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힘겨운 삶 쉬어간 '마장터 숲길' (daum.net)
마장터 물길.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힘겨운 삶 쉬어간 '마장터 숲길'
인제와 고성, 보부상을 만나다
보부상들 무거운 여정 풀고 물목 교환하던 곳
인제 용대리에서 대간령을 넘어 고성 도원리에 이르는 설악산국립공원 북설악의 12㎞ 되는 옛길을 걸었다. 소간령(새이령)의 당산거리며 마장터의 수많은 집의 흔적이 역력하다. 과거 보부상들의 자취를 따라 걷는다. 출발지는 미시령 넘는 옛길 옆의 박달나무쉼터다. 큰 휴게소를 연상하기 쉬운데 사실은 작은 가게다. 이곳을 지나면 가게는커녕 인적조차 없는 원시자연에 접어든다. 여장을 다시금 점검하게 되는 이유다. 북설악의 최고봉인 마산봉과 신선봉에서 흘러내리는 창암계곡을 건너며 노정이 시작됐다. 우르릉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의 물에 조심조심 징검다리를 건넜다.
마장터를 지나 대간령 가는 길목.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입구의 산양이며 담비며 여러 귀한 동물들이 사는 곳이라는 푯말이 벌써부터 조심하게 한다. 예전 보부상들이 다니던 길은 없어지고 수많은 세월 동안 귀한 동물들의 삶터였을 길이다. 다시금 사람의 소리로 북적인 지 얼마 되진 않았다. 마장터를 향하는 계곡 따라 걷는 길이 상쾌하다. 계곡의 물은 걷는 길을 촉촉하게 만든다. 숲은 생명의 기운을 가득하게 한다. 용대리서부터 대간령 정상까지 5㎞ 구간은 표고차가 200m 밖에 되지 않아 걷기에 편하다. 빼곡한 원시림은 하늘을 조금만 열어 뜨거운 햇빛을 가렸다. 계곡물은 졸졸 흐르며 계속 따라왔다.
◆ 작은 새이령과 보부상의 마장터
새이령 서낭당.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등에 땀이 서리고 갈증이 일었다. 눈앞에 돌을 쌓아 올린 돌샘에서 시리도록 찬 약수물이 흘러내렸다. 온몸을 찌릿하게 하는 물맛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행복한 게 있을까. 문득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길을 이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게 빼곡히 길을 감싸던 숲은 한순간 열리기 시작했다. 새이령이라 부르는 소간령(小間嶺)에 도착했다. 새이령은 한자로 간령(間嶺)이라 표기했고 대간령과 구분해 소간령이 됐다.
당산나무 한그루와 작은 서낭당, 족히 수백년이 흘렀을 돌무더기가 반긴다. 당산나무 밑동에 붙여 만든 서낭당에는 간단한 제물이 정성들여 올려 있다. 길 가던 객이 놓았는지 막걸리 한병이 눈에 띈다. 길을 걷다가 동티나지 말라고 막걸리 한사발을 올렸다. 또 정성스레 싸온 음식으로 고수레를 했다. 이곳을 지날 때는 속설을 따른다. 돌무더기에 돌 세개를 얹히고 세번 절하고 세번 침을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것. 그런 김에 무사안녕을 기원했다.
마장터 숲길.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새이령을 지나면서부터 마장터(馬場垈)다. 마장터는 고성과 양양(지금의 속초), 인제 사람들이 물목을 교류하던 장터다. 고성과 양양 사람들은 소금과 고등어, 이면수어, 미역 등을 지게로 날라왔다. 내륙지역인 인제 사람들이 좋아하는 해산물이다. 반대로 인제 사람들은 감자와 콩, 팥 등 곡물을 날랐다. 마장터는 수산물과 농산물이 오가던 길인 셈이다. 마장터란 이름도 마방과 주막이 있던 데서 유래한다. 아마도 고성과 인제를 오가던 보부상들이 쉬어가고 물목을 교환하던 곳이었으리라.
또한 예전에는 말을 이용해 짐을 운반하며 고개를 넘기도 했다. 이곳에서 여장을 풀고 말들을 쉬게 해 그런 지명이 붙었으리라. 이 길은 진부령과 미시령 길이 생기기 전에는 인제에서 고성으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이었다. 한창일 때는 30여호의 마을이 형성되기도 했다. 지금은 군데군데 남은 돌무더기와 집터의 흔적이 화전마을이었음을 알린다. 예전의 풍경을 떠올리며 걷자니 눈앞의 풍경이 선하다. 흥정하는 모습, 물목을 지고 지나가는 보부상, 투전판, 주막 등이 정겹다.
마장터 뒤 마산봉에서의 조망.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인재와 고성의 고갯길 '대간령'
마장터를 지나 대간령으로 향했다. 마상봉과 신선봉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쳐지는 지점에 제법 쉴 수 있는 너른 물가 터가 있다. 박달나무쉼터를 출발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크고 작은 계곡을 끼고 돌고 건넜다. 그중 이곳이 가장 좋아 걸음을 멈췄다. 인제에서 건너오던 선질꾼(행상)도 이곳서 여장을 풀었으리라. 대간령(大間嶺)이다. 큰 새이령 또는 샛령이라고도 한다. 또한 돌이 많은 고갯길이란 뜻의 석파령(石坡嶺)이라고도 부른다.
석파령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마지막 올라오는 길부터 돌무더기가 가득하다. 대간령에는 여행객들이 쌓았을 돌탑들이 여기저기 가득하다. 백두대간은 지리산 성삼재에서 출발한다. 도도한 흐름을 북으로 내달려 미시령을 지나 신선봉을 넘고 마상봉을 지나 진부령에 이른다. 여기 대간령은 신선봉과 마상봉의 중간에 있는 사잇길로 이름 그대로 대간령이고 샛령이다. 인제에서 고성으로 가는 중요한 관문이다.
도원리 임도.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 보부상의 힘겨운 삶, 돌아보니 아련
옛길은 대간령을 넘어 고성 도원리로 향한다. 선질꾼들은 여기서 잠시 숨을 가다듬고 고성으로 길을 잡았겠다. 여기서부터 주막거리까지는 길이 험하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기에 조심해야 한다. 그러기에 보부상들도 대간령에서는 막걸리 한사발 안 들고 출발했다는 것. 험한 길을 열구비쯤 돌아드니 주막터에 도착했다. 주막터는 통행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봉놋방에서 술판을 기울이고 투전판을 벌였을 것. 또 각지의 소식을 풀어놓고 교환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 대간령에서 주막터까지 이어지던 낭떠러지 같은 급경사는 주막을 지나고도 한참이나 계속됐다. 무거운 봇짐을 진 보부상의 수고를 몸으로 체험하며 한걸음씩 내딛다보니 어느새 도원리에 이르렀다. 가파르고 미끄러지기 쉬운 길을 무거운 봇짐을 지고 넘나들던 보부상. 그들의 수고를 떠올리며 마장터 숲길을 되돌아본다.
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ㅣ머니S 2019.07.25
/ 2022.03.19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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