랴 똥 치랴 어미돼지 씨돼지 고기돼지 젖돼지 흰 돼지 검은 돼지 붉은 돼지 꽥꽥 울어쌓는 돼지막,
돼지는 우리 동네 고막손 아버지들 적부터 돼지 짠해하는 큰누님에 배어 콧구멍 벌렁대는 냄새 풍긴다
- 『벽화』(창비, 2004)
<해설>
‘큰누님’이란 부제가 붙어 있고 돼지를 키우는 장면이 전개되므로 아마도 시인의 큰누님이 그때 시골에서 돼지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제1연에서 화자는 “망헐놈의 돼야지, 망헐놈의 돼야지 금시 싸움질이여” 하며 간짓대로 패 운동장으로 내모는 큰누님의 거친 말투와 남자 같은 억센 행동거지를 묘사하고 있다. 제2연에서는 돼지 키우기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는데 한두 마리 키우는 집이 아니라 돼지를 사육하는 농가의 풍경이다. 제3연은 “돼지는 (…) 콧구멍 벌렁대는 냄새 풍긴다”라는 문장으로 되어 있다. ‘고막손’은 ‘조막손’의 잘못된 표기인지 사투리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제3연을 아버지들 적부터 돼지(로 인해) 짠해하는 큰누님(의 손길)에 배어 돼지들이 콧구멍을 벌렁대고 냄새를 풍긴다는 뜻으로 새겨본다. 또한 돼지를 닮은 누님이 아니라 돼지와 더불어 산 누님이란 뜻으로 새겨본다. 큰누님이 먹이를 줄 때, 돼지들은 코를 벌렁거리며 좋아했을 것이다. 큰누님의 체취는 아무래도 돼지한테서 풍기는 바로 그 냄새였을 것이고.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 뉴스페이퍼 2019.05.31
/ 2022.04.07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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