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걷고 또 걷고 기차를 타고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침탈의 상처 품은 '역사의 현장' (2022.03.19)

푸레택 2022. 3. 19. 20:10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침탈의 상처 품은 '역사의 현장' (daum.net)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침탈의 상처 품은 '역사의 현장'

군산으로의 '시간여행'왜구 크게 무찔렀던 곳이 수탈의 장소로 뒤바뀐 곳 군산내항 선창가.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일제강점기 시대의 군산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수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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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내항 선창가.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침탈의 상처 품은 '역사의 현장' 

군산으로의 '시간여행'
왜구 크게 무찔렀던 곳이 수탈의 장소로 뒤바뀐 곳

일제강점기 시대의 군산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수탈당해 반출하는 항구도시로 급속하게 팽창해갔다.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인이 이곳에 터를 잡기 시작했고 돈이 풀리기 시작하자 전국에서 엄청난 사람이 군산으로 모여들었다. 우리 해안을 넘나들며 약탈을 일삼던 왜구를 크게 무찔러 진포대첩을 이뤄냈던 곳이 수탈 현장이 돼 버린 역사의 아이러니에 가슴이 아프다. 군산 곳곳에 산재한 근대문화유적은 침탈의 역사이며 우리 근현대사의 모습이기도 하다.

◆ 쇠락한 항구, 째보선창

옛 군산세관.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째보선창은 포구의 상권을 장악한 객주가 째보(언청이)라서 재미있는 이름으로 불렸다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그저 째보선창이라 부르다가 굳어져버렸다. 한창 때는 돈을 좇아 전국 팔도사람이 다 모여 와글대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쇠락해 적막할 뿐 이름으로만 옛 자취를 더듬을 뿐이다. 선창을 따라 걷다 보면 북적대던 옛날이 아련히 그려진다. 이곳은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무대로 분주히 오가던 사람들, 물건을 흥정하던 사람들, 그들 사이로 서천 땅을 처분하고 똑딱선을 타고 째보선창으로 들어온 정 주사가 보이는 듯하다. 글씨가 갈라져 떨어진 빛바랜 중국집 태평각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물 빠진 항구에 배 몇척이 한가로이 떠 있다.

조수 간만의 차에 따라 높이가 조절되는 부잔교. 뜬 다리로 부른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미곡 수탈의 역할이 사라진 군산항은 무역항과 여객항으로서의 기능을 외항에 넘겨주고 이제 옛 영광의 흔적만을 남겨 놓았다. 낡아버린 건물 안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창틀을 넘어 키를 높이는 모습이 기묘해 눈을 의심케 한다. 건물은 비어 있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하다. 길쭉하게 바다로 놓인 부잔교(浮棧橋)에 올랐다. 3000톤급 기선을 댈 수 있다는 부잔교는 말 그대로 뜬 다리로 밀물과 썰물의 수면에 따라 다리가 오르내리며 저절로 다리 높이가 조절되도록 만들어졌다. 이 다리를 통해 수탈된 미곡이 일본으로 반출됐다. 이곳의 지명이 장미동(藏米洞)으로 '쌀을 저장하는 동네'라는 뜻이다. 내륙의 미곡을 가득 실은 기차선로가 어지러이 난 곳을 지나며 서글픈 감정이 밀려들어온다.

◆ 건축물로 남은 근대문화유적

옛 일본18은행.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옛 조선은행과 일본 제18은행을 지나갔다. 자꾸 스멀대는 역사의 불편함이 내내 가슴을 짓누른다. 옛 조선은행은 소설 《탁류》에서 고태수가 근무하던 곳이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역사, 한국은행과 더불어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불리는 옛 군산세관이다. 길에는 사람들로 벌써 가득하다. 근대로의 시간여행을 오는 사람이 참 많다. 잘 복원하였고 스토리텔링을 잘해서 돌아보기에 아주 매력적이다. 전국의 많은 근대문화유적들의 모범이 될 만하다. 군산 시간여행에서 꼭 들러야 하는 곳이 근대역사박물관이다. 2011년 개관돼 군산근대문화의 역사가 복원되어 군산의 역사와 문화를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 해망굴과 월명공원

해망굴.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해망굴은 군산 도심과 해망동을 연결하기 위해 1926년 완성한 터널로 근대 도시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토목 구조물이다.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에서 생산한 쌀이 기차나 도로를 통해 군산으로 모여진 물자를 보다 빠르고 편하게 항구로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터널이다. 군산의 역할이 미곡의 수탈이기에 도시의 구성이 모두 이렇듯 군산 내항으로 집중된다. 해망굴은 지금은 관광용으로 도보통행만 가능하다. 해망굴을 나와 월명공원을 올랐다. 장계산과 월명산이 감싸고 있는 산기슭 공원길을 걷다보면 금강하구언이 눈에 잡힐 듯 들어온다.

◆ 신흥동 히로쓰가옥과 동국사

동국사 대웅전.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신흥동에 접어들었다. 신흥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군산시내 유지들이 거주하던 부유층 주택지로 일본식 가옥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히로쓰가옥은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의 촬영지로 알려진 곳이다. 목조 2층 주택으로 지붕과 외벽 마감, 내부, 일본식 정원 등이 건립 당시의 모습을 완벽히 갖고 있는 건물이다. 역사에는 영원한 게 없다. 한때는 군산의 돈을 쓸어 모으고 이렇듯 저택을 지었겠지만 지금은 구경거리로 남았다. 동국사(東國寺)에 들어섰다. 문 앞 현판을 보고서야 조계종 동국사임을 알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본에 있는 어느 절인 줄 알겠다. 원래 이름은 금강사(錦江寺)였다가 해방 후 동국사로 바꿨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왼쪽에 있는 종루 옆에는 2015년에 새워진 평화의 소녀상이 어우러지며 가슴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했다.

동국사 평화의소녀상.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동국사를 나와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초원사진관을 들러 사진을 찍고 이성당 빵집에 들러 빵을 사면서 하루 군산 근대문화기행을 마쳤다. 역사는 아픈 대로 간직해야만 한다. 군산을 걸으면서 가득했던 근대문화유적들은 바라보기에 불편했다. 하지만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현한 군산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 또한 우리의 지나온 역사이기에 다독이고 다시는 재연되지 않도록 교훈으로 간직해야 할 것이다.

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ㅣ머니S 2019.06.27

/ 2022.03.19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