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고창읍성, 외성을 밟다 (daum.net)
고창읍성 공북루와 옹성.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고창읍성, 외성을 밟다
'호남 곡창'으로 가는 길목
전불길과 김기서강학당, 아름다운 숲길 13㎞
내륙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 전북 고창을 지나면 호남의 곡창지대로 이어진다. 단 한명의 왜구도 이곳을 통과시킬 수 없다는 각오로 쌓은 고창읍성의 외성을 따라 돌다보면 차곡차곡 쌓아올린 돌 하나하나에 서린 조상의 이야기가 눈에 보이는 듯 선하다. 고창읍성 정문 공북루(拱北樓) 옹성 앞에 섰다. 고창읍성은 평지에 있는 여느 읍성과는 달리 산자락을 따라 성곽이 이어져 있다. 백제 때는 모량부리현(牟良夫里縣) 또는 모양현(牟陽縣)으로 불리던 곳이다. 모량(牟良)이 ‘보리’를 뜻하고 부리(夫里)가 ‘마을’을 뜻하니 풀이하면 ‘보리마을’이다. 그래서 고창이 보리가 유명한 모양이다. 읍성은 이곳에서 모양성(牟陽城)으로 더 알려졌다.
◆ 보리의 고장과 모양성
고창읍성 진서루 가는 길.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성을 바라보고 왼편으로 성곽을 따라 외성을 오르기 시작했다. 촘촘히 축성된 성곽을 따라 오르는데 다람쥐 한마리가 길을 앞서 안내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거침없이 성곽을 뛰어오른다. 길을 가다 멈추고 서기를 반복하면서 여행객을 이끈다. 등양루(登陽樓)다. 햇볕이 올라오는 동쪽이라는 뜻이다. 여기도 공북루와 같이 옹성으로 루를 감쌌다. 성을 따라 철쭉이 줄지어 서 있다. 제철이라면 성을 온통 붉게 물들어놨을 것이다. 산 아래쪽엔 개망초 군락이 바람에 물결친다. 성밟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예로부터 고창읍성은 성밟기가 유명하다. 세번을 밟는다고 했다. 다리가 튼튼해지고 무병장수하고 극락왕생한다고 해서다.
길을 안내하는 듯한 다람쥐.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성을 쌓기 시작했다는 시(始)와 쌓기를 마쳤다는 종(終) 표석이 나란하다. 축조에 동원된 각 군현의 이름들이 보인다. 성벽에 새겨진 각자(刻字)로 보아 인근의 고부, 김제, 영광, 정읍, 제주 등 19개 군현이 성 쌓기에 동원됐다. 백성의 고단함도 엿보이는 대목이다. 고창읍성은 호남내륙을 지켜내는 요충지에 자리했다. 수많은 전란을 견뎌낸 굳건함이 곳곳에 묻어난다.
특이한 것도 눈에 띄었다. 어느 절의 건축에 쓰였음직한 잘 다듬어진 돌이 성곽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문양이 새겨진 것도 있었다. 돌을 징발하면서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등양루를 지나 성의 중간쯤 이르러 김기서강학당으로 가는 4㎞ 구간의 전불길이 시작된다. 전불은 김기서강학당이 전불사란 절이 있던 자리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김기서강학당까지 가는 길을 전불길이라 부른다.
◆ 전불길의 시작, 만정 김소희 선생
전불길.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본격적으로 전불길에 접어들었다. 소나무숲이 하늘을 가렸고 내리쬐던 햇볕은 자취를 감췄다. 숲은 기다랗게 그늘을 만들어 상쾌함을 선사했다. 잔돌 하나 없는 황톳길은 푹신해 걷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눈에 익은 이름의 팻말이 들어왔다. 만정(晩汀) 김소희 선생이다. 김 선생은 고창이 낳은 최고의 명창이다. 선생의 묘소는 전불길에서 불과 100m 정도 거리에 있다.
김기서강학당.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돈목재(敦睦齋)는 김기서의 호다. 김기서는 기묘사화(1519년)에 연루돼 사화를 피해 이곳에 은거했다. 후학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돈목재강학당이 전불산 기슭의 김기서강학당이다. 수리 중이라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다. 다만 지붕이 내려져서 팔작지붕의 받침대 모습을 볼 기회를 얻었다. 취석정(醉石亭)은 커다란 노송과 버드나무 사이로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호도마을을 지나 노동저수지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된다. 여기저기 널려진 바위의 모습이 마치 취한 것처럼 자연스러워 정자의 이름과도 어울린다. 조광조의 제자였던 김경희가 건립한 것이다. 그 역시 사화를 피해 낙향했다.
고창읍성의 반듯한 성곽.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고창읍성으로 돌아왔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외성을 돌아 서쪽으로 지나간다. 등양루에 오르던 것처럼 성곽의 외벽은 여전했다. 진서루(鎭西樓)는 등양루와 똑같은 옹성 구조다. '서쪽을 누른다'는 이름은 서해(西海)로 들어오는 왜적을 경계함이리라. 전불길을 찾아 성을 한바퀴 돌았다. 아름다운 숲길 덕에 13㎞ 내내 즐겁다.
고창에는 걷기여행길이 여럿 있다. 전북 천리길(예향천리마실길) 중 7코스가 있다. 1코스 읍성성곽길은 터미널-하거리당산-전통시장-중거리당산-고창읍성-전불길-김기서강학당-화산마을-노동저수지-고창읍성안내소 14㎞ 구간이다. 2코스는 편백숲길로 고창읍성-상거리당산-노동입구-전망대(양곡정)-원산산림욕장(편백림) 7.2㎞ 구간이다. 3코스 문수산단풍길은 김기서강학당-은사마릉-신기계곡-문수산단풍길-문수산-편백림숲-신수동삼거리 9.5㎞다.
고창읍성 진서루.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이외에 4코스(온천길, 솔재쉼터-신수동삼거리-천주교공소터-산정마을-석정온천 7.2㎞), 5코스(양고살재길, 솔재쉼터-전망대(운월정)-양고살재-석정온천 6.2㎞), 6코스(방장산길, 석정온천-월곡마을-유천제-용추골-전망대(선유정)-유점마을-가평마을 17.5㎞), 7코스(고인돌길, 터미널-석탄마을-도산정보화마을-고인돌박물관-고인돌공원 5㎞) 등이 있다.
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ㅣ머니S 2019.07.11
/ 2022.03.19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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