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이사’ 서수찬, ‘다시 목련(木蓮)’ 김광균 (2022.04.03)

푸레택 2022. 4. 3. 22:34

■ 이사 / 서수찬

전에 살던 사람이 버리고 간
헌 장판을 들추어내자
만원 한 장이 나왔다
어떤 엉덩이들이 깔고 앉았을 돈인지는 모르지만
아내에겐 잠깐동안
위안이 되었다
조그만 위안으로 생소한
집 전체가 살만한 집이 되었다
우리 가족도 웬만큼 살다가
다음 가족을 위해
조그만 위안거리를 남겨 두는 일이
숟가락 하나라도 빠뜨리는 것 없이
잘 싸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 걸 알았다
아내는
목련 나무에 긁힌
장롱에서 목련꽃향이 난다고 할 때처럼
웃었다

■ 다시 목련(木蓮) / 김광균

사월이 오면
목련은 왜 옛 마당을 찾아와 피는 것일까
어머니 가신 지 스물네 해
무던히 오랜 세월이 흘러갔지만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잔디잎이 눈을 뜰 때면
어머님은 내 옆에 돌아와 서셔서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 보신다
 
하루 아침엔 날이 흐리고
하늘에서 서러운 비가 내리더니
목련은 한 잎 두 잎 바람에 진다
목련이 지면 어머님은 옛 집을 떠나
내년 이맘때나 또 오시겠지
지는 꽃잎을 두 손에 받으며
어머님 가시는 길 울며 가 볼까

/ 2022.04.03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