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산책] 소설 명시 수필 시조 동화

[명시감상] ‘매화’ 나호열, ‘돌매화’ 박대문, ‘돌매화’ 김승기 (2022.04.03)

푸레택 2022. 4. 3. 22:52

■ 매화 / 나호열

천지에 꽃이 가득하다
젊어서 보이지 않던 꽃들이
이제야 폭죽처럼 눈에 보인다
향기가 짙어야 꽃이고
자태가 고와야 꽃이었던
그 시절 지나고
꽃이 아니어도
꽃으로 보이는 이 조화는
바람 스치는 인연에도
눈물 고이는 세월이 흘러갔음인가
피는 꽃만 꽃인 줄 알았더니
지는 꽃도 꽃이었으니
두 손 공손히 받쳐들어
당신의 얼굴인 듯
혼자 마음 붉히는
천지에 꽃이 가득하다

■ 돌매화 / 박대문

수천 년이 가고 가고

수만 년 세월이 또 흘러도
커져만 가는 그리움 있다

기쁨의 절정이 눈물이듯
그리움의 끝은 멈춤인가
빛살처럼 세월은 흐르는데
성장을 멈춘 돌매화는
그리움의 꽃망울만 키워 간다

얼어붙은 그리움
잃어버린 시절 언제 오려나
고단한 돌매화의 꿈은 하늘에 이르고
해마다 피워내는 꽃은 몸체보다 크다
고단하고 절박한 그리움이
너무도 큰 탓이리라

■ 돌매화 / 김승기


한겨울
한라산을 오르다
만난 돌매화
눈 속에 묻힌 그 쬐끄만 몸뚱이에서 뿜어나오던
또롱또롱한 초록빛
젊은날의 눈에도 감동이었다

어느 유명연예인이 또 자살했다는
오늘 뉴스

전신마비에서 일어나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기적이라 여기며,
챙겨주고 돌봐주는 가족 없이
혼자 몸으로
열심히 기쁘게 나도 살아가고 있는데,

하늘은
누구에게나 견뎌낼 만큼의 시련만을
준다고 했는데,
성한 몸으로
고만한 역경 하나 이겨내지 못할까

이제 늙고 병든 몸이어도
언젠가는
그때 오르던 거기 다시 가서
변함없이 그 자리 지키고 있을
반가운 네 얼굴 만날 수 있기를
오늘도 벼르고 있다

■ 매화꽃 피다 / 목필균

세월의 행간을 읽으며
육십 년 뿌리내린 나무
여기저기 옹이졌다

가슴에
촛불 하나 밝히고
번잡한 세파 속에
정좌된 마음만으로
걸어온 길

동반자 없는 길
서럽다 하지 않고
추운 겨울바람
맨살로 견디고도
환하게 피어난 매화
정월 스무 이렛날

그믐달 어둠 속으로
흐르는
충만한 매화 향에
온몸이 젖어드는데

세상살이가
어디 외롭기만 하겠느냐

/ 2022.04.03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