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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상의 최전선] Q : 콩은 인간의 작물 재배와 소비에 어떻게 개입하는가? (2022.03.17)

푸레택 2022. 3. 17. 16:03

<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콩은 인간의 작물 재배와 소비에 어떻게 개입하는가? (daum.net)

 

<21세기 사상의 최전선>Q : 콩은 인간의 작물 재배와 소비에 어떻게 개입하는가?

A : 콩은 토양·농부·재배술·시장에 개입하는‘하이브리드적 존재’(12) 세라 와트모어(Sarah Whatmore, 1959~)콩은 자본주의 상품이자가난의 표상으로 인식되지만‘살아있는 존재’란 사실 외면非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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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작가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Q : 콩은 인간의 작물 재배와 소비에 어떻게 개입하는가?

A : 콩은 토양·농부·재배술·시장에 개입하는‘하이브리드적 존재’

(12) 세라 와트모어(Sarah Whatmore, 1959~)

콩은 자본주의 상품이자
가난의 표상으로 인식되지만
‘살아있는 존재’란 사실 외면
非인간은 수동적 대상 아닌
여러 이질적 행동과 결합해
능동적 행위자처럼 기능
동물·식물·사물과 소통통해
존재감 드러내는 게 사회적 삶
‘인간 너머 세계’이해시키며
가능성에 대한 믿음 심어줘

콩밥이란 무엇인가. 많은 이에게 콩밥은 끼니를 해결할 좋은 식품이다. 그런데 한번 가정해 보자. 내가 콩밥을 먹는 식사 현장에 세 명의 사회과학 연구자가 찾아온다. 첫 번째 연구자는 콩밥의 콩을 가리킨다. 국내 콩 자급률이 10% 안팎임을 감안하면, 이 콩은 중국에서 재배되고 수입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에게 콩밥은 농업의 세계화를 드러내는 자본주의 상품이다. 두 번째 연구자는 한국 사회에서 콩밥이 갖는 문화적 의미를 상기한다. 과거에는 쌀이 모자라 콩밥을 지어 먹었고, 값싼 식사인 콩밥이 감옥에서 배급됐다. 그에게 콩밥은 우리 사회가 겪은 가난의 표상이다.

마지막 연구자는 콩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에게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어 보라고 권한다. 딱딱하고 차가운 콩의 질감은 보드랍고 따뜻한 밥과 따로 돈다. 그렇지만 건강에 좋다고 하니 밥과 함께 씹어 삼킨다. 걱정 많은 이들은 혹시라도 이 콩이 유전자 변형(GM) 식품은 아닐까 잠깐 불안해할지도 모른다. 콩밥을 먹는 이 행위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오로지 인간의 이성과 의지 덕분일까? 세 번째 연구자는 콩의 질감, 영양적 특성, 콩을 먹어 온 역사적 경험, 안전성에 대한 불안과 재배 기술 등의 다양한 물질적 요소가 콩밥을 먹는다는 일상적 행위에 결합돼 있다고 지적할 것이다. 그에게 콩밥은 다양한 사물, 행위,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관계적 성취물’이자 인간 및 비인간 존재의 생태와 활력을 통해 우리의 삶이 직조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존재론적 증거다. 바로 이 세 번째 연구자가 세라 와트모어다.

◇ 물질의 역습

영국 인문 지리학자 와트모어는 지리학이 2000년대 초반까지 인간과 비인간의 ‘살아 있음’을 간과해 왔다고 지적한다. 197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비판적 지리학자들은 자연-사회관계에서 자본주의 경제 활동의 결정적 역할에 주목하고, 자연의 상품화와 이 과정에서 야기되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불평등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콩밥 사례의 첫 번째 연구자가 바로 그 예다. 한편 1990년대 일군의 지리학자들은 언어, 문화, 권력관계에 집중하는 ‘문화적 전환’의 자장 속에서 자연에 대한 지식이 고유한 사회적 맥락 안에서 생산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콩밥에서 가난을 읽어 내는 두 번째 연구자처럼 이들은 자연 담론과 이미지를 해체해 사회의 문화적·정치적 특성을 밝혀내는 데 몰두한다.

와트모어는 이 두 입장 모두가 콩과 인간이 살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누락했다고 지적한다. 콩과 인간에게는 고유한 신체, 생태, 삶의 경험이 있다. 기존에는 콩과 같은 존재가 죽은 것으로 취급됐는데, 세계를 이해하고 변화를 모색하려면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살아 있음, 즉 신체와 활력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이는 야생 동물 보전이나 GM 식품 논란과 같은 특정한 사회 현상 안에 접혀 있는 시공간적 관계를 드러냄으로써 가능해진다. 인간 및 비인간 존재의 생태, 에너지, 감정 등의 존재가 어떻게 사회 현상을 견인하는지를 보여 줘야 하는 것이다.

◇ 콩과 세 개의 시공간

그 대표적 예로 지구에서 가장 흔한 작물 중 하나인 콩을 들 수 있다. 와트모어는 콩의 재배와 소비라는 사회 현상에 적어도 세 개의 물질적·감각적 순간이 접혀 있다고 지적한다. 첫 순간은 3000년 전 중국 농민들이 처음으로 야생 콩을 작물로 심기 시작한 때다. 콩은 단백질 함량이 높고 기르기 쉬우며 토양까지 기름지게 하는 마법의 작물이었다. 중국 농민들은 콩을 ‘노란 보석’이라고 부르며 환영했다. 이들은 야생 종자를 길들여 콩의 품종을 다양화하고, 콩의 싹을 틔워 콩나물을 먹기 시작했다. 또한 콩으로 두부나 각종 소스를 만들어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는 데 이용했다.

콩은 18세기 후반 북미로 건너가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두 번째 결정적 시공간을 맞는다. 중국 농민들의 소규모 재배와 달리, 콩은 미국의 산업적 대량 재배에 적합하지 않았다. 병충해에 취약해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가공식품 산업의 발달과 함께 식물성 기름이 필요해지면서 콩 수요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미국 산업계는 병충해에 강한 콩을 생산하기 위해 품종 개량을 꾸준히 시도했다. 그때 구원 투수로 등장한 것이 GM 기술이다. 미국 생화학 업체 몬산토는 1996년 병충해에 강한 GM 콩 ‘라운드업 레디’의 상업화에 성공한다. 라운드업 레디는 자체적으로 살충 성분을 발생시켜 병충해를 막는 GM 종자였다. 이 편리한 콩은 미국 콩 재배 농가로 빠르게 확산돼 1998년 미국 콩 재배 전체 면적의 3분의 1을 점유하기에 이른다.

라운드업 레디는 1996년 10월 유럽으로 20만t이 수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에서 라운드업 레디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피켓을 든 시위대였다. 이 지점이 세 번째 순간이다.

1990년대 말 유럽이라는 시공간에서 콩의 재배 및 소비와 결합한 것은 GM 식품의 안전성을 둘러싼 불안감이었다. 유럽 전역에서 GM 콩 불매 운동이 벌어지면서 GM 식품의 이력 추적 제도나 라벨링과 같은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졌고, 나아가 GM 종자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콩 시장이 성장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우리가 콩밥에 흔히 섞어 먹는 중국산 콩이다. GM 식품에 대한 우려가 우리 사회에도 폭넓게 확산되면서 GM 콩을 재배하지 않는 중국에서 식용 콩 대부분을 들여오게 된 것이다. 이처럼 콩은 다양한 시공간에서 토양, 농부, 과학자, 법률 체계, 재배 기술, 시장 등 다양한 사물, 행위, 관계와 결합한다. 콩은 단순히 자본주의 경제 활동의 수동적 대상물도, 사회적 의미를 담지(擔持)한 표상도 아니다. 콩은 다양한 인간 및 비인간이 결합한 연결망을 통해 만들어지는 하이브리드적 성취물인 것이다.

◇ 행위자-연결망 이론을 생동화하라

와트모어는 콩이 이질적 연결망의 효과라는 논의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연결망에 결합된 존재들의 생태, 감각, 에너지 등에 주목함으로써 행위자-연결망 이론을 생동화(animating)하고자 한다. 와트모어에게 비인간 존재는 인간의 개입을 기다리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세 개의 시공간에서 볼 수 있듯 콩의 고유한 생태적 특성은 콩의 재배와 소비를 특정한 방향으로 인도한다. 와트모어는 이렇듯 콩의 살아 있는 존재감이 여타의 이질적 행위들과 결합해 작물의 재배와 소비 산업에서 권력과 지식의 배분을 다양화한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콩이 작물 재배와 소비를 둘러싼 지식 체계와 실천에 있어 하나의 행위자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감각, 느낌, 습관과 같은 비인지적 의사소통 방식에 주목한다. 과학적 지식과 이성적 판단뿐 아니라 신체적 소통 또한 세계를 이해하고 바꾸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GM 콩을 둘러싼 식품 위기는 사회 현상이 신체적·감각적 실천임을 드러낸다. 과학자와 정책 결정자들은 GM 콩의 안정성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정책적 판단을 내놓는다. 하지만 식품 안전성 논란이라는 사회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결정적 동력은 ‘먹는다’라는 신체적 행위와 불안, 공포 등의 감정이다.

이렇듯 와트모어는 비인간과 비재현적 소통을 통해 사회적 삶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해 세계의 ‘살아 있음’이 세계의 구성과 작동에 치명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힌다. 사회적 삶은 전문가와 과학적 지식에 의해 규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태적·물질적으로 직조돼 있다. 와트모어는 이를 짚어 냄으로써 세계를 인간뿐 아니라 다양한 동물, 식물, 사물, 장치, 자료, 관계 등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간 너머의 세계(more-than-human world)’로 새롭게 이해하도록 한다.

비인간 행위성과 비인지적 의사소통에 대한 와트모어의 강조는 지리학 분야에서 ‘인간 너머의 지리학’이라는 연구 경향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연구자들은 동물 연구 등을 통해 비인간 행위성에 대한 이론적·경험적 논의를 확장하는 한편, 와트모어의 관계적 존재론을 인간 너머의 세계의 새로운 정치학에 대한 논의로 발전시키고 있다. 사회 현상을 이질적 연결망의 효과로 보면, 현재의 현상과 제도가 선험적으로 주어지거나 고정불변하지 않으며 연결망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다시 만들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행위자와 행위가 결합해 작동함으로써 자연-사회의 새로운 관계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와트모어의 논의는 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찬 ‘희망의 지리학’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와트모어의 긍정의 철학은 이후 세계의 이해와 정치적 판단에 비인간 존재들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코스모폴리틱스 정치학’의 발전으로도 이어진다.

최명애 한국과학기술원 인류세연구센터 연구조교수

■ 세라 와트모어는

분야- 인문 지리학, 자연-사회, 재난 연구, 사회 이론

사상- 인간 너머의 지리학, 행위자-연결망 이론, 비재현 이론

주요 활동·사건- 2014년 영국학술원 회원 선정

관련 인물- 브뤼노 라투르(1947년, 프랑스, 철학·인류학 등), 도나 해러웨이(1944년, 미국, 페미니즘·과학학 등), 나이젤 스리프트(1949년, 영국, 인문지리학)

1959년 영국 출생의 인문 지리학자다. 주로 자연의 다양한 문화적 이해와 실천에 관심을 두고 과학, 환경 거버넌스, 일상의 영역에서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사회가 연결되는 다양한 방식을 연구한다. 1988년 런던대(UCL)에서 지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브리스톨대, 오픈대 등을 거쳐 2004년부터 옥스퍼드대 환경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4년 영국학술원 회원으로 선정됐다.

초기에는 농촌 지리학적 관점에서 젠더와 대안적 식품 네트워크 등을 주로 연구했다. 1990년대 후반 유전자 변형 식품과 야생 동물을 연구하면서 자연-사회 분야의 독보적 지리학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표작 ‘하이브리드 지리학’(2002)에서 “인문 지리학의 자연-사회 연구에서 인간의 위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라는 담대한 주장을 펼쳤다. 이로써 비인간 행위성과 비재현적 소통을 강조하는 ‘인간 너머의’ 지리학과 사회 과학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다양한 철학 및 사회 이론을 빌려 이론적 논의를 쌓는 데만 집중하고 실제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뚜렷한 함의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비판 또한 받았다. 최근에는 식품 위기 문제와 더불어 홍수 등의 재난이나 환경 위기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문화 지리학, 고고학, 과학기술학 등 철학, 정치 이론, 물질문화를 다루는 다양한 사회 과학 분야와 지리학을 융합하는 성격의 연구를 펼쳤다. 그 밖에 주요 저작으로 편저 ‘사회 이론의 이용:연구를 통해 생각하기’(2003), ‘정치적 문제:기술과학, 민주주의, 공공의 삶’(2010) 등이 있다.

[출처] 문화일보 2019.11.19

/ 2022.03.17 옮겨 적음