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봉산 얼레지 / 최두석
진동리 설피밭에서
얼레지 나물로 밥 먹고
점봉산에 올라
얼레지가 두 손 벌려
꽃을 받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움이 튼 지 오년 넘게
혼신의 힘을 모아야 피는 꽃 한 포기가
한 젓가락의 반찬밖에 되지 않는
인간의 식욕을 슬퍼하며
마치 외면하듯
고개를 돌리고 핀 꽃에
머리를 박고 입을 맞춘다
흔히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 말하지만
한갓 장난이나 장식으로
함부로 꽃을 꺾는 이가
꽃보다 아름답기는
참으로 지난한 일이다
■ 얼레지 / 김선우
옛 애인이 한밤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자위를 해본 적이 있느냐
나는 가끔 한다고 그랬습니다
누구를 생각하며 하느냐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벌 나비를 생각해야 한 꽃이 봉오리를 열겠니
되물었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얼레지……
남해 금산 잔설이 남아 있던 둔덕에
딴딴한 흙을 뚫고 여린 꽃대 피워내던
얼레지꽃 생각이 났습니다
꽃대에 깃드는 햇살의 감촉
해토머리 습기가 잔뿌리 간질이는
오랜 그리움이 내 젖망울 돋아나게 했습니다
얼레지의 꽃말은 바람난 여인이래
바람이 꽃대를 흔드는 줄 아니?
대궁 속의 격정이 바람을 만들어
봐, 두 다리가 풀잎처럼 눕잖니
쓰러뜨려 눕힐 상대 없이도
얼레지는 얼레지
참숯처럼 뜨거워집니다
/ 2022.04.03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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