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비인간 생물은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 (daum.net)
변영근 작가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Q : 비인간 생물은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
A : 원폭·원전사고 후 솟아나는 생명, 생태위기 속 ‘삶’의 가능성
(17) 애나 칭(Anna Tsing, 1952∼)
방사능 뿜어내던 폐허 지역서
자생적으로 자라난 송이버섯
인간 중심주의적 태도 버리고
지구환경사 주역으로 인정해야
경제-생태학적 이분법 벗어나
다양한 생물간 공생방식 배우면
인류의 환경위기 탈출에 도움
日서 주로 수입하는 송이버섯
주로 관계형성 위한 선물 활용
비자본주의적 교환체계 보여줘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 애나 칭은 환경 문제, 세계화, 페미니즘 이론, 인간-비인간 관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지향하는 자본주의적 발전 위주의 경향에서 벗어나는 인식 체계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근대 산업화로 인한 환경 및 경제 위기로 지구상의 사회 대부분은 폐허로 변해 가고 있다. 칭은 이 황폐화된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되묻는다.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경제학자는 경제 개발을 더욱 추진할 것을, 생태학자는 개발을 완전히 멈추고 자연을 보존할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칭은 이러한 이분법적 입장과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인간에 의해 훼손된 땅에 등장하는 버섯처럼 생태 위기에서 나타나는 삶의 가능성을 살피는 것이다.
칭은 1945년 히로시마(廣島) 원자 폭탄 투하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독을 뿜어내는 이들 지역에 처음으로 등장한 생물이 송이버섯이었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과학적 양식 기술로 생산할 수 없는 송이버섯이 이 파괴된 땅에서 저절로 자라났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칭의 주장에 따르면 이 사실은 폐허가 된 땅에서 인간과 다른 생물들의 공생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환경을 파괴해도 괜찮다고 변명하거나 환경 파괴가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낙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칭의 주장은 인간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인간 중심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송이버섯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종도 지구 환경사의 주인공으로 인정하자는 제안이다.
칭은 ‘세상 끝의 버섯’(2015)에서 조금 다른 방식의 역사 쓰기, 즉 다종(多種)의 역사 쓰기를 강조한다. 숲의 역사의 주인공들로는 송이버섯 곰팡이와 소나무, 그 밖에 그들과 다양한 관계로 얽혀 있는 여러 생물종이 있다. 송이버섯 곰팡이와 소나무는 생존에 필요한 양분을 서로에게 제공하며 협력한다. 또한 서로의 주거에 적합한 조건을 만들어 준다. 송이버섯 곰팡이는 활엽수에 밀려 척박한 땅에 정착한 소나무가 뿌리를 뻗을 수 있게끔 모래와 바위를 분해하고, 소나무는 송이버섯 곰팡이가 살아갈 수 있도록 잔뿌리를 내주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소나무와 송이버섯은 다른 벌레, 식물, 동물들과 저마다 다양한 삶의 관계망을 형성하며 살아간다. 그중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두 생물의 협력에 동참할 수 있다. 이를테면 솔방울과 송진을 사용하거나 송이버섯을 섭취할 수 있고, 소나무 뿌리를 썩게 하거나 햇빛을 가리는 활엽수가 양산되지 않도록 부식토를 걷어 낼 수도 있다. 칭은 인간을 비롯한 지구의 다양한 생물이 다종의 집합으로서 협력하며 생존하는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근대 이래 인류는 발전을 통한 부의 축적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 왔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고자 플랜테이션 농장의 생산 방식에서 볼 수 있듯 인간과 자연의 모든 부분을 본래의 생태 환경 및 관계에서 떼어내어 착취하고 상품화해 왔다. 그 결과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 및 비인간 생물들이 다종의 집합과 협력에서 소외된다. 생물들은 타고난 다양성을 무시당한 채 단일한 기준으로 통일, 복제, 무한 생산할 수 있는 존재로 변형돼 바코드에 기록돼 전산 처리된 후 서식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져 소비된다. 인간 역시 대체 가능한 비숙련·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해 불안정한 삶을 산다.
그럼에도 세계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질서와 힘에 완전히 정복되지 않았다. 칭은 ‘다이아몬드 여왕의 영역에서’(1993)에서 인도네시아 우림 지대의 메라투스 다약 사회처럼 고립된 듯 보이는 서구 바깥의 소규모 문화들도 국가적·초국가적 힘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됨을 증명해 보였다. 또한 ‘마찰:글로벌 연결의 민족지’(2005)에서는 글로벌 자본주의가 특정 지역에서 갈등을 일으키며 예상치 못한 결과를 창출하는 양상을 드러내는 한편 이 새로운 현상에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하는지를 분석했다.
칭은 이런 작업을 통해 글로벌 자본주의가 세계적인 것들(the global)로 지역적인 것들(the local)을 없애고 전 세계를 획일화한다는 주장도, 지역적인 것들이 세계적인 것들에 저항하며 특수한 문화를 형성한다는 주장도 모두 비판한다. 세계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은 분명히 나뉘는 이분법적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생물의 발이 땅과 지속적으로 마찰하며 숲속의 등산로가 만들어지듯 글로벌 자본주의는 지역적인 것들을 산업을 위한 자원과 노동으로 포섭하는 과정에서 그 지역의 생물 및 문화와 특수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마찰한다. 등산로를 만듦으로써 글로벌 자본주의는 해당 지역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등산로를 벗어난 곳은 자본주의에 포섭되지 않은 채 남겨진다. 지역 문화는 세계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의 마찰을 통해 거듭 생산되고 변화한다. 이렇듯 세계적인 것은 세계 곳곳에 존재하지만, 어느 지역에서나 똑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칭은 세계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의 마찰과 공존, 자본주의화 된 현대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비자본주의적 요소를 송이버섯의 상품화 과정을 통해 설명한다. 자본주의 생산이란 생태적 과정 속에 살아 존재하는 각 지역 생물들을 부의 축적을 위해 끌어들이는 활동이다. 북미의 야생 송이버섯은 국유림에서 소나무와 협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에게 채집된 뒤 상품으로 분류되고, 그 결과 일본으로 수송돼 판매된다. 칭이 ‘구제 축적(salvage accumulation)’이라고 부르는 이 과정은 비자본주의적 삶을 사는 생물이 자본주의적 부의 축적을 위해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잘 보여 준다. 현대 사회의 모든 생산과 소비는 글로벌 자본주의로 획일화된 상태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지역의 비자본주의적인 것들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가 자본주의에 산발적으로 흡수되며 상품으로 전환된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구제 축적의 과정을 통해 환경 파괴, 착취, 소외를 일으킨다. 하지만 송이버섯의 생산, 무역, 판매, 소비에 참여하는 인간 및 비인간 생물들의 관계와 활동은 대부분 비자본주의적이다. 예를 들어 북미의 숲에서 야생 송이버섯을 따는 프리랜서 채집인들은 버섯 채집을 노동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기업에 고용돼 시간당 임금을 받고 노동하는 대신 자유롭게 숲을 누비며 송이버섯을 발견했을 때만 돈을 버는 불안정한 삶을 선택한다. 일반적인 시장 경제를 따르는 상인들이 상품 가격을 낮춰 경쟁력을 얻으려 하는 것과 달리, 프리랜서 채집인과 일본 무역업자를 연결하는 중간 상인들은 송이버섯의 가격을 올리기 위한 전략에 매진한다. 반면 일본으로 수입된 송이버섯을 판매하는 도소매상인들은 무작정 이윤을 높이기보다 각각의 송이버섯이 가진 특징과 가장 잘 어울리는 손님을 연결해 주고자 한다. 또한 일본에서 송이버섯은 호혜적 관계에서 교환되는 선물이다. 소비자들 대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증여하는 상, 뇌물, 선물로 송이버섯을 구매하며, 자신이 먹기 위해 송이버섯을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렇듯 송이버섯은 판매자의 이윤이나 구매자의 소비보다는 개인들의 관계 형성과 유지를 위해 시장에서 교환된다. 즉 송이버섯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상품임과 동시에 자본주의적 교환 체계 외부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칭이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의 상호작용, 세계적인 것들과 지역적인 것들의 마찰 및 공존을 살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글로벌 자본주의로 인한 환경 문제와 경제적 불안정을 비판하거나 작금의 사태를 초래한 사람들을 향해 분노하는 일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글로벌 자본주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주목하면 인간과 비인간 생물들이 현재 맞닥뜨린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칭은 방향, 과정, 참여자가 고정되지 않은 열린 모임으로서 생물들의 집합에 주목해 생물들이 협력하며 세상을 만들고 생존하는 방식을 배우기를 권유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생물을 단일한 성질에 따라 별개의 종으로 분리하고 범주화하는 일보다 다양한 생물종이 협력하며 만들어 내는 많은 집합을 알아차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 이로써 다종의 생물이 주인공이 되는 삶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생물종의 집합이 항상 조화를 이루거나 안정된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칭이 지적하듯 다양한 생물끼리의 협력은 인간의 의도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다. 협력하는 모든 생물에게 이로운 결과가 오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런 협력 자체가 자본주의가 망쳐 놓은 환경 파괴 및 사회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황폐해진 땅에 버섯의 갓이 올라오는 것처럼 다종 생물의 집합은 삶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노고운 한국외대 한국학과 교수
■ 애나 칭
분야- 문화 인류학, 인류세 연구, 페미니즘 이론, 세계화
사상- 다종적 민족지, 인간-비인간 집합체, 포스트 휴머니즘
주요 활동·사건- 마쓰다케 월드 리서치 그룹 조직(2007~), 오르후스대 인류세연구센터 초학제적 프로그램 운영
1952년 미국에서 출생한 문화 인류학자다. 예일대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스탠퍼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메라투스 산맥의 정치와 문화’라는 논문으로 인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캘리포니아대 산타크루즈 인류학과 교수이자 오르후스대 닐스 보어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7년부터 송이버섯 세계를 연구하는 모임 ‘마쓰다케 월드 리서치 그룹’을 조직해 송이버섯의 다종적 결합 및 송이버섯을 둘러싼 상품 사슬을 세계 각국의 학자들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초기 저작 ‘다이아몬드 여왕의 영역에서’(1993)는 박사 학위 논문에 기반해 쓴 민족지다. 인도네시아의 메라투스 다약 사회가 어떻게 자신들의 경제적 주변성(marginality)을 활용해 국가 및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주변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지 분석한다. 이를 통해 세계화, 민족지, 페미니즘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칭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한 두 번째 책 ‘마찰’(2005)은 세계화 연구를 환경, 생태, 풍경과 연결한다. 자본주의적 발전의 패러다임이 인도네시아의 열대 우림을 벌목하고 황폐화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이 서로 다른 배경과 목적을 가진 주체들, 즉 메라투스 다약인, 사업가, 환경 운동가, 개인, 정부, 기업들에 의해 글로벌 자본주의와 연결되며 나타나는 특정한 양상을 분석한다.
‘세상 끝의 버섯’(2015)은 인간-비인간 관계를 포함한 다종적 집합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며, 폐허가 된 환경에서 살아가려면 글로벌 자본주의의 질서에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다종적 협력에 주목해 이로부터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논문 ‘인간(Man)에 의해 괴롭힘당하는 지구’(2016)와 엮은이로 참여한 ‘손상된 행성에서 살아가는 방법’(2017) 등을 내놓았다.
[출처] 문화일보 2019.12.24
/ 2022.03.17 옮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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